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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가 두툼한 편지 다발을 내게 건네면서 "이걸 읽어보세요. 이런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건 혼담의 중개를 맡은 내 친구가 그녀 앞으로 보낸 편지였는데, 그 편지를 읽고 나는 경악했다. 편지 내용은 온통 나에 대한 험담이었고, 험담하는 기술이 참으로 천재적이었다. 나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문장에 소름이 끼쳤다. 그 친구는 결혼 중개를 부탁받고는 도리어 결혼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가끔 나와 함께 야구치 집을 방문해서, 내 앞에서는 혼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그 편지를 보고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험담을 하는 사람이랑 그 사람을 믿고 험담을 당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을 믿겠니?" 결국 그녀와 나는 결혼했다. 우리가 결혼한 뒤에도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찾아왔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를 절대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내가 왜 그 친구에게 그 정도로 원한을 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뭐가 살고 있는 걸까? 그 뒤에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사기꾼, 돈에 미친 사람, 표절하는 사람. 하지만 모두 보통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더 선한 얼굴을 하고 친절하게 말을 하니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pp.240~241
장모가 현명하시네. 이렇게 가감없이 결혼 골자만 술회하는 글도 간만에 읽어본다. 그나저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젊은 시절 전형적인 재능있는 열혈 마초 유형이었다.
이건 일본인의 유연성일까 아니면 허약함일까? 나는 적어도 일본인의 성격에는 이런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양면성은 내 자신 속에도 있다. 만일 패전 조칙이 아니었다면, 아니 만일 그것이 국민 모두에게 자결하자고 호소하는 것이었다면 그 거리의 사람들은 거기에 따라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자아를 악덕으로 보고 자아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양식 있는 태도라고 배운 일본인은 그 가르침에 익숙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자아를 확립하지 않는 한,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p.250
그러게. 일본엔 이런 집단 환상이 강력히 존재하는 듯하다. 이십대 때 [에반게리온] 오리지널 봤을 때도 놀랐던 게, 최종회에서 한 시간 내내 이어지던 그 장황한 설변이 결국 인류보완계획 - 전 인류의 의식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 - 이었다.
범죄자를 낳는 것이 사회의 결함이라고 하는 논리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은 사회의 결함 속에서도 범죄로 치닫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무시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우에코사(구로사와 아키라의 시나리오 공동작업 짝패였던 초교동창 붕우)는 걸핏하면 우리 둘을 비교하면서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에쿠사와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다를 뿐이다. 우에쿠사는 내가 회한과 절망과 굴욕과는 인연이 없는 타고난 강자이고, 자신은 타고난 약자라 끊임없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의 관찰은 얕은 것이다. 나는 삶의 고뇌에 저항하기 위해 강자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표면적인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둘 다 약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특별히 강하지도 않고 특별히 재능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나는 약점을 보이는 게 싫은 사람이고, 그저 남에게 지기 싫어서 노력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그뿐이다. pp.276~277
이 부분 읽으면서 뜬금없이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렸다. 극과 극이지만 같았던 사람들. 물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이키게 되고. 헌데 내 생각은 구로사와 옹과 조금 다르다. 본디 인간이, 차포 다 떼고 근원을 파헤집고 들어가 클로즈업하면 다 거기서 거기. 그 사람이 어떤 가면을 집어 들고 얼마나 빈번하게 오래 쓰고 있느냐,가 곧 그 자신이다.
각설하고, 작년에 사두고서 만으로 일 년을 묵힌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비슷한 것]을 정독했다. 1950년작 [라쇼몽]을 넘어서는 더 이상 자신을 객관적으로 쓸 수 없다고, 그 이후 스무 편 넘게 감독한 본인 작품들이 자신에 대해 말해주리라,며 마치고 있다. 사실 그의 인생 말년이 진짜 파란만장했을 텐데.
총평이라면 역시나 영상만큼 글에도 달변이고, 인생 얘기와 영화 얘기가 날줄 씨줄로 테피스트리를 이룬 본문도 재밌었지만 부록으로 딸린 필모그래피 해설, 그리고 감독이 1975년에 직접 썼다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번역문이 알찼다. 자, 이제 그만 곰발님 보내온 스티븐 킹 소설로 들어가 볼까. 여튼 요즘 틈만 나면 책을 잡게 돼서 영화에 소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