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넌트 (하숙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 로만 폴란스키 외 출연 / 예중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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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프랑스 거주 기간 동안 연출하고 직접 주연까지 맡은 1976년작 [테넌트]는 한마디로 사람이 과대망상으로 분열되며 침몰하는 과정을 섬뜩하게 표현한 영화다. 1965년작 [혐오], 1968년작 [로즈마리의 아기]와 '아파트 3부작'으로 엮이곤 하는데 감독 자신이 트릴로지를 염두에 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세 작품 모두 '대도시 아파트'라는 공간성을 활용, 일관되게 음침한 시선으로 폐소공포와 광장공포가 뒤섞인 악몽적인 기조를 자아내며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소외되어 허물어지는 인물의 심리 양상을 치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유기적인 연작으로 봐도 무방할 성싶다. [혐오]의 경우 런던 배경으로 미혼녀 캐롤(카트린느 드뇌브)의 광기와 그 원인으로 작용한 트라우마를, [로즈마리의 아기]는 뉴욕 중산층 임산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가 겪는 일련의 지옥도를 그렸다면 [테넌트]는 프랑스 시민으로 파리에 살고 있는 동구권 출신 변방인이자 제목 그대로 세입자인 중년 독신남 트렐코프스키(로만 폴란스키)의 불안을 쫓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주요 배경을 이룰 파리 시내 노후한 맨션 건물 면면을 왜곡된 비대칭 앵글로 몇 분이고 훑는다. 폴란드계 회사원 트렐코프스키가 관리소를 찾아 빈 방을 문의하고 집주인 무슈 지(멜빈 더글라스)와 지난한 흥정 및 협상 끝에 입주하게 된다. 사람들 얘기에 따르면 이전 세입자였던 '슐르'라는 여성은 원인 모를 투신 자살을 시도, 치명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다. 모두 그녀가 곧 죽을 거라 입을 모으지만 혹시 회복돼 돌아오면 트렐코프스키 입장에선 불리한 조건으로 방을 빼줘야 한다. 생사 여부 확인차 찾은 병실에서 트렐코프스키는 슐르의 오랜 친구라는 스텔라(이자벨 아자니)를 만나게 되고 왠지 불길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의 그녀와 어정쩡한 상태로 브루스 리의 [용쟁호투] 관람 뒤 귀가한 트렐코프스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상의 슐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허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정작 그때부터 괴이쩍은 사건·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민감하거나 괴팍한 이웃들과 마찰을 빚게 된다. 그렇잖아도 소심한 성격이던 트렐코프스키는 점점 위축되면서 신경쇠약 및 환각에 시달리다 입주민들은 물론 스텔라와 그외 인물들까지 도시 전체가 자신을 짓누르며 죽은 슐르를 대체할 희생양으로 낙점, 죽음으로 몰고가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여장까지 해가면서 불가항력으로 슐르의 페르소나에 몰입하는가 하면 괴물로만 비치는 타인들 틈에 살아남으려 필사적이던 트렐코프스키는 결국 정신줄을 놓고 연거푸 투신 자살을 감행한다. 슐르가 죽어간 병실 18번 침대에 그대로 누워 온통 붕대를 휘감은 트렐코프스키가 자신이 바로 다름 아닌 슐르였다고 믿으면서 카메라를 향해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편의상 '환각'이니 '과대망상', '미쳐간다' 등의 어휘를 썼는데,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모든 현상과 사건 및 행적의 진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 여부를 쉽게 단정지을 수 없도록 불확실하게 연출된 점이야말로 [테넌트]의 미덕이고 로만 폴란스키의 거장다운 면모다. 시신경 자극만으로 축축한 악취까지 화면 밖으로 진동케 만드는 폴란스키의 카메라에 빠져들다 보면 신경증적인 강박과 불안에 삼켜진 트렐코프스키에 그대로 전이되면서 갖은 현실 균열의 징후와 그 인지에서 비롯한 고립감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여전히 내게 있어 로만 폴란스키 최고작은 [로즈마리의 아기]다. 허나 [로즈마리의 아기] 속 로즈마리는 자신을 지탱하는 끈을 놓지 않았고  [혐오]의 캐롤에게선 그 끈의 마디와 매듭이 제시된 데에 반해 [테넌트]의 끈은 밑없는 나락으로 빨려든다. 그에 매달린 트렐코프스키는 영화 진행과 함께 점점 분계선을 넘어 임계치에 달하고, 그 차이가 [테넌트]의 맨션을 도시 문명의 축소판으로, 트렐코프스키란 인물을 난파된 현대인 또는 박해받는 이방인의 표상으로 보이게 한다. 한편으론 폴란스키 본인이 직접 겪은 고충들 - [로즈마리의 아기] 개봉 뒤 사이비 종교 집단의 테러로 인한 아내 피살, 성추행 혐의로 유배되다시피 프랑스로 떠나온 일 - 과 맞물려 자전적 요인에 기인한 압박감과 죄의식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본작을 통해서 로만 폴란스키가 진정 포착하고자 한 건 무슨 거창한 메시지나 세계의 반영이라기보다 진짜 위협과 공포를 마주한 인간의 민낯이다. 원인과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오감에 각인되는 그 생생하도록 역겹고도 황홀하기까지 한 불측지연의 통각이 [테넌트]를 수작의 반열에 놓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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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제가 아파트 3부작을 좋아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시각적 공포보다는 정신병리학작 공포가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데 이 맛이 꽤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풀무 2016-03-14 06:10   좋아요 0 | URL
로만 폴란스키의 천재성을 새삼, 재차 확인했달까요. 아파트 삼부작은 정말이지 쫄깃쫄깃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