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담은 사진에 제목을 '봄밤'으로 붙일까 싶어 시들을 뒤졌다. 노릇하게 데워진 바람의 무릎이 세상 모든 창을 타넘는다는 류경무. 앞산을 바라보다 눈물이 나오기 전 아는 시인에게 쓸데없이 전화를 걸었다는 최병무. 그대가 이 봄밤 어느 마당가에 한 그루 살구나무로 서서 꽃을 피워내고 있다는 안도현. 봄밤엔 볕을 보지 않아도 되건만 네 얼굴이 더욱 빛나 아프다는 이성복.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이라는 김수영. 굴러다니는 빈 바람 소리 싣고서 겨우내 말라붙은 꿈을 적시며 떠도는 발들의 아픔이라는 최승자.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다는 변영로. 그러나 내게 가장 사무치는 봄밤 정취라면, 김윤아의 야상곡이다. 사진은 폐기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애달피 지는 저 꽃잎처럼
속절없는 늦봄의 밤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구름이 애써 전하는 말
그 사람은 널 잊었다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 같아 부질없다
꽃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 지네
이제 님 오시려나
나는 그저 애만 태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