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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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품을 낳는 것이 아니다. 작품도 감정도 일단은 세계에 내재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주워모아 손바닥에 올린 뒤 보여줄 뿐이다. 작품은 자기표현이기보다 세계와의 대화(커뮤니케이션)다. 이 세계관을 겸허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하는가, 작가로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대립은 근원적이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세계', p.26 -

 

머릿속에 구상한 이미지를 화면에 구현하기보다 눈앞의 이미지를 발견해 카메라에 담는 것에 익숙하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문예학을 전공하고 픽션 영화 감독 이전에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이력을 시작한 그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관객으로서 영화작가와 소통하고 교감함에 있어 당사자가 만든 영화들 이상의 창구가 없다고 여기지만 종종 영화 작업 배후와 이면을, 연출자 이전에 한 자연인으로서의 면모를 들춰보고 싶은 창작자가 있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중 한 명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니시시폰' 신문에 연재된 컬럼 중심으로 기존작들 속에 반영됐을 체험과 추억들은 물론 작품 골조를 이룬다 할 세계관과 연출관, 사변들까지 한데 묶어 엮은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는 내게 있어 적합하고 의미로운 책이었다.

 

​그의 연출작을 여러 편 봤지만 대표작 한 편만 고르라면 두말없이 [걸어도 걸어도]를 꼽게 된다. 한 웅큼 온기를 머금은 채 삶과 일상, 사람들 감정 면면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허나 결코 안온한 감상에 빠지지 않고 마음 한 켠 싸하게 파고 들어 세상의 빛과 음영까지 환기하는 그 특유의 시선 및 기조가 글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후반부 - 5장과 7장 - 에선 영상 매체를 포함한 매스미디어 전반에의 비판과 더불어 3·11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 일상과 가치에 대한 고찰을 통해 날선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까지 선보여 참신했다. 그 면면이 차기작들에 녹아들어 한층 더 깊고 풍요로운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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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10-0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앞의 이미지를 발견해 작품에 담는다는 생각과 말이 좋습니다. 저는 내일 바닷마을다이어리 볼 예정이에요^^

풀무 2015-10-08 16:5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은 일본에 계신 건가요..? 아님 부산국제영화제..? 암튼 부럽습니다. :)

프레이야 2015-10-08 23:32   좋아요 0 | URL
BIFF 내일 저녁 바닷마을다이어리, 매진이네요. 내일아침에 현장티켓팅 해야겠어요. 자리가 남아있을지ㅠ 고레에다 인기 좋군요 역시ㅎㅎ

풀무 2015-10-09 08:43   좋아요 0 | URL
지금쯤 티켓팅 하셨을지.. 꼭 성공하셨길요. 전 내년에 정식 개봉 거쳐 IPTV로 나오면 그때야 볼 수 있겠네요.

프레이야 2015-10-09 13:04   좋아요 0 | URL
전석 매진이군요. 대신 다른것으로 티켓팅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