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09년 8월 31일 월요일은 내 개인사에 있어 매우 뜻깊은 날이다. 당일 이사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그중 뼈아픈 것 하나가 예전 살던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수백 권의 소설을 분서(焚書)한 사건이다. 중2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엔 추후 아이들이 추리소설 입문할 때 필독서라고 판단되는 세 권만을 남겨뒀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독자들이 뽑은 베스트 10', '평론가 선정 베스트 10' 등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리스트야 워낙에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말년에 작가 본인이 직접 선정했다는 베스트 10 목록이다.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1939) / 워그레이브 판사 外 9인
2.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 / 에르큘 포와로
3. 예고살인 Murder Is Announced, A (1950) / 미스 마플
4.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 / 에르큘 포와로
5. 화요일 클럽의 살인 Thirteen Problems, The (1932) / 미스 마플
6. 0시를 향하여 Towards Zero (1944) / 베틀 총경
7. 끝없는 밤 Endless Night (1967) / 마이클 로저스
8. 비뚤어진 집 Crooked House (1949) / 찰스 헤이워드
9. 누명 Ordeal by Innocence (1958) / 아서 캘거리 박사
10. 움직이는 손가락 Moving Finger, The (1942) / 미스 마플
다만 저 리스트에 살짝 내 개인적인 취향을 얹자면 산만한 구성에 과도한 로맨스 풍이던 [움직이는 손가락]을 빼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전속 계약 출판사에 다짐 받아둔대로 본인 작고 후에야 발표된 에르큘 포와로 탐정 마지막 사건 해결 파일 [커튼]을 넣고 싶다.
아, 바로 이 제목이다. [세계의 명탐정 44인]과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 초등학생 때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당시 아르센 루팡과 셜록 홈즈 등에 푹 빠져있던 나로선 너무나 재밌어서 읽고 또 읽고 했지만 훗날 읽게 될 추리 명작들의 스포일러가 작렬하는 악서(?)이기도 했다. 추리소설 강국인 이웃나라 책을 무단으로 번역했다고 하는데, 원래 '명탐정 50인'이었던 걸 일본 탐정 여섯 명을 빼고 '44인'으로 줄였다고 전해진다.
1986년 초가을 즈음이었나. MBC 주말의 명화 시간 방영분으로 감상한 마이클 앱티드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1979년 영화 [아가사 실종사건]이 여지껏 인상 깊게 남아있다. 검색하다 보니 1년 전 같은 내용의 뮤지컬도 공연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