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 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론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 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오늘, 쉰이 되었다' 중에서 - 




5년 전 늦여름, 동망봉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래된 못을 빼내려다 못대가리가 떨어졌다
남은 못 몸뚱아리 붉게 녹슬어 있다
못을 박은 벽지 가장자리가 벌겋게 물들어 있다


지나버린 시간들이 있다
탱탱하게 녹이 슨 대못처럼 어쩔 수 없이 길들어진
내 가슴 가운데를 물들여놓은 시간들이 있다


더는 박을 수도 뽑을 수도 없는
더는 아무것도 아닌 무엇도 되지 못하는
그렇게 주저앉은 시간의 궁지窮地


- 홍경나, '녹(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8월 초순,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 고성·화진포·속초 등지로 휴가를 다녀왔다. 가장 몰입된 순간은 숙소 바로 앞에 펼쳐진 동해 바다 일출을 보던 여행 이틀째 아침이었다.

 

 

이른 새벽 잠이 깬 둘째와 해맞이 준비

 

 

곧 첫째도 합류

 

 

날씨 탓인지 동명일기 식의 극적인 장관은 없었다.

 

 

일출인지 낙조인지 모를. 헌데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금요일,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금주 아내 생일과 둘째 생일이 있고 차주엔 휴가다. 이번엔 워터파크 말고 해양박물관 들러 해수욕장엘 가보자는 약속, 그리고 여의도 광장에서 실컷 자전거 페달을 밟아보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2009년 7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09년 8월 31일 월요일은 내 개인사에 있어 매우 뜻깊은 날이다. 당일 이사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그중 뼈아픈 것 하나가 예전 살던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수백 권의 소설을 분서(焚書)한 사건이다. 중2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엔 추후 아이들이 추리소설 입문할 때 필독서라고 판단되는 세 권만을 남겨뒀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독자들이 뽑은 베스트 10', '평론가 선정 베스트 10' 등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리스트야 워낙에 여러 버전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말년에 작가 본인이 직접 선정했다는 베스트 10 목록이다.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1939) / 워그레이브 판사 外 9인
2.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 / 에르큘 포와로
3. 예고살인 Murder Is Announced, A (1950) / 미스 마플
4.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 / 에르큘 포와로
5. 화요일 클럽의 살인 Thirteen Problems, The (1932) / 미스 마플
6. 0시를 향하여 Towards Zero (1944) / 베틀 총경
7. 끝없는 밤 Endless Night (1967) / 마이클 로저스
8. 비뚤어진 집 Crooked House (1949) / 찰스 헤이워드
9. 누명 Ordeal by Innocence (1958) / 아서 캘거리 박사
10. 움직이는 손가락 Moving Finger, The (1942) / 미스 마플


다만 저 리스트에 살짝 내 개인적인 취향을 얹자면 산만한 구성에 과도한 로맨스 풍이던 [움직이는 손가락]을 빼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전속 계약 출판사에 다짐 받아둔대로 본인 작고 후에야 발표된 에르큘 포와로 탐정 마지막 사건 해결 파일 [커튼]을 넣고 싶다.

 

 

 

 

아, 바로 이 제목이다. [세계의 명탐정 44인]과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 초등학생 때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당시 아르센 루팡과 셜록 홈즈 등에 푹 빠져있던 나로선 너무나 재밌어서 읽고 또 읽고 했지만 훗날 읽게 될 추리 명작들의 스포일러가 작렬하는 악서(?)이기도 했다. 추리소설 강국인 이웃나라 책을 무단으로 번역했다고 하는데, 원래 '명탐정 50인'이었던 걸 일본 탐정 여섯 명을 빼고 '44인'으로 줄였다고 전해진다.

 

 

 


1986년 초가을 즈음이었나. MBC 주말의 명화 시간 방영분으로 감상한 마이클 앱티드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1979년 영화 [아가사 실종사건]이 여지껏 인상 깊게 남아있다. 검색하다 보니 1년 전 같은 내용의 뮤지컬도 공연됐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9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추억의 해문 출판사...
저도 장르소설 입문을 한 계기가 바로 해문 출판사 책 모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해서 한 권 한 권 모았죠. 모으는 재미가...
뭐, 책 디자인이 후지다, 중역이다, 번역 개판이다 말이 많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해문 출판사 욕할 생각이 1%도 없습니다.

해문 하니 갑자기 내 옛 친구 새끼 생각나네요..
내가 해문 책 읽자 ˝ 뭐 그런 책을 읽냐 ? ˝ 라고 말해서
저랑 대판 싸웠던 놈.. ㅎㅎ

그나저나 새벽 님 요세 웰케 소식이 뜸하십니까..

풀무 2016-02-19 22:32   좋아요 0 | URL
진짜 두세 달에 한번씩 다음 작품 나오길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의식있는 독자라면 하면 안 될 얘기겠지만, 사실 저 시절 저작권 제도 빈틈으로 해문출판사에서 책을 내줬기에 한창 목마르던 때 추리소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저로선 고마운 마음까지 듭니다. 당시 어렸던 제 눈엔 착착 감기는 무리없는 문장들이었고, 표지 디자인도 아마 영국판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데 저로선 더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0시를 향하여]나 [누명] 표지 같은 경우는 거의 예술 아니겠습니까..

몇 달 해보니 알라딘 서재가 포털 블로그와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뭐랄까, 각자 거점을 지니고 상호 교류하는 커뮤니티 느낌이랄까요. 눈치없이 굴기 싫어서 어찌 처신해야 좋을지 가끔 맘 동할 때 본거지 포스트들 옮겨 두고 혼자 소일하며 자숙하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2 09:19   좋아요 0 | URL
제가 네버와 알라딘 두 곳에 동시에 글을 올리잖습니까..
댓글 반응이 사뭇 다릅니다. 고게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 글에 알라딘에 댓글이 많이 달리면
반대로 같은 글이 실린 네이버에는 댓글이 안 달리더라고요..
관심사가 서로 정반대인 것입니다. 이게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풀무 2016-03-14 06: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야 요즘 네버 쪽에도 별 반응 없고 알라딘이야 워낙 덧글 안 달리고 하지만 곰발님 공간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실 네버 쪽은 다른 공간들 둘러 봐도 이제 진솔한 소통이 거의 멸종된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