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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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인터넷 시대를 살았다면 미시마 유키오는 희대의 악플러, 디스쟁이가 됐을 거다. [부도덕 교육강좌] 책 자체가 세간에 부도덕하다고 여겨져 눈총받는 행위들의 이면을 들춰 보고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한번쯤 삐뚜루, 뒤집어 접근한다는 취지에서 쓰여진 글들이니 저자 나름의 반의적인 교훈, 우화집인 셈.

 

읽어 가며 미시마 유키오가 어느 정도의 마초였는지, 동시에 얼마나 날카로운 정신을 지녔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전후 일본의 서민적 행복을 경멸했고 그 서민적 가치 위에 영위되는 일상생활을 냉소했다. 구시대적이면서 그 아취를 향유할 줄 안다는 점에서 빼도박도 못할 고전주의자이기도 하고, 자뻑 대마왕이란 건 오래 전에 감지했으나 의외로 귀여운(?) 구석까지. , 인상깊던 소설 [가면의 고백]이나 [금각사]에 비하면 너무 독자를 의식했달까. 펜끝이 뭉뚝한 느낌이다. 종종 논조도 갈팡질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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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09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각사... 정말 강렬한 소설이었죠 ! 유키오는 확실히 문제적 인간입니다. 문제적 인간이야말로 매력적인 존재 아니겠습니다. 강렬한 생을 살다 갔어요. 전 이상하게 유키오도 좋고 인간실격 쓴 작가도(갑자기 이름 생각 안남..) 좋더군요. 서로 성향이 극과 극인데 말입니다.

풀무 2014-08-09 15:38   좋아요 0 | URL
앗, 곰발님 덧글 보고 나니 제목을 '문제적 마초가 바라본..'으로 달걸 그랬다 싶습니다. (지금 고쳐야지..) 그죠. 서로 자아 의식과 세상을 보는 위치는 전혀 달랐는데 다른 방향에서도 인간을 제대로 꿰뚫었기에 독자 입장에선 둘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전 아직 다자이 오사무 작품을 한 권도 안 읽었네요. 그냥 주워들은 풍월로 ^^;)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0 17:46   좋아요 0 | URL
서쪽 님하고는 안 맞을 겁니다. 하루 종일 징징대거든요. 오사무 말입니다..ㅎㅎㅎㅎ근데 그 약함'이 묘하게 심란하게 만듭니다. 유키오의 강함과는 전혀 반대입니다.

풀무 2014-08-11 08:01   좋아요 0 | URL
어.. 곰발님 소개 들으니 은근 더 땡기는데요. 하하.
모르셨구나.. 제가 원래 오사무 류 인간에 가깝습니다. 지금 제 모습은 강인함을 강요받아 상당부분 가공, 제조된 모습..
 
괴짜 경제학 (개정증보판)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4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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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대표한다면 경제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세상을 의미한다.  - 본문 30쪽 -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을 굳이 요약하자면, 통계 자료를 통해 주류 미시경제학적 마인드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상식과 사회 통념의 표층을 벗겨내고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다루는 주제가 통상적인 주류경제학보다는 사회학(Sociology)에 가깝기도 하다.

 

경제학 서적이란 모름지기 산업, 금융, 정책 등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류의 책을 통해서 개론 수준에서나마 경제학을 훑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내용의 시덥지 않은 책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많으니 읽지 않는게 좋겠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충실한 주류경제 서적이 아니다. 다만, 책의 논지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 계량경제(Econometrics)적 방법론만은 전천후로 활용하고 있다. 사회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동인이 바로 거래 인센티브라는 경제학적 관점으로 각 장에서 풍부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분석, 재해석하며 다음의 내용들을 고찰하고 있다.

 

1장 - 이기심과 인센티브의 다층적 작용으로 인한 미국 교사들의 자발적인 시험 점수 조작과 스모선수들의 승부 조작 현상

 

2장 - 부동산 중개업자 등 전문가들과 KKK단은 폐쇄적인 정보 비대칭성을 활용하여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힘을 행사한다는 점(영화계의 선동꾼 마이클 무어 감독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3장 - 마약 범죄 조직과 맥도날드 등 기업들의 토너먼트식 조직생태와 왜곡된 임금구조는 놀랄만큼 유사하며 그 이면에 다양한 인센티브 역학이 작용한다는 점

 

4장 - 90년대 획기적인 미국 범죄율 감소의 진정한 원인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치안정책 혁신이나 경제호황 등이 아니라 20년 전부터 시행된 낙태허용법안이라는 점

 

5장 - 자녀 양육 기술의 중요성은 과대평가되고 있으며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 보다 정작 부모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 실제 아이들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는 점

 

6장 - 흑인문화는 인종불평등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까우며 인기있는 이름 유행이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부모들의 바램이 투영된 형태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순환되지만 정작 이름 자체와 아이들의 성공 여부는 관계 없다는 점

 

역시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 맞구나 하면서 불쾌감을 자아내는 명제들도 있을 수 있으나 저자에 따르면 '고상한 이상 세계를 반영하고 주입하는 철학적, 윤리학적 가치관에 중독된 편견'이 거부감의 원인일 수 있다.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경제학적 마인드로 재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우리 주변 도처에 산재한 주제들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현상 이면의 본질을 살피는 통찰력으로 도발적이지만 적절한 관점을 이끌어 내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추출한 후 통계 분석을 통해 통념을 뒤집는 객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론에 이 책의 진정한 의의와 재미가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걸출한 저작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스티븐 래빗처럼 경제학적 사고의 범위를 넓히고 수학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회과학 분야와 접목시키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학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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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라딘 최초의 리뷰인가요 ? 감동의 눈물이...

풀무 2014-07-29 17:09   좋아요 0 | URL
곰발님을 감복시키다니 저도 기쁘지만 예전에 써둔 리뷰 옮긴 것입니다. 흑흑.

곰곰생각하는발 2014-07-29 18:08   좋아요 0 | URL
흑흑흑....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오퍼스 7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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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권의 책을 더 구비하기로 결정했다. 어제 들른 도서관에선 신간 한 권 미입고에 인문, 과학 서적 세 권은 모두 대출 중이었다. 오프라인에서 실물 확인을 거쳐 인터넷 주문을 넣는지라 오늘은 귀가 중 가까운 반디 앤 루니스에 들렀으나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Aginst Interpretation and Other Essays)]를 제외하곤 진열수량, 재고수량 모두 '0'이다. 아무래도 주말에 나들이 겸 광화문 교보로 나서야겠다.

 

[해석에 반대한다] 속 글들이 예상 밖으로 눈에 착착 감겨들어 다행이다. 책 제목은, 표면적인 내용의 파편들을 일련의 단위체 혹은 요소로서 뽑아 임의로 배열하면서 예술의 텍스트를 바꾸고 한정짓는 해석에 반대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내가 예전 포스팅에서 저지른,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를 '황량한 산업사회와 인간 내면의 암울한 지옥'으로 안이하게 치환시켜버린 따위의. 혹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플라톤주의와 러시아 정교의 틀에 주저앉히는 부류의. 초벌독서 후 내가 뽑아낸 책 속 키워드는,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투명성'. 그리고, 해석의 충동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순수하고 관능적인 '직접성'이다. 두꺼운 책의 중간에 마침 로베르 브레송과 장 뤽 고다르 감독에 대한 얘기가 있어 그곳을 기점 삼아 상세히 읽어갈 예정이다. 수전 손택은 장 뤽 고다르를 '사상을 진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사상을 표현할 새로운 영화 언어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한 최초의 감독'이라 평하고 있다.

 

 

그녀의 생을 살다

 

젊고

예쁜

파리의

여점원이

몸은

팔았으되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지키면서

허울의

세계를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

한 편의

영화

가능한

모든

심오한

인간적

감정을

체험하게

해주는 영화

장-뤽

고다르가

만들고

안나 카리나가

연기한

연속

일화,

그녀의 생을

살다

 

 

책의 311쪽, 4장 중 '고다르의 그녀의 생을 살다' 챕터 부록을 옮겼다. [그녀의 생을 살다 (Vivre Sa Vie, 1962년)]가 파리에서 처음 개봉됐을 때 고다르 감독이 직접 작성한 광고문안이라 한다. 영화예술의 전방위에서 기존의 틀로는 접근 난해한 작품을 많이도 찍어낸 양반이 정작 자작의 변은 참 간결하고 쉽게도 풀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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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좋군요. 저도 수전 손택 항상 애장서 베스트 넘버1입니다.
마음에 들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고치는 작가로 꽤 유명하죠. 손택 글 보면 곰삼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쓰지 않는... 그런 사유, 참. 좋습니다.

풀무 2014-07-19 23:41   좋아요 0 | URL
언제 곰곰발님 공간에 수전 손택 다른 책도 좀 소개해 주세요. 몇 권 더 접해보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7-23 10:12   좋아요 0 | URL
저도 소개하고 싶은데 수잔 책 전부 옛 애인 읽어보라고 줬습니다. 옛 여친이 순탁을 좋아했거든요..... 자료 없이 쓰려니 부담이... ㅋㅋㅋㅋㅋ

풀무 2014-07-23 13:5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여성들이 더 반할만 한 지식인 같기도 합니다. 음. 여튼 순탁 여사 책은 나중에라도 몇 권 더 읽어야겠어요.
 
솔라리스 (2Disc)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니콜라이 그린코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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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부질없다. 우리에게 우주 정복의 야망 따윈 없다. 지구의 영역을 우주로 확대할 뿐이다. 더 이상의 세계는 필요 없다.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할 뿐이다.  - 영화 [솔라리스 (1972)] 중 스나우트 박사의 대사 -

 

바다에서 발생하는 생체 전류가 인간의 두뇌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혹성 솔라리스로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도나타스 바니오니스)이 파견된다. 솔라리스의 우주 정거장에서 십 년 전 자신의 냉정함과 무심함에 괴로워하며 자살한 아내 하리(나탈리아 본다르추크)를 대면하게 된 크리스는 소환된 기억의 고통에 노출된다.
 
솔라리스 혹성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스스로 사고하며 대기권의 생물체로부터 잠재 의식을 받아들여 그 기억 속 존재를 물질화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형상화해낸 하리의 모사체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토로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실체로 묘사된다. 그녀는 단순한 모사체가 아닌, 크리스 자신의 기억과 자의식의 투영이며 죄책감과 양심의 일부이다.


회피와 연민을 넘어 무의식 속 자아까지 대면하고 직시하며 성찰하는 장(場) 솔라리스에서 그들 부부는 진정한 화해에 이른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크리스 자신 내면과의 화해이다. 그리고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가 끊임 없이 복제해 보내오던 하리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대해 '거울로 가득한 미로에서 어떤 길로 들어설지 모른 채 무수히 많은 열쇠를 들고 문 앞에 서있는 듯한 체험'이라 했다. 아마도 어느 길로 들어서든 자아 성찰과 심오한 철학적 명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솔라리스]는 결코 SF라는 장르 안에 가둘 수 없는 영화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사랑과 기억, 존재 본질과 심연을 사색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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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 존 길러민 연출의 1978년작 [나일 살인사건]을 방영한단 소식을 접했다. 추리소설 광이던 어린 시절 원작 소설을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에 비해 뛰어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구나 티비 브라운관으로 두 차례 접했던 영화는 제인 버킨, 베티 데이비스, 올리비아 핫세, 미아 패로우 등 당대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호화 배역진에 비해 작품 자체는 맥빠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방영 소식에 다시 한 번 볼까 고민 중이나 아마도 거듭 보진 않을 듯한데 다만, 그로 인해 [나일 살인사건]과 인물 구도 및 플롯이 거의 겹친다고 할 수 있는 같은 저자의 [끝없는 밤]이 연상됐다.(역시 영화화 됐으나 원작 특유의 나른하고도 음습한 분위기만 답습했을 뿐 영화적으론 평작에 그쳤다.) 아니, 정확히는 [끝없는 밤] 중에 인용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혹은 [순수의 예언]이 떠오르더니 도무지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 [나일 살인사건(Death on the Nile, 1937년)]과 [끝없는 밤(Endless Night, 1967년)]은 시간과 공간적 배경 차이 뿐 두 여성과 한 남성의 삼각관계로 진행되는 중심 줄거리부터 트릭 구성 및 살인 음모의 배후와 결말까지 비슷하다. 허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 뿐 아니라 작품의 몽환적인 분위기, 장르소설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음울한 본능과 욕망 그리고 타락과 파멸을 예리하게 들춰낸 문학적 품성 측면에서 [끝없는 밤]이 몇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30년 늦게 출판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크리스티 여사가 애정을 갖고 있던 [나일 살인사건]의 플롯을 한층 완숙해진 필력으로 문학적인 야심까지 곁들여 자기 리메이크 삼아 완성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 매일 밤 또 매일 아침 어떤 이는 불행으로 태어나고 매일 아침 또 매일 밤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으로 태어나며 누군가는 끝없는 밤으로 태어난다 ...'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끝없는 밤]에 모티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여러 번 중요하게 인용된 시 [순수의 전조] 전문을 남겨둔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그대 손 안에서 무한을 붙들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붙잡아라

 

새장 속 붉은 가슴 울새 한 마리가

온 천국을 분노케 하고

산비둘기 가득한 둥지 하나가

지옥 구석구석까지 떨게 한다

 

주인집 문간에서 굶어 죽은 개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며

길 위에서 혹사 당한 말 한 마리가

천국에서 인간의 피를 요구한다

 

사냥꾼에게 잡힌 토끼의 울부짖음

갈기갈기 뇌를 찢고

날개에 상처 입은 종달새는

천사의 노래를 멎게 한다

 

무기를 다듬은 싸움닭이

떠오르는 태양을 위협하며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

지옥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고양한다

 

여기저기 헤매는 들사슴은

인간 영혼을 근심에서 지켜주며

혹사 당한 어린양은 반목을 일으키나

백정의 칼을 용서한다

 

저물 무렵 활개치는 박쥐

믿음 없는 이성에서 비롯되며

밤을 노래하는 올빼미는

신심 없는 자들의 두려움을 얘기한다


작은 굴뚝새를 해하는 이

인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황소를 분노케 하는 자

여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날파리를 죽인 어린 소년

거미의 증오를 받으며

풍뎅이의 정령을 괴롭히는 자

끝없는 밤에 침실을 엮는다

 

나뭇잎 위 애벌레는

그대 어머니의 슬픔을 반복하니

나방과 나비라도 죽이지 말라

최후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

 

전쟁을 위해 말을 훈련하는 자

극지대를 통과 못하니

거지의 개와 과부의 고양이를 먹이면

그대가 살찌리라


여름 노래를 부르는 각다귀는
험담하는 혀에서 독을 얻느니
뱀과 도룡뇽의 독은
질투의 발에 난 땀이며
꿀벌의 독은
예술가의 질투이리라

 

왕자의 예복과 거지의 누더기는
불쌍한 이의 가방에 핀 독버섯이며
악의로 말하여진 진리라도
그대가 꾸며낸 모든 거짓을 이긴다

 

응당 당연한 일이니
인간은 환희와 비탄을 위해 태어난 것
우리가 이를 올바로 알 때
세상을 무사히 지날 수 있다

 

환희와 비탄은 잘 직조된
신성한 영혼을 위한 옷
모든 슬픔과 기쁨 아래
비단으로 엮인 기쁨이 누빈다


아기는 강보 이상의 존재

이 모든 인간의 땅을 아울러

도구가 만들어지고 우리 손이 태어남을
모든 농부는 알고 있다


모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영원한 아기로 만들어줄지니

이는 여성의 지헤로 인해 간파되며
그 자체의 기쁨으로 돌아온다

 

양과 개의 우짖는 포효 소리는
하늘의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이니

채찍 아래 우는 아이
죽음의 영토에 복수를 기록하고
허공에 펄럭이는 거지의 누더기
하늘을 갈기갈기 찢는다


칼과 총으로 무장한 병사
한여름의 태양을 겨냥하며
가난한 자의 동전 한 닢은
아프리카 해안의 모든 금보다 값지다

 

노동자의 손에서 짜낸 동전 하나로
구두쇠의 땅을 사고 파니
높은 곳의 가호 아래
온 나라까지 사고 팔리라

 

갓난아기의 믿음을 조롱하는 자
늙어 죽을 때 조롱받게 될 것이며
아이에게 의심을 가르치는 이
결코 썩어가는 무덤에서 나오지 못한다

 

아기의 신념을 존중하는 자
지옥의 죽음을 이겨낼 것이니
아이의 장난감과 노인의 이성은
두 계절에서 맺힌 하나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교활하게 소곤대며 묻는 자
답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의심의 말에 답하는 이
지혜의 등불을 꺼뜨린다

 

일찍이 알려진 가장 강한 독은
시저의 월계관에서 왔으며
무(無)는 인류를 파멸시키리니
마치 갑옷의 조임쇠와도 같다


금과 보석으로 쟁기를 두르면
평화의 기술은 질투에 굴복하고
수수께끼나 귀뚜라미 울음은
맞는 답을 의심하며
개미의 1인치는 독수리의 1마일,
절름발이 철학자를 미소짓게 한다


스스로 보는 것을 의심하는 자
결코 믿지 못하리니 좋을대로 행하라
태양과 달이 서로를 의심하면
둘 다 곧 사라지리니
열정 속에 빠져듦은 좋으나
열정이 그대 안에 깃듦은 좋지 않다

 

나라에서 허한 창녀와 노름꾼이
나라의 운명을 정하고
거리를 맴도는 창부의 외침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짜내며
승자의 환호성은 패자의 저주이니
죽은 영국의 시체 앞에 춤을 추리라

 

매일 밤 또 매일 아침
어떤 이는 불행으로 태어나고
매일 아침 또 매일 밤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으로 태어나며
누군가는 끝없는 밤으로 태어난다


우리는 거짓을 믿기 마련
밤에서 태어나 밤에 사라질 눈이니
우리가 눈을 통해 보지 않을 때
영혼의 빛은 광채 속에 잠든다

 

어둠에 드리운 가여운 영혼에게
신은 현현하고 신이 곧 빛이 되나
빛의 영역을 사는 영혼에겐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

 

책과 인터넷을 뒤져 봤으나 내 머리와 가슴에 자연스레 와닿을 정도로 매끄럽게 번역된 시 전문을 찾을 수 없어 직접 영한사전 뒤져가며 다듬어 옮겼다. 행여 참조하실 분들께선 여기 적힌 시가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공인된 번역이 아닌, 어느 아마추어의 자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음을 염두에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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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from 잿불의 기억 2016-02-18 16:36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탄생 125주년을 맞아 영국 국영방송 BBC에서 그녀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를 3부작 드라마로 제작·방영 중이다. 오웬이라는 익명의 인사에 의해 '인디언 섬'에 있는 외딴 별장에 초대된 각계 여덟 손님과 집사 부부의 연이은 죽음을 다룬 미스터리로, 1945년에 만들어진 영화 속 설정을 차용해서 원작에 나오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 대신 꼬마 병정 인형으로만 바뀌고 그 특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