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2Disc)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니콜라이 그린코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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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학은 부질없다. 우리에게 우주 정복의 야망 따윈 없다. 지구의 영역을 우주로 확대할 뿐이다. 더 이상의 세계는 필요 없다.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할 뿐이다.  - 영화 [솔라리스 (1972)] 중 스나우트 박사의 대사 -

 

바다에서 발생하는 생체 전류가 인간의 두뇌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혹성 솔라리스로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도나타스 바니오니스)이 파견된다. 솔라리스의 우주 정거장에서 십 년 전 자신의 냉정함과 무심함에 괴로워하며 자살한 아내 하리(나탈리아 본다르추크)를 대면하게 된 크리스는 소환된 기억의 고통에 노출된다.
 
솔라리스 혹성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스스로 사고하며 대기권의 생물체로부터 잠재 의식을 받아들여 그 기억 속 존재를 물질화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형상화해낸 하리의 모사체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토로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뇌하는 실체로 묘사된다. 그녀는 단순한 모사체가 아닌, 크리스 자신의 기억과 자의식의 투영이며 죄책감과 양심의 일부이다.


회피와 연민을 넘어 무의식 속 자아까지 대면하고 직시하며 성찰하는 장(場) 솔라리스에서 그들 부부는 진정한 화해에 이른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크리스 자신 내면과의 화해이다. 그리고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가 끊임 없이 복제해 보내오던 하리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스웨덴의 거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대해 '거울로 가득한 미로에서 어떤 길로 들어설지 모른 채 무수히 많은 열쇠를 들고 문 앞에 서있는 듯한 체험'이라 했다. 아마도 어느 길로 들어서든 자아 성찰과 심오한 철학적 명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솔라리스]는 결코 SF라는 장르 안에 가둘 수 없는 영화다. 인간에게 있어서의 사랑과 기억, 존재 본질과 심연을 사색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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