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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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고자 하는데 주변에서는 진짜 걱정되어 하는 말인지 어쩐지 알길은 없지만 꼭 한마디씩 한다. 그렇게 살아서 괜찮냐고.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지 않냐고. 그럴때마다 난 제법 그럴듯한-내 생각에는-말들로 안심시키곤 했던 것 같다. 때때로는 스스로 무너져 나 정말 괜찮을까? 자문하며 밤잠을 설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또 나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책속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노래에서. 가수 양양도 노래 '이 정도'를 통해 알게되어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에세이 출간은 그래서 참 반가웠고 책이 내 품에 안기기 전 며칠은 많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품에 안고보니 너무 낯설었다. 그녀 스스로 타인들의 기준과는 상관없다지만 내게는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이 있고 포털에 검색하면 인물정보가 뜨고 이젠 메이저 출판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에세이까지 출간했으니 더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 내맘과는 상관없이 책 제목은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이란다. 비슷한. 하기사 비슷한게 '똑같다'와는 하늘과 땅차이니까. 괜스레 혼자 서운해하면서도 페이지를 넘겼다.

 

나에게 이런 불면의 밤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벌레 때문에 뒤척이다가 잠을 포기한 밤 빼고. 사랑 대문에, 이별 때문에 울고 웃던 밤 빼고, 이렇게 제대로인 불면은 처음이다.

-part 01 노래는 中에서-

 

일을 잠시 쉬는 동안 지독한 불면의 밤을 보냈었다. 덕분에 책도, 영화도, 음반도 맘껏 들을 수 있었지만 정말 자고 싶었던 몇몇 밤에는 그조차 맘에 들어오지 않아 왜 잠이 안올까에 대한 의문으로 밤을 보내던 때. 돌이켜보면 그렇게 괴로울 법한 밤 나도 양양처럼 은근히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즐거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 새벽4시 경의 파란밤을 만나는 기쁨을 아는 양양이 참 좋았다. 뭣보다 또다시 그런 즐거운 밤을 맞이할 수 있다면 시집을 한번 적어봐야겠다. 이렇게 좋은 방법을 그녀 혼자만 알고 있었던 것인가. 나만 몰랐던 것인가.

 

좋아하는 음약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그것들이 내 인생의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마법 같은 찰나가 필요한 법이거든요.

-part 02 기차는 떠나네 中에서-

 

파트2는 기차는 떠나네라는 여행이 주제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남기고픈 꼭지는 또 노래에 관한 것이다. 명곡들이긴 하지만 저자가 꼽은 노래들은 내가 꼽은 내인생의 노래와 중복되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아, 이 노래도 좋지 정도일 뿐. 그래서 또 의외로 크게 감동받지 못했다. 그건 이 노래가 인생의 노래가 될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 것 같다. 명곡보다 자신의 추억속에 살아숨쉬는 노래, 그 노래가 인생의 노래가 될테지. 그러다 아, 이 멋진사람 양양! 할 때를 만난다. 출근할 때 혹은 아주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꼭 화장하는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반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눈에 확 띄게 예뻐지는 모습을 보고 시샘하기도 하고 굳이 말하자면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지 못하고 좋지 않게 보았었는데 뜨끔했다. 저자의 눈에는 그것이 이렇게 보인단다.

 

 지하철에서 분을 바르는 여자를 바라본다.

분 냄새는 엄마 냄새라고만 생각했는데

분 냄새는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의 냄새라는 걸 이제야 알겠네.

 

-part 03 쳐다봐서 미안해요 中에서-

 

엄마냄새.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의 냄새. 내게서 분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이 글을 보고 알았다. 난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여자의 특권을 잠시 잊고 살았나보다. 아직 30대 인데도 말이다. 씁쓸한 맘에 포장마차란 주제를 만나자 화색이 돈다. 소주는 못마시지만 나도 포장마차는 참 좋아한다. 그치만 역시나 자주는 커녕 포장마차에 안가본지 꽤 오래되었다. 두점박이 사슴벌레. 가면 저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내게도 욕은 하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그 '이모'님이 친근하게 느껴질까. 이름도 재미있는 포장마차 덕분에 한번 가보지도 않은 그곳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노래가 되지 못하고 글 한 줄이 되지는 못해도 작은 종이 쪼가리에다 '양파, 마늘, 엄마한테 전화하기' 번진 글시로 이렇게 적어두고 그제서야 손을 씻는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시인이 아닌가요.

 

-part 04 시인의 밤 中에서-

 

 

책 안에는 진짜 '비슷한 사람'이 마중나와 있다. 아이같은 어투에서 커피숍에 앉아 끄적거렸던 낙서와 흡사한 이야기도 있고 어머 이거 진짜 이건 내얘긴데 하는 글들도 있다. 양파, 파 그리고 마늘을 까야할 때면 어릴 때 눈물나서 싫고 손에서 냄새가 오래남아 있어 싫었다. 그때는 강제로 시킨것도 아닌데 그냥 싫었다. 서른이 넘고서야 엄마는 그 오랜세월 어찌 그 많은 양을 거의 매일같이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하면서도 맘 한켠이 쓰렸다. 그 맘이 들고 난 후에는 부러 엄마가 식사준비를 할 때면 곁에서 도와드렸던 것 같다. 이런 나도 시인의 꼬랑지쯤은 되려나. 

 

마지막 part 05 의 챕터 제목은 우린 참 비슷한 사람이다. 앞에서도 할머니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긴 했지만 아, 다시금 책이란 정말 인연이란 것이 있나보다 싶었다. 할머니를 부르며 엄마의 안부를 부탁하는 부분에서 결국...아! 양양씨 이럼 안된다구요! 책 읽다말고 울면서 기도했잖아요....

 

 할머니, 우리 엄마 착하고 그 여린 마음도 할머니에게서 온 것이라면, 할머니가 다시 엄마 좀 안아주세요. 할머니는 우리 엄마의 엄마니까, 우리 엄마가 "엄마....." 하면서 그 품에 얼굴 묻고 아이처럼 울 수 있게, 울면서 그 시린 마음 다 털어버릴 수 있게 엄마 좀 안아주세요.

-part 05 우린 참 비슷한 사람 中에서-

 

잠시동안의 질투를 잊고 2시간 동안 양양과의 공감속의 뒷표지에 적힌 추천글들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았다. 뮤지션 하림과 이상순의 말처럼 그녀의 이야기들이 노랫말이 되는 과정이 마치 옆에서 지켜본 것 처럼 연상된다. 혹 그녀가 쳐다봐서 미안하다던 사람 중에 내가 있진 않았을까, 그녀가 떠났던 여행길의 배경 어딘가에 내가 아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은 책 제목처럼 그리고 그녀의 앨범타이틀처럼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같다. 그래서 쓸쓸하지만 슬프지만은 않게되어 책을 읽고 난 뒤에 난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아 그녀에게 고맙다. 좋은 노래도 그리고 그 노래가 되었던 이야기가 담긴 이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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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다가 놓쳐버리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 - 중국 최고의 심리 전문가 바이징샹의 인생 강의
바이징샹 지음, 주은주 옮김 / 타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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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러나 실수할 때 마다 자책하고 얼버무리는 것으로 끝내면 곤란하다. 실수와 자책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연초, 올 해는 정말 달라지겠다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자기개발서를 몇 권쯤 읽었을까.  블로그를 뒤적여보니 적어도 쉰 권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그중 대다수가 깨달음을 던져주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아주 넘치게 안겨줬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나 책의 잘못이 있는게 아니라 반성만하고 실천하지 않은 내 탓이다. 하지만 무조건 내탓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억울한감도 없지 않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자기개발서를 읽고 충분히 반성하고 깨달은 이후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고, 이런저런 자기개발서 다 읽으면 좋겠지만 시간적 여유나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일단 이 책 한권이라도 제대로 보자.  저자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은 핑계, 변명 그리고 습관이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나름의 변명과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그럴듯한 변명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계획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완벽주의에 가까워 도무지 실천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경우다. 이럴 때는 아주 작은 것 부터 조금씩 고쳐가면 되는데 새해 계획중에 빠지지 않는 것 두가지. 운동과 어학을 예로 들자면 학생이거나 직장인일 경우 추가로 시간을 내야하기 때문에 새벽반을 고집하게 된다. 첫 날 잘일어났다면 상관없지만 지나친 기대와 긴장감으로 인해 늦게 잠이들어 정작 시작 당일부터 지각하는 경우가 있다. 아에 늦잠을 자게 되어 불참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럴 경우 자책하고 계획을 관두려 하지말고 늦게 잤으니 오늘은 일찍 자는 아주 간단한 문제해결 부터 수면시간을 무리하게 줄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므로 수면시간을 유지하면서 일찍 잠들 수 있도록 스케쥴을 변경해주면 된다. 

 

"쉼 없이 연속적으로 버티는 것은 인류 습관의 법칙에도 맞지 않으므로 자신에게 걸맞는 버티기 쉬운 계획을 새로 짜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반드시 휴식 시간을 포함시켜야 하고, 돌발적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또 과거의 상처나 사건으로 인해 현실을 부정하거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 한다. 학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모든 실패의 탓을 '학위'에 떠넘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노력해보는 것이다. 해당 대학을 가지 못했다면 대학원으로, 대학원을 갈 수 없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대체하는 방식인 것이다. 한꺼번에 완벽하게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하려들지 말고 작은 것 부터 꾸준히 하는 방식으로 '습관'을 고쳐나가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단 사회생활이나 대외적인 성공뿐 아니라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일전에 읽었던 다이어트 만화등에서 보았던 내용이 좀 더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심리상담가이자 실제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습관'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이어트 역시 바로 날씬해 지려는 습관, 뚱뚱했던 습관을 조금씩 버리는 것 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좋은 약을 먹으면 일시적인 감소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평생 그 약을 먹고 살 수도 없을 뿐 더러 어느정도 효과를 보았다고 중지하면 '요요현상'이 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체지방을 감소시키기 위해 약, 무리한 운동, 절식이 효과적이긴 하지만 늘어나는 체지방을 중지시키는 것 또한 다이어트가 될 수 있다.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지킬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을 세워 매일 조금씩, 다이어트도 다른 문제해결과 마찬가지로 차분히 노력해야한다.

 

"혹여 다이어트에 실패했다면 다른 데서 변명거리를 찾지 말라. 다이어트 실패의 진짜 원인은 최선을 다하지도, 끝까지 해보지도 않은 자기 자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을 포기한 바로 당신 자신에게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 중 중요한 것만 추려서 거의 새로 쓴 거나 다름없을 만큼 수정작업을 거쳤으며 '보통 사람'의 '보통 이야기'로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이 한마디 말에 다시 큰 위로를 받았다. 내게 이렇게나 문제가 많았던가 싶었는데 결국 늘 반성만 하고 생각만 하다 실천으로 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원인과 과정은 보통의 사람이 겪는 일상이란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기 습관의 본모습을 분명히 들여다보게 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부정적 습관을 개선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책의 내용은 대략 위와 같지만 반드시 책을 직접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데 그 까닭은 저정도의 내용만 가지면 아, 조금씩 천천히 습관을 바꾸라고 하는 자기반성 정도에서만 멈출 확률이 높은데다 생각만 갖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히 해왔던 방법이다. 생각은 실천보다 쉽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겠다고 마음먹는건 굳이 이 책이나 이 리뷰의 도움없이도 할 수 있지만 책을 다 읽고 어떤 깨달음이 왔는지, 계획을 차근히 적어보면서 읽고 났을 때 진정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지점에 표시를 해둔다는게 다 하고 나니 거의 책 전부를 표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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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 리스크 사회에서 약자들이 함께 살아남는 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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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탁에 앉아 있어도 가족이 따로따로 딴 음식을 먹고 있다면, 이것도 '혼자 먹기'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모두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혼자 먹기'에 속한다.

 

20,30대가 주류이긴 하지만 적게는 10대부터 많게는 50대까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근래들어 '혼자 밥먹기'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온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의 고급식당부터 학교의 공공화장실까지 그들이 혼자 먹을 수 있다고 인증을 남기는 장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함께 먹을 수 없어 혼자 먹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점차 자발적인 '혼자 밥먹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며 타박하거나 아에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슬슬 상처가 될 법한 악플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친구혹은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고 믿고있는 사람들 중 저자, 우치다 타츠루의 이론에 입각해 진짜 '혼자가 아닌 함께'식사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책,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는 몇 년전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 중에서 몇가지 주제를 모아 재구성한 작품으로 타이틀이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라는 다소 매몰차고 냉철한 비판조인 까닭은 실제 타인의 저술에 반박하듯 펴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책의 대략적 주제는 결혼하지 않고 혹은 가족을 부양치 않고 사는 사람들의 제법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을 뿐 더러 마치 혼자사는 것이 함께 하는 공동체보다 더 나은 것인양 보여지는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혼자 못사는 것을 진짜 '재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려는 노력없이 '자립'아닌 '고립'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인 셈이다. 저자의 말처럼 특히 '노동'에 관한 부분은 돌이켜 봤을 때 다소 강하게 표현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현재 일하지 않거나 취준생인 독자라면 위로가 아닌 채찍에 서러움이 몰려들 수도 있다. 일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못하는 현실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부분은 사회적인 문제가 함께 맞물려있는 부분이라 우선 개인적인 측면에서 '일을 하지 않은려는 사람'에 한해 말을 하자면 저자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렇군, 노동이 자기표현이라면 그런 행동은 매우 사리에 맞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동은 자기표현도 아니고 예술적 창조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의무다.

 

​두어달 전 읽었던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이란 책이 생각나는 챕터로 노동은 순수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의무'라는 점에서는 두 저자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책의 리뷰를 작성할 당시에는 자기표현이나 예술적 창조를 위한 노동을 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자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의무라고만 하니 역시나 또 완벽하게 공감되지 않는다. 몇몇 독자들이 50년생인 저자의 나이를 언급하며 일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부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도 어느정도 인정한-이 바로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이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맞지않은 정규직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할 뿐 아니라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이라는 목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태를 꼬집은거라 볼 수 있다.

 

확실히 어떤 종류의 문화는 돈을 주고 해외에서 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풍토에 뿌리내린 깊고 따뜻한 '친밀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점점 개인이 공동체활동에서 벗어나 고립되려는 까닭 중 다른 큰 이유는 '글로벌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흐름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화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나또한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부분은 역시나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SNS 역기능과 맞물린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몇시간 혹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려고 하거나 국내의 정세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적으로 쫓으려는 의식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과의 거리를 점점 멀게할 뿐이다. 또한 지나치게 간섭하려는 것은 반대로 타인이 나를 지나치게 간섭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대체가능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것은 글로벌화에 흐름을 쫓아가면서 반대로 전혀 타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글로벌화의 길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에는 무수한 '낡은 습관' 이 있고, 무수한 성적 금기가 있다. 거기에 대고 일일이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시오'라고 통고하는 것 자체가 계몽적인 실천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효 있는 계몽적 실천이 될 수 있으려면 '낡은 관습'을 대신하여 동일한 인류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의제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서두에 언급했던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떠올랐는데 마지막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동체'적인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진행중인 상황으로 몸이 불편한 누군가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안타까운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듯 올렸더니 단순히 댓글로 위로하는 것 뿐 아니라 모금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전달하게 되었고 이일을 계기로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은 그 고마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등 기부문화가 파급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물론 이런 좋은 일을 악용하는 사례가 몇차례 발생한 뒤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혼자 밥먹기'를 앞다투어 인증하려던 사람들이 '나눔인증' 하려고 더 열성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저자의 조언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수록 증여와 답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 자기를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소해도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주는 사람은 이 사이클 안에서 '중심점'이 됩니다. 증여와 답례의 사이클은 '중심점'으로 자리원이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연배를 두고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지만 리뷰 전반에 걸쳐 마치 옹호하듯 말한 것처럼 책 본문에 실린 내용은 몇년 전 저자가 고립되어 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였다. 후반부에 저자의 글이나 인터뷰, 추천글을 보게되면 저자가 하는 말이 쓴소리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이 있다. 입에도 달고 몸에도 좋으면 좋겠지만 만약 양자택일을 굳이 해야한다면 당장은 서럽고 내맘을 몰라주는 듯 해도 결국 실천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혼자 밥먹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혹은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이라면 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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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NFF (New Face of Fiction)
셰르스티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손화수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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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 셰르스리 안네스다테르 스콤스볼 지음. 

 

예순. 그리고 일흔. 그리고 여든.

그 이후의 삶은 어떨까. 60세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 제2의 시작이구나를 부모님을 보며 깨닫는 요즘 문단에서는 여든을 넘어 이제 100세 할아버지 마저도 못마땅한 현실에 안주하고 죽음을 그저 앉아서만 기다리진 않는다. 오히려 길지 않은 남은 생, 좀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들만의 도전, 또 한번의 리그를 유쾌하게 시작한다.​ 10년 이상 나이어린 여자친구와 멋진 연애를 하는 할아버지의 베이징 여행기, 인류의 굵직굵직한 사건현장에 어쩌다보니 함께 했던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이어 이번엔 대인관계가 서툴지만 늘 언젠가는 인기인이 될거란 기대를 놓지 않는 할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심지어 이 할머니의 삶은 아주 드라마틱하지도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만도 않는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그녀. 마테아.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시시한 아줌마'가 이젠 동네의 새로운 '시계 아줌마'로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멋지진 않지만 그래도 운율은 맞출 수 있었다.

 

마테아.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세상에서 가장 웃기지만 그 사실을 본인만 아는 조금은 웃픈 할머니. 남편의 은퇴만 기다리며 그럭저럭 대인관계가 서툴어도 잘 버텨왔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건 어찌보면 그야말로 자기만의 세상에 너무 빠져있어서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이고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섣불리 사람을 믿었다가 그 사람에 의해서 완전하게 세상과 단전하게 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니까. 마테아는 적어도 마트에 장을 보러가는 정도의 외출은 이전에도 하였고 심지어 남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타인의 집 가정부로 잠깐이긴 하지만 사회활동을 시도해보기 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유머러스함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고 키우던 개 스테인을 자살인것 처럼 떠나보내긴 했어도 분명 자신의 실수가 있었음을 고백하는 등 성격이나 성향자체가 이상하다고 보기에는 너무 억울할 수도 있다.

 

마테아. 그녀는 어쩜 보통의 우리와 너무 닮아 있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못하고는 직장생활을 무난하게 견뎌내는냐로 판가름 나는 요즘 생계를 위해 버티기만 되는 요즘은 진짜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무엇인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마테아가 밤늦게 외출을 삼가게 된 까닭도 이웃 소녀의 납치사건이 계기가 되었던 만큼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녀를 변명해주고 싶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더군다나 유네와 같은 이웃이라면 나도 정말이지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발랄함에 피식피식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은 낯선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전화번호부에서 골라낸 불운한 이름들.

나는 주간지나 일간지에 실린 광고 사진을 오려내서 편지지에 붙이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늘 단 하루만 한 상자에 5크로네! 헤우게루 슈퍼마켓으로 오세요."

 

정말 편지의 글을 믿고 슈퍼마켓을 찾은 누군가가 계산대 앞에서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을 상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한다.

 

마테아가 그토록 원하던 남편 엡실론과의 사랑은 미혼인 내게 여러모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아내를 위해 서투르지만 상자를 만들어주고, 그 상자바닥에 사랑하는 마테아에게 라는 닭살스러운 멘트를 남기며 얼굴을 붉히는 엡실론의 모습은 그가 어떤 외모인지 여부를 떠나 오래도록 함께 하는 동반자로서는 충분하게 느껴졌다. 물론 몇가지 세심하지 못한 부분도 보이지만 완벽하지 않아 더 좋은게 아닐까. 그런 엡실론이 그녀곁을 떠나는 순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마테아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각인 시켜두기 위해 세상밖으로 걸음을 내딛으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녀뿐 아니라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엡실론의 부제는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책에서는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지구에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나이가 덜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니까.

 

예를 들면, 엡실론과 함께 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오게B와 마테와의 대화속에서 그녀는 삶이란 원래 힘든 것이고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자신의 삶도 나름 제대로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나의 삶은 얼만큼 제대로 였다. 제대로라면 그래서 기쁘고 행복한지 심지어 신께 감사한 맘이 드는지도. 저자가 병에 걸려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겨울 때 삶과 죽음에 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역자의 말에서 보았는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또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보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배우자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엡실론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좋은 이웃을 만날 확률과 통계적인 수치는 어느정도일까 와 같은 그런 고민들.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 라는 타이틀을 새삼 다시 읽어본다. 읽기 전 책소개만 접했을 때는 작아진다는 것이 죽음만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다 읽고나니 비단 죽음뿐만이 아닌 것 같다. 얇고 술술 읽히지만 이 책은 아주 가벼운 듯, 다소 싱거운 결말이지만 그 짧은 시간 지금 내가 깊게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혹은 너무나 경솔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았는지, 혹은 살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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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아시아 문학선 10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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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완트 싱 의 델리.

 

스무 살 무렵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듯한 자아찾기의 목적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적이 있다. 이후 일본수필가와 건축가의 여행기를 통해 접하게 된 인도는 그야말로 '알면 알 수록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곳'으로 인식되다가 근래들어 유럽이나 다른 관광지와 비교했을 때 다소 청결치 못한 환경이라던가 여성여행자를 노리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인도는 한번 쯤 가봐야 할 여행지에서 결코 가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후에 어떤 여행서를 읽어도,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영화를 접해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책, [델리]를 며칠 씩 손에 놓지 않고 읽으면서 내가 아는 인도는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극히 일부만을 그것도 직접이 아닌 간접적으로만 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 인도로 훌쩍 떠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더 공부하고 알아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델리의 주인공 '나'와 같은 가이드를 만난다면 과연 그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고민도 하면서.

 

 

​그것이 델리다.

삶이 너무 힘겨워질 때면 니감보드 가트 화장터로 가서 죽은 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두어 잔 털어 넣는다.

델리에서는 죽음과 술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p.30

델리에서 자유기고가 이자 관광안내원으로 활동하는 '나'는 여행객들 혹은 남녀추니 바그마티와 있었던 이야기를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그들이 방문하는 유적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액자식 구성이다. 바그마티를 만나게 된 계기나 현재 가이드를 하면서 자신의 생활과 성격등의 기록은 '바그마티 편'에 해당되고 그 외에 바그마티 편과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영적 지도자들과 술탄의 일화, 델리를 침략한 정복자의 일화, 델리가 현재의 종교적 혹은 지리적 모습을 갖추게 된 역사속의 술탄 그리고 근대 영국을 비롯한 침략받은 폐허의 델리 모습등이 각각 등장한다. 화자인 '나'는 영국유학을 다녀온 나름 유식한 지식층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상대에게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경우 가장 큰 자신의 무기인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대접받기를 바라고 이성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또한 매회 바그마티의 상스러움과 못난 외모를 지적하면서도 그녀를 잊지못하고 기다리는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가이드 혹은 동업자가 된 여성들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주는 호색한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야기 구성은 작품의 핵심 주제이자 델리의 모습이기도 한 양면성은 바그마티의 신체가 양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화자가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완벽하게 집착하지 않는 면에서 델리를 바라보는 작가 혹은 독자의 시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화자인 '나'의 모습 또한 델리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성과 여러 술탄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 보여지는 신의 위대한 능력등을 가진 델리와 유학파의 화술과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나'가 가지고 있는 '학식 있는 모습'은 델리의 긍정적인 측면이 된다면 이와 반대로 힌두파와 이슬람파로 나뉘어져 이교도 들에게 행해졌던 술탄들의 악행이나 이들 전체를 몰락시킨 외부의 적들로 인해 상처받은 델리의 유약한 면은 남녀추니인 까닭으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말투나 행동은 거칠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단한번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이 될 수 없는 바그마티가 처한 현실은 델리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등장인물과 델리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지만 더 흥미로웠던 건 '나'와 바그마티의 관계만 보면 뒤라스의 '연인'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가 영적 스승들이 등장했던 초반에는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와 비교되었고 술탄과 티아무르 비망록을 읽을 때 쯤에는 근래 가장 인기있는 미드 왕좌의 게임의 장면이 겹쳐보였다. 물론 전체적인 느낌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가 생각났는데 마치 이야기를 멈추기라도 하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라도 할 것 같은 '메르따끼'를 볼 때 그랬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토해내는 '나'와 작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금요일 기도에 반드시 참석하기로 했던 것은 기도가 끝난 뒤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송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델리 사람들은 나를 사랑했고, 나는 그들과 그 도시를 사랑했다. p.337

 

 

정복자들의 이야기로 치닫는 후반부는 참혹한 델리의 모습이 묘사되어 읽으면서 표정이 내내 어두어졌다. 여전히 작가 특유의 위트가 '나'와 '바그마티'를 통해 종종 등장했지만 마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하는 노랫말이 떠올라 글을 읽는 내표정은 애처로움 그자체였다. 역자의 말처럼 그런 역사적 사항은 그야말로 꼭 우리나라와 닮아 더 맘이 쓰였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전쟁이 끝나고 자주권을 되찾고 나면 마치 평화가 올 것 같았지만 인도와 한국 모두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외부에서 그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평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점이 그랬다. 무엇보다 지난 해 강상중 교수의 강연회에서 교수가 말했던 자살률이 높은 국가에서는 오히려 젊은 층이 전쟁을 기다리고 전쟁이 자신들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계기가 되어줄거란 기대가 크다는 내용이 떠올라서 슬펐다. 인도의 일부사람들도 지금보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지배받던 그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는건 아닐까 섣부른 오해를 하게 되었다.

4년간의 전쟁이 끝났어도 인도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 중에 더 평화로웠고 전쟁이 끝나자 더 혼란스러웠다. ​ p.502

기회가 된다면 델리,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진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아시아에서 출판된 이 책, 개정판 델리 외에 전부 절판상태라 작가의 다른 책을 구해서 읽고 싶어졌다. 문화적 사대주의 여부를 떠나서 인도의 멋진 작품들이 묻히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올 겨울 성년이 안된 아이들이 마법의 힘을 얻어 먼길을 떠나는 여정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에로틱하며 그야말로 실재했던 이야기가 담긴 쿠쉬완트 싱의 델리로 정말 멋진 밤을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아마 한 챕터라도 읽게 된다면 이 리뷰가 엄청 고마워질 것 이다. 작품과 델리에 대한 애정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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