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 리스크 사회에서 약자들이 함께 살아남는 법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같은 식탁에 앉아 있어도 가족이 따로따로 딴 음식을 먹고 있다면, 이것도 '혼자 먹기'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모두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한다면,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 '혼자 먹기'에 속한다.

 

20,30대가 주류이긴 하지만 적게는 10대부터 많게는 50대까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근래들어 '혼자 밥먹기'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온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의 고급식당부터 학교의 공공화장실까지 그들이 혼자 먹을 수 있다고 인증을 남기는 장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함께 먹을 수 없어 혼자 먹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점차 자발적인 '혼자 밥먹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며 타박하거나 아에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슬슬 상처가 될 법한 악플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친구혹은 가족과 함께 식사한다고 믿고있는 사람들 중 저자, 우치다 타츠루의 이론에 입각해 진짜 '혼자가 아닌 함께'식사를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책,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는 몇 년전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 중에서 몇가지 주제를 모아 재구성한 작품으로 타이틀이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라는 다소 매몰차고 냉철한 비판조인 까닭은 실제 타인의 저술에 반박하듯 펴낸 책이기 때문이다. 그책의 대략적 주제는 결혼하지 않고 혹은 가족을 부양치 않고 사는 사람들의 제법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을 뿐 더러 마치 혼자사는 것이 함께 하는 공동체보다 더 나은 것인양 보여지는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했다. 때문에 이 책의 주제는 혼자 못사는 것을 진짜 '재주'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려는 노력없이 '자립'아닌 '고립'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인 셈이다. 저자의 말처럼 특히 '노동'에 관한 부분은 돌이켜 봤을 때 다소 강하게 표현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현재 일하지 않거나 취준생인 독자라면 위로가 아닌 채찍에 서러움이 몰려들 수도 있다. 일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못하는 현실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부분은 사회적인 문제가 함께 맞물려있는 부분이라 우선 개인적인 측면에서 '일을 하지 않은려는 사람'에 한해 말을 하자면 저자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그렇군, 노동이 자기표현이라면 그런 행동은 매우 사리에 맞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동은 자기표현도 아니고 예술적 창조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은 의무다.

 

​두어달 전 읽었던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 이란 책이 생각나는 챕터로 노동은 순수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의무'라는 점에서는 두 저자의 의견이 엇갈린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책의 리뷰를 작성할 당시에는 자기표현이나 예술적 창조를 위한 노동을 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자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무조건 의무라고만 하니 역시나 또 완벽하게 공감되지 않는다. 몇몇 독자들이 50년생인 저자의 나이를 언급하며 일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부분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도 어느정도 인정한-이 바로 이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이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맞지않은 정규직을 포기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하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할 뿐 아니라 반드시 '노동'을 해야만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이라는 목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태를 꼬집은거라 볼 수 있다.

 

확실히 어떤 종류의 문화는 돈을 주고 해외에서 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풍토에 뿌리내린 깊고 따뜻한 '친밀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점점 개인이 공동체활동에서 벗어나 고립되려는 까닭 중 다른 큰 이유는 '글로벌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흐름으로만 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화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나또한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부분은 역시나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SNS 역기능과 맞물린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몇시간 혹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려고 하거나 국내의 정세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적으로 쫓으려는 의식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과의 거리를 점점 멀게할 뿐이다. 또한 지나치게 간섭하려는 것은 반대로 타인이 나를 지나치게 간섭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대체가능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것은 글로벌화에 흐름을 쫓아가면서 반대로 전혀 타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글로벌화의 길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에는 무수한 '낡은 습관' 이 있고, 무수한 성적 금기가 있다. 거기에 대고 일일이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시오'라고 통고하는 것 자체가 계몽적인 실천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효 있는 계몽적 실천이 될 수 있으려면 '낡은 관습'을 대신하여 동일한 인류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의제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서두에 언급했던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떠올랐는데 마지막 저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공동체'적인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진행중인 상황으로 몸이 불편한 누군가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안타까운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듯 올렸더니 단순히 댓글로 위로하는 것 뿐 아니라 모금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전달하게 되었고 이일을 계기로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은 그 고마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등 기부문화가 파급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물론 이런 좋은 일을 악용하는 사례가 몇차례 발생한 뒤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혼자 밥먹기'를 앞다투어 인증하려던 사람들이 '나눔인증' 하려고 더 열성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저자의 조언이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수록 증여와 답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 자기를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소해도 가진 자원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주는 사람은 이 사이클 안에서 '중심점'이 됩니다. 증여와 답례의 사이클은 '중심점'으로 자리원이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연배를 두고 색안경을 낄 필요는 없지만 리뷰 전반에 걸쳐 마치 옹호하듯 말한 것처럼 책 본문에 실린 내용은 몇년 전 저자가 고립되어 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쓴소리였다. 후반부에 저자의 글이나 인터뷰, 추천글을 보게되면 저자가 하는 말이 쓴소리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좋다는 말이 있다. 입에도 달고 몸에도 좋으면 좋겠지만 만약 양자택일을 굳이 해야한다면 당장은 서럽고 내맘을 몰라주는 듯 해도 결국 실천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혼자 밥먹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혹은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사람이라면 우치다 타츠루의 '혼자 못사는 것도 재주'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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