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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순의 벽으로 밀쳐져 있다. 내속에는 무의 황량하고 차가운 영지가 있다. 나는 생과 세계에 소외감을 느낀다. 옛날에는 자명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불가해하고 모순되게만 보인다. 나는 왜 살아내기 위하여 애를 써야 하는가, 알고 싶어 못견디겠다. 생이란 살아질, 지켜나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권리로 나는 하나의 생명을 세상으로 보내는가? 십년 후에는 나와 꼭같이 그것은 무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애를 쓴다는 것은 절대로 보람 그것이 아니다. 나느 지금 죽든 20년 후에 죽든 꼭 마찬가지다. 영원한 침묵을 지키는 시공에 비교하면 모든 것은 그렇게도 헛된 일이다. 요컨대 인간의 생은 추구할 만한 게 못된다. 가깝든,멀든 미래에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행동하고 있다. 그것을 회피하고 있다. 모든 것, 모든 다른 것은 끔찍히도 생각하지만 죽음만은 조금도 생각하질 않는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인간에게는 타부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서는 미쳐 버릴 것이기 때문에..... 스케줄에 따라 일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연구하고, 사랑하고, 엔죠이하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치 자기에겐 종말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인간의 생의 방식이란 얼마나 그릇되고 자기 기만인 것인가! 사람은 사고하기 싫어한다. 단지 살고 싶어할 뿐이다. 그가 살고 있다는 육체적 확실성만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얼굴을 볼 수없는 두 가지가 있으니 태양과 죽음이 그것이다" 라고 한 라 로쉐푸의 말은 정말 옳았다.사람은 순간만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옳지 않을까? 아무 계획도 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살아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망각하도록 모든 수단을 써서 감각을 무디게 해야 할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죽음은 불가피하게 불청객으로 매일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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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여우 2018-01-3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혜린씨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였죠...
 

의식하는 나와 생활하는 나, 내 손의 상부 하부 구조, 내 의식 속의 남의 의식,남의 의식 속의 나의 의식, 커뮤니케이션의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짧은데서 오는 단절감(斷絶感), 비애, 영혼과 영혼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맞부딕치는 해우만이 진실한 것인  타자(他者)와의 관계의 어려움, 쉬운 길, 만인의 길,자기를 내던지고 유한성과 탁월성에 눈감는 길의 크나큰 유혹, 나만이 어떤 오식활자 같이 거꾸로 박혀 있는 것 같은 컴플렉스 ....기타 삶의 메카니즘이 요구하는 의무와 그것에의 반감(反感) 및 무력(無力)...... 이 모든 갈등에 넘친 가시밭 같은 길이 우리의 삶의 길이다. 매일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땀과 피를 흘리는지 모른다. 공동 사회는 우리의 의식이 실존하는 것에 반대밖에 되지 못하고 세계는 개체와 분쟁상태로 대립해 있는 것이고 또 우리는 타자존재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세계 속의 존재인 것이다. 얼마나, 얼마나 모순에 넘친 가엾은 존재가 인간인 것일까?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조제기 같이 우리를 분말화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이 무서운 허무감에 눈을 뜨고 응시해야 한다. 무(無)를 견딜 수 있는 경지를 내 속과 내 주변에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올해는 보다 나에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나와 내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싶다. 온갖 정신의 게으름이나 낭비를 두려워하자. 무엇보다도 속화(俗化)에의 그것은 방지되어야 한다. 나의 생활을 사작하면 곧 등장할 내 속의 속물(俗物)을 미리 공포스럽게 혐오하고 멀리 하자.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우리의 일회성을 명심하고 일순간을 아끼자. 미칠 듯이 살자.이성이 선(善)이라는 것은 더욱 더 믿어진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치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속인의 경우가 아닐 때에는.... 철저하고 싶은 의지, 완성에의 의지가 우리의 내부에는 주어져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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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는 단절된다. 그렇지 않다면 배겨내질 못하는 것이다. 사고를 멈추지 않고서는 가스마개를 돌리거나 목매어 죽을 것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질식시킬 때까지 이 조그마한 생을 살아가기 위하여 인간의 사고는 단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근본에까지 사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능한한 피상적으로 가능한 한 지엽적인 것, 공허한 것, 진부한 것을 사고해야 하리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킬 수 있기위하여.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내지를 못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화하면, 그것이 이상적이리라. 인간이 더 사고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낙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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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여우 2018-01-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블로그가 예전 제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듯

사건은 끝났다.

사랑의 범선(帆船)은

인생에 좌초(坐礁)했다.

인생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자.

하나 하나 헤기엔

너무도 많아

고뇌와

고통

존재의 외로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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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리 자신을 속이려고 해도 안돼. 사랑이란 뛰어들어 갈 수 있는 따뜻한 목욕물처럼 쉬운 게 아냐. 그릇된 짓을 하지 않고선 불가능하지. 뱃장도 있어야 되고 거기다 체력도 필요하거든. 네가 사치스럽고 깨끗한 영혼을 혹시 더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다면 즉시 산다는 걸 단념하고 성자라도 되는 게 좋지. 왜냐 하면 인간이기 때문이야. 현세나 내세,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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