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괴적일 수 있다. 사랑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바로 그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세상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모든 노이로제의 근원은 결국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정신병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사랑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목사는 신도를 정치가는 국민을 사랑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 현명해지면 연민이 된다. 여기서의 연민이란 전혀 다른 특질의 사랑이다. 연민은 그대에게 자유를 준다. 그대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는 것, 이것이 연민의 역할이다. 연민은 그대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부숴 그대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니 사랑은 있지만 각성이 없다면 그것은 파괴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랬다면 세상이 벌써 천국이 되어야 했다. 그대는 연인을, 연인은 그대를 사랑하는데도 결국 어떤 모습인가? 파괴밖에 없지 않은가.그대의 사랑은 괜찮겠지만 그대는 괜찮을 수가 없다.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그대의 자각을 방해한다. 사랑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나는 사랑이 먼저 오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각성이 먼저 온 뒤에 사랑이 그림자처럼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