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고

옷에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안다.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슬픔의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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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알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을 전면적으로 내어줄 사랑  하나

키우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사랑하면서도 사랑 받으면서도 그 사랑

제 한몸에 가두는 사람은 사랑의 배신자다.

사랑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의 불안과 가난과 상처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랑의 적을 바로 찾지 못한 사람,

그는 진실로 진실로 불행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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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말도

엄격이 말하자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거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하여

쫒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나오미생각: 저는 이 시에서 희망이란 ... 외래어일까 하는 부분이 젤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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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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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모습으로 그대 앞에 서리라

평생을 간직하려 했으나 포기해버린

미망의 껍질들이 물살에 저만치 떠가고 있다

눈부시게 허망한 그대여

내 발은 누추하다. 사랑의 잔해 위에서

영원한 사랑 아아 안타까운 살덩어리

채울 수 없어라. 내 헛된 두뇌는 가볍고

발 밑을 흐르는 개울물 출렁거려 현기증 난다

내 팔은 연약하다 떨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내 가슴은 할딱거린다. 껍질 거친 땅 위에서

이대로 헐벗고 지치도록 매맞은 몸으로

그러나 헤어지는 사랑처럼 억수같이 쏟아져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만신창이 두 팔다리로

그대를 꿰뚫고,부숴지며,다시 그대와 함께

가기 위하여, 피묻은, 관통 버리지 못할 생애

피할 수 없는 갈 길 쓰러져, 일어섬이여 공동체여

힘이 되는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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