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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
최혜진 글.사진 / 에디터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읽을 책을 정한채 도서관에 가서 바로 빌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그냥 서가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후자의 경우, 책을 꺼내어 휘리릭 넘겨본 다음 아무데나 펼쳐서 한 챕터쯤을 읽어보고 가독율이 좋을 경우에 빌리게 되는데, 이 책도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다. 우연히 펼쳐서 읽어보았는데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서가에 그대로 꽂아두고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 빌린 까닭은 지금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여행지 선정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목적이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여행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어딘가로 떠난다는것, 용기를 낸다는 것, 그게 더 중요한게 아닐까.
요즈음의 여행에세이는 대부분 사진만 잔뜩이고 글은 짧막짧막한 경우가 많았다. 페이지수를 늘리기 위해 편집도 널널한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이 책은 오랜만에 만난 잘 여문 책이었다. 글이 정말 많아서 읽는 맛이 났달까. 간만에 '보見'는게 아니라 ' 읽讀'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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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간순서로 쓰여져 있지 않다. 게다가 장소도 뒤엉켜 있다. 파리 이야기를 하다가 베니스에 갔다가 암스테르담에 가는 식. 순서대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생경하다거나, 내용이 중구난방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루하지 않아 좋았달까. 작가는 얼마나 공을 들여 순서들을 나열했을까.
http://blog.naver.com/364eve
책을 읽고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작가의 블로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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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프랑스 보르도로 떠난 나이는 서른두살이었다.(다행히도 실제 나이는 작가가 나보다 한살 많다) 나는 지금 그 나이보다 한살이 더 많은데, 올해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뭔가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작가가 말해주었다.
"지금은 초보자가 되어 보는, 아주 좋은 시간이다. 불확실성과 '아직 미정'의 상태 안에서 발버둥 치지 않고 머물러 보는 경험을 하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무능해도, 미숙해도 괜찮다. 지금은 그래야 할 시간이다. 이것이 여행이다" (p.27- 서른둘 일월 - 그냥 그래야 할 때)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22살 2월. 그 당시 나는 캐리어를 끌고 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생각하여 40리터짜리 배낭에 침낭까지 이고 여행을 다녔고, 침대칸에서 옆칸 아저씨가 생전 맡아본적 없는 발냄새를 풍기며 코를 골고 잠을 자도 불평없이 쿨쿨 잘 잤고, 영하의 날씨에 추운 게스트하우스에서 (러시아에서 왔는지) 나시티를 입고 설치는 서양여자애가 자기는 덥다며 히터를 못 틀게 할 때에도 (할 수 없지, 라고 체념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잘 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에어텔이란 이름의 여행상품에 길들여진 나는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보다는 호텔을 선호하고, 여행을 갈때면 당연하게 캐리어에 짐을 꾸린다.
이 책에도 인용된 것처럼 최영미 시인은 <시대의 우울>이란 책에서 말했다.
"여행을 하면 자신이 얼마짜리 방에 만족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기다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서른 무렵 알게 됐다. 삶의 다음 정거장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갈 거라 믿는 것. 그 또한 숭고한 삶의 방식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므로 지금, 저마다의 길에서, 묵묵히 무언가를 견디며 더 좋은 날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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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스물여덟살에 갑상선 암으로 수술대에 오른다. 1년뒤 재발로 다시 수술. 그리고 1년 뒤에는 척추로 암이 전이되어 또 수술대에 오른다. 평탄치 않았던 삶.
그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는 걸, 책을 쓸 때 작가는 예측했을까.
내가 맨 처음, 내 몸의 이상을 알았을 때도 아마 스물여덟아홉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평생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먹어야 하고, 적어도 일년에 두 번 이상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야하고, 나를 담당한(어쩌면 앞으로 평생 만날) 주치의가 생겼다. 오히려 나는 처음에는 담담했던 것 같다. 역시, 내 인생은 특별하구나! 뭐 그런 생각. 하나님이 나를 통해 뭔가 큰 일을 하시려나 보군, 하는 생각.
그런데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증상이 호전되지도 않는 불치병이란 건, 사람의 마음을 참 나약하게 변화시켰다.
나도 이 책의 저자랑 똑같았다. 내 자신을 평가절하했다. 이렇게 하자있는 제품을 누가 좋아하겠어. 나는 평생 결혼도 못하겠다.(물론 이건 아직도 하는 생각이다. 누구나 건강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아픈 나부터도. 배우자는 건강하기를 기대하고 또 바라니까) 내 주치의 선생님도 그랬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기 전에 고민상담을 했더니, 그냥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 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면 아무래도 결혼하기는 힘들지 않겠냐고. 그런데 그건 내 성격상 용납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는 건 내 기준에서는 속임수고 거짓말이니까.
부러우면서 다행인건, 이 책의 저자가 결혼을 했다는 거.
그럼 혹시 나도.. 기대해보게 된다는 거
그래 작가의 말처럼 내가 싸워야 할 것은 잔혹하고 나약하고 멍청한 내 마음이다. 진짜 하자는 아픈 몸이 아니라 '나를 평가 절하하는 내 마음'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평가할 수 없게 열심히 살아보자. 나만의, 내 인생을!!
일단 당장은 올해 혼자서 여행해보기!
어쩌면 평생 혼자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 홀로서는 연습을 해봐야지. 하나씩 차근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