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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밖 여고생
슬구 글.사진 / 푸른향기 / 2016년 5월
평점 :
어릴 때부터 줄곧 가고 싶은 나라 1순위였던 일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아주 열렬한 일본 순정만화 마니아였기 때문. 실제 내 책장 대부분은 만화책으로 채워져 있다. 초등학생 때 방학숙제로 일본여행 계획 짜기 같은 걸 해간 적이 있었다. 꽤나 진지하게 했던 걸로 기억하는 데, 그때 숙제로 해갔던 것을 실천하기도 했다. 도톤보리에서 다코야키 먹기. 교토에서 기모노 입기 같은 것들. 초등학생 슬기의 꿈을 고등학생 슬기가 대신 이뤄준 기분이랄까.(p.17)
이 책은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혼자 씩씩하게 여행을 떠나기 시작해, 국내외 곳곳을 누빈 체험담이다. ‘여고생이 혼자 여행을?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먼저 든 것을 보면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란,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시대라 한편으로는 이 여고생이 운이 좋았던 거지, 싶다가도. 그래도 앞으로도 이 여고생의 여행길은 항상 운이 좋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처음 떠난 낯선 나라 일본에서 여고생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할아버지와의 추억담은, 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여고생은 여고생이기에, 더 안전했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든 학생들에게는 누구나 조금 더 관대해지니까.
나 또한 처음으로 낯선 해외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 친절과 배려를 받았다. 부모님 갖다 드리라며, 선뜻 특산물을 선물해주는 어른도 있었고, 몇 시간 씩 타고 가는 기차 안에서 입석표밖에 없어 서서가는 나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해주고 내내 서서가는 어른도 만났었다.
열일곱의 내가 열여덟이 된다고 작년보다 눈에 띄게 의젓해지거나 성숙해지지 않는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나이고, 여행은 나의 수많은 일상 중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자잘한 경험 속에서 내가 성장하기 때문. 중요한 건 나이의 숫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숫자 속에 들어있는 경험이다. (p.47)
우연히 읽게 된 책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여고생 슬기양에게 참 많은 걸 배웠다. 여행에 필요한 건, 시간도 돈도 아니고 ‘의지’라는 점도.
“학생, 우도 참 예쁘지?”
노란 헬멧을 쓴 할아버지가 스쿠터 속도를 내 발걸음에 맞춰 줄이며 물으셨다.
“정말 예뻐요. 내일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요.”
“아쉬울 만하지. 난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아직도 우도는 예뻐!”(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