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아주 짧은 소설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 

미안하다, 공감했다. 나도 그랬으면,이 아니라 맬라드 부인이 느꼈을 그 잠시동안의 진정한 황홀함이라는 감정에. 100% 같지는 않겠지만 옆지기가 한 달 이상 멀리 출장을 가거나 집을 떠나 있을 때의 그 홀가분함과 일맥상통하는 기분이 아닐까. 나는 안다. 아마 당신도 알 것이다. 


케이트 쇼팽은 8년 사이에 아이를 여섯 명 낳았다고 책 뒷부분 설명에 적혀있다. 8년 동안 여섯 명. 8년 동안 6명.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는 케이트 쇼팽의 소설 <각성>을 읽어보고 싶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는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아도 된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 것이다. 같은 인간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해도 된다고 믿는 이의 아집으로 인해 감정이 상처받지 않아도 되었다. 의도가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덜 범죄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하나같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부인은 그 짧은 시간에 깨달았다.

물론 부인도 간혹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다. 대체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제 자기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사랑이라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천착할 필요는 없었다.

"자유! 몸과 영혼의 자유!"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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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앞으로 어찌 될런지가 너무도 궁금해서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보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지나간다. 묘사를 하는 부분은 통짜로 건너뛰기도 한다. 옛날에는 정말 그렇게 읽었다. 책을 많이 보는 편도 아니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남들도 그렇다고 인정해줄 때 나는 책을 그런 식으로 읽었고 그래서 늘 기억이 흐릿했다. 한마디로, 헛읽었다고 하겠다. 요즘은 한 문장을 길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이 못된 습관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레이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아마도 많은 문장들이 눈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쌩 지나갔을 것이다. 


수많은 문장들 속에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문장이 있다. 

"고칠 수 없으면 참아야 한다고." 

그레에스에게, 정말 그러냐고, 그래야 하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고치고 싶고 주변사람들을 고치고 싶다. 그럴 가능성이 1도 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냥 참고 살아야 하냐고, 어디에 대고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을 지른다. 그렇게 참고 사는 여자들이, 모두가 참고 있는 세상이, 너무 웃겨서 웃기지도 않다. 내 안의 다른 한편에서, 고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거기에 대항(?)하면 나만 나가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결국 도망치는 것밖에 없지 않냐고,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맞서지 않고 참는 것처럼 보이면서 틈새를 공략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썩어들어가는 내 마음은, 솔직하게 문제를 짚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내 마음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두고? 이브가 저주받은 거라고 그렇게 퉁치면서? 


오래 전부터 소설을 좋아한다고 거리낌없이 말하곤 했다. 소설만 읽었었다. 이제는 소설 읽기가 힘들어진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그저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던 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본다는 만족감이었나. 지금 나는 소설에서 무엇을 보나. 무엇을 보기는 하는 건가. 소설을 읽고 좋다 좋지 않다를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은 무섭다. <시녀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불안함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레이스>도 불안하다. 나는 왜 이 소설들이 불안하고 무서운 것일까? 








「사이먼은 기사를 읽는다.  


길이 이런 상황이건만, 안타깝기는 하나 죄를 저지른 한 인간이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모이다니 그런 광경을 즐기는 병적인 취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광경을 공개하면 풍기가 개선되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성향이 억제될까?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사이먼이 말한다. 

"제가 만약 그 근처에 살았다면 가서 봤을 거예요." 리디아 양이 말한다. "선생님 같으면 안 그러겠어요?" 

사이먼은 이처럼 단도집입적인 발언에 충격을 받는다. 그는 불건전한 흥분을 유발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에게 잔인한 상상을 심어 주는 공개 처형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성격을 안다. 그의 호기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이긴다. "직업상 그랬을지 모르죠."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여동생이 있었다면 가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리디아 양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요?" 

"여성들은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보면 안 됩니다." 그가 대답한다. "그러면 우아한 심성이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의식적으로 거드름을 피운다.」 (134~135)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항상 어릴수록 고분고분하다고 착각한다. 어머니가 정말 원하는 것은 사이먼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며느리다. 

... 

가끔 그도 항복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어머니가 내민 어린 아가씨들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후보를 고르면 된다. 그러면 일상이 정연하게 이어질 테고, 먹을 만한 아침이 차려질 테고, 그는 아이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아이를 만드는 행위는 하얀 이불로 조심스럽게 가려진 채 은밀하게 진행되고 절대 입 밖으로 거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싫어하면서도 의무적으로 응하고, 그는 정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집에는 온갖 문명의 이기가 갖춰질 테고, 그는 호강을 누리며 쉴 것이다. 그보다 못한 운명도 많다.」 (136~137) 



「저는 그때부터 여자들이 그런 깃발 같은 걸 만들어서 침대를 덮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어요. 여자들은 원래 방 안에서 침대에 가장 신경을 쓰잖아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경고의 의미라는 것을요. 선생님이 침대를 평화로운 곳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건 침대가 휴식과 편안함과 단잠의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침대에서 위험한 일들이 아주 많이 벌어지거든요. 침대는 우리가 태어나는 곳이니 우리가 인생 최초의 위기감을 맛보는 곳이죠.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곳이니 종종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남녀 간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죠. 선생님도 무얼 말하는지 아시겠지만,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 하고, 누구는 절망이라 하고, 또 누구는 참아야 할 모욕일 뿐이라고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대는 우리가 잠을 자고, 꿈을 꾸고, 대개는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에요.」 (240) 



「메리가 너는 이제 여자가 된 거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다시 눈물이 났어요. 메리는 저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어요. 늘 바쁘거나 지치거나 아팠던 우리 어머니라도 그렇게 다독여 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더니 제 것을 살 때까지 쓰라고 빨간색 플란넬 페티코트를 빌려 주면서 어떤 식으로 옷을 접어서 핀을 꽂으면 되는지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걸 이브의 저주라고 부르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브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는 무슨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녀 탓으로 돌렸던 바보 같은 아담을 참고 견뎌야 했던 거라고 말했어요.」 (245) 



「그리고 2주 동안 모든 것이 매우 평온하게 흘러갔군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내 진술서를 보고 하는 말이다. 

예, 맞아요. 내가 대답한다. 그럭저럭 별일 없었죠. 

그런데 모든 것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가요? 일상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나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날마다 어떤 일을 했느냐고요. 

아, 예전과 똑같았어요. 내가 말한다.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했죠.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조던 박사님이 말한다.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거였나요? 

나는 그를 쳐다본다. 그는 조그만 하얀색 네모가 그려진 노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농담을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모르는 거다. 그와 처지가 비슷한 남자들은 자기가 어지럽힌 것을 치우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지럽힌 것뿐 아니라 그들이 어지럽힌 것까지 치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앞날을 걱정하거나 저지른 일의 결과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그렇게 길러졌을 뿐이다.」 (316) 



「아침이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가 그 안에 나를 싣고, 문을 꼭 닫은 채 기차처럼 울면서 무관심하게 한결같이 정해진 선로를 따라 끝까지 달려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벽에 몸을 던지며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고, 주님에게 내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이야기 한가운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 있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난장이다. 음울한 포효,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깨진 유리와 갈라진 나무의 잔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집 혹은 빙산에 부딪히거나 급류에 휩쓸려서 승선한 어느 누구도 어쩔 도리가 없는 배처럼. 그러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 이야기 비슷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이것을 들려줄 때.」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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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0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번 그렇진 않지만 특정 부분은 휘뚜루마뚜루 넘어가요ㅋㅋㅋㅋ워낙 훌륭한 책이 많으니 가끔은 괜찮은것도 같아요.😁

난티나무 2021-04-03 20:21   좋아요 1 | URL
아 미미님 반가워요!ㅎㅎㅎ 저는 워낙에 자주 넘어가서 정신 차리고 다시 읽는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히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하하~!!!

라로 2021-04-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2. 😅😅😅 특히 불편한 얘기나 무서운, 잔인한, 등등 문장은 더욱요. 😰

난티나무 2021-04-03 20: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문장과 이야기 자체가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
 














아무 생각 없이 내뱉던 말들이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니,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제약회사의 돈벌이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 


책의 목차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밑줄친 부분을 옮기면서 어제 본 예능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암 투병 중인 엄마가 딸의 아침을 차려주려고 주방에 서 있는데 머리는 박박 밀고 힘겨운 모습이다. 사진을 보고 패널들은 어머니의 사랑 운운하며 뭉클하다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뭉클하지 않았다. 뭐가 감동이란 말인가? 저렇게 힘겨운 상태인데도 딸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제 손으로 아침을 차려먹지 않는 딸(아주 어리다면 할 말 없음), 보이지 않는 짝(없는 상황이라면 이 또한 할말 없음).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냥 어머니의 사랑이란다. 죽을 병에 걸려서도 식구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여자는 무엇일까?


이 세상은 거짓말을 한다. 모두가 속는다. 돈벌이가 되면 더 많이 철저하게 속인다. 사람들은 속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당연하다고 말한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의심 없이 매일 삼킨다. 그들이 생각하는 당연함이 거꾸로 이 사회구조를 떠받친다. 평생에 걸쳐 몸의 변화를 확연히 겪는 여자들이,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당한다. 편견과 선입견과 혐오와 잘못된 정보들이 여자들에게 쏟아진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의심하라! "우리의 의심은 정당하다." (p.354) 


(* 책 표지의 정희진 추천사 : 편견을 과학으로 믿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여성주의 입문서.) 





"생리전증후군 신화는 무수히 많은 맥락과 상황에서 어떤 여성이든 깎아내리고, 평가 절하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화가 나 있거나 공격적이거나 적극적인 여성은 생리 중일 거라 생각하는 것조차 그 여성의 발언에 ‘못 믿을 여자‘라는 커다랗고 새빨간 딱지를 붙이는 셈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강화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떤 여성이 우리보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생리 때문‘이라는 생리 책임 전가는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고 상대의 힘을 빼앗는 수단으로 오늘날 남녀 모두가 휘두르고 있다." - P110

"문화적으로 ‘착한 여성이 된다는 것‘은 늘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머니의 날 카드에 적힌 ‘엄마, 필요할 때마다 늘 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뭉클한 문구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이상을 달성해내는 여성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오랫동안 자제하는 것이다. 착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뒤엎는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으레 평정심을 유지하고 늘 과묵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다." - P111

"의사라는 직종을 남성이 지배하게 된 것은 과학 혁명 덕분이었다. 이 시기에 민간전승이 아닌 과학이야말로 의술의 토대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러한 신생 남성 의사들이 자신들의 의술을 홍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산파들의 민간 지식을 폄하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의료 행위를 법으로 막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여성 치료사와 자신들을 차별화했던 한 가지 방편은 ‘과시적 의술‘로 알려진 극단적 의술을 행하는 것이었다. 의업 초창기 시절의 의사들은 사혈과 설사약같이 극단적인 효과를 내는 치료법을 처방했지만 그런 치료법은 병을 낫게 하기는커녕 악화시켰다." - P155

"여성의 완경과 노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대부분 이윤을 내기 위해 확립되고 조장되고 유지된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신화 창작 능력을 최악의 방식으로 오용한 것인데, 수십 년간 무수히 많은 여성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다 보니 이제는 그 정도를 정량화할 수도, 심지어 완전히 알릴 수도 없을 정도다. 이러한 완경 신화는 고의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여성을 불가능한 이상에 매달리게 했으며, 부작용으로 병을 유발하고,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 P285

"성별 고정관념으로 득을 더 많이 보는 건 일반적으로 남성들이지만 남성들 역시 이처럼 쓸데없고, 문제 많고,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관습의 대가를 일부 부담한다. 남성들에게는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끝없는 압박이 어마어마하게 가해지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역사를 통틀어 남성들은 전쟁이라는 잔인무도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본인의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 감내해왔다.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덫에 갇혀 있는 동안 남성들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생활전선의 최전방에 갇혀 있었다. 이후 담론에서 나는 여성의 호르몬 관련 신화와 같이 성별에 기반한 신화들이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탈출구를 찾아 몸부림칠수록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덫과 같다. 벗어나려고 해도 문화 규범이 옥죄는 탓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한은 누구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체현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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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18장 성산업의 노예제에 대한 국제적 조망 (조 바인드먼)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는 다른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최상의 노동조건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이 직업을 선택할 권한을 박탈하고, 다른 분야의 더 나쁜 일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걸까? 가령 인도 유리 공장에서는 항상 열기와 연기와 소음에 둘러싸인 채 끔찍한 화상을 입을 위험을 안고서 일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일을 계속하면 기대수명이 10~15년 줄어든다고 한다. 생계형 농업에 종사하면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는 건 어떤가? 농사일을 끝내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수확을 한들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생산 라인에서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지루한 노동을 견디느니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또 성매매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데려온 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다." (394) 


그렇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매매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매매 여성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할 텐데, '차라리 성매매로 나서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은 '쉽게 돈버는' 일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오히려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 성매매, 성노동, 이름을 어찌 붙이든 아직도 잘 모르겠는 분야다. 노동으로 인정하게 되면 현실 세계는 물론 인터넷 세상에서도 여성 상품화와 혐오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지금도 엉망인데. 





21장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전략을 향하여 (크리스 틸리, 랜디 알벨다) 


"아이러니하게도, 성평등과 관련된 다른 권리 - 재생산 선택권, 동성애자 권리 - 를 옹호하기 위한 행동에는 수십 만 명의 여성과 남성이 모이지만,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이 분명한 복지 '개혁' 문제에는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439)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이 세상은 뿌리부터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22장 공적 투옥과 사적 폭력 (앤절라 Y. 데이비스) 


"또한 17세기 영국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입마개branks - '쨍쨍거리는 여자의 재갈scold's bridle' - '수다쟁이 여자의 재갈gossip's bridle'이라고도 불렀다 - 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면 공과 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49) 


부르르르. 




 24장 출발 지점에 대한 평가 (실라 로보섬) 


"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492) 


정치경제 공평하게 나누어 합시다. 가사노동에 관한 책을 좀더 읽어야 겠다. 일상 생활에서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세분화되고 어떻게 다시 통합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식구들에게 인식시키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26장 자본주의와 인간 해방 : 인종, 젠더, 민주주의 (엘런 메익시스 우드) 


"젠더는 가장 저렴하다고 (그릇되게) 여겨지는 방식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조직하는 방편으로 기능한다. -(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육아가 자본에 비용 부담을 덜 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연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출산휴가나 어린이집은 이를테면 노인연금이나 실업보험과 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모두 달갑지 않은 비용을 수반할 뿐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어떤 비용에든 적대적이다. " (527)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특수한 모든 억압이 사라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 반면 자본주의는 그 정의상 계급 착취가 사라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527) 


국가 지원 육아정책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 달갑지 않은 비용. 모두가 소모품. 활용가치가 없으면 버려지는 사회. 




27장 여성의 삶의 군사화 (신시아 인로) 


"여전히 남성 중심인 군대에서 제한된 수의 여성이 병사로 받아들여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성매매 여성, 강간 피해자, 어머니, 부인, 간호사, 페미니스트 활동가 등으로서 여성들이 겪는 복잡한 군대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성의 군인 역할에만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많은 여성들의 군사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다루는 셈이다. 이런 순진한 가정에 빠져버린다면 나 자신의 호기심 역시 군사화되고 말 것이다. 


무관심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548) 


옳은 말씀. 날카로운 시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인용구 뒷부분도 다 가져오고 싶었지만 너무 길다. 군대, 군사주의에 관한 글을 더 읽고 싶다. 한국의 경우 저 여성 리스트에 군부대 공연 아이돌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또 더 있겠지.ㅠㅠ 




31장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다시 본다 (낸시 하트삭) 


"안잘두아는 두 현실 속에 살면서 접촉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경험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현상에서 심층적인 현실의 의미를 보는 '능력', 즉 "표면 아래에 있는 심층 구조"를 보는 능력을 언급한다. 이어 그녀는 "가장 많이 닦달받는 이들이 가장 강한 능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성, 온갖 인종의 동성애자, 유색인, 추방당한 자, 박해받는 자, 주변으로 밀려난 자, 외국인 등이 그들이다." 이런 능력은 두 세계 사이에 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획득한 생존 전술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잠재해 있다." " (657) 





35장 환경정의의 확장 : 아시아계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의 기여 (줄리 시) 


"그렇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미국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최대 단일 집단은 군대다. 또한 부자들은 빈민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5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세계 자원의 36퍼센트를 사용한다. 미국인 1명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양은 일본인 3명, 멕시코인 6명, 중국인 12명, 인도인 33명, 방글라데시인 147명, 에티오피아인 422명이 사용하는 양과 같다. 외국인 혐오론에 빠진 이 '환경론자들'은 부자 일반, 특히 미국인의 자연자원 낭비를 줄이는 대신 인구를 줄이기를 원한다 - 이민자들이 환경 악화의 주된 원인이 아닌데도(아니, 유의미한 요인조차 아닌데도) 유색인 이민자들을 줄이려고 한다."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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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18장 막 다 읽고 좀 짜증이 나서 난티나무님 서재 다시 왔어요. 이 부분 여기에서 보았던 기억이 나서요. 난티나무 님이 덧붙이신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오 왜이렇게 짜증이 나죠?
전 또 읽으러 갑니다. 슝-

2021-03-28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건 지향 6개월째. 

오늘의 화두는 (확대)가족 내의 비건지향자,이다. 이때의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육식주의자. 

일요일 점심에 모처럼 고기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미리 준비해서 옆지기가 식사 준비(채소 손질)를 하고 있는 옆에 앉아 먼저 먹었다. 고기를 볶기 시작할 무렵, 식후 산책을 하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고, 고기 볶는 냄새를 견딜 수 있을지 몰라서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옆지기는 식탁의 빈자리가 마음에 걸렸다고 말한다. 앞으로 고기를 먹을 때는 이렇게 한자리가 비게 되는 거냐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 식탁의 모습이 변해가는 거냐고. 밥 먹을 때는 꼭 모두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거냐고 되물을 수밖에.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저녁마다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간 준비한 식사를 10분만에 먹어치우고는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누구였지? 어이는 어디 가고 맷돌만 있는 셈이구만. 

고기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내가 그걸 참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내가 그걸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이런 의문은 네 식구의 식사에서는 오히려 쉬운 문제가 된다. 나는 내 주장을 할 수 있다. 가족을 확대해 보자. 모이면 고기를 구워 먹는 게 당연한 양쪽 집 식구들,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서요, 고기 냄새를 못 맡겠어요, 하고 빠질 수 있는가? 이 지점에 이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외국에 사는 딸이고 며느리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2~3년에 한번 보는 게 다인데, 매달 매주 보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니가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은 동생이 한 말이다. 다같이 고깃집에 가자고 하면 어쩔 테냐, 못 간다고 빠질 수 있느냐, 가서 다른 거 먹으면 되지 않느냐. 이 논리는 다른 대화에서도 자주 적용된다. 얼마나 해봤다고, 멀리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현실을 모르는 소리, 자주 하는 거 아니니 눈 딱 감고 그냥 해. 옆지기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본가에서 고기 먹자 하면 어떻게 할 거냐 묻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되묻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고기 굽는 냄새를 참으며 그 자리에 있기는 싫다. 고깃집엘 갈 거면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그게 맞는 거 같았다. 집에서 고기를 굽는다면 나는 외출을 하겠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친정 식구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다고 하면,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 욕은 좀 들어먹겠지만 그걸로 끝일 테고. 장소가 옆지기 본가로 바뀌면 이 장면은 어떻게 연출될 것인가? 과연 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외출하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집에서의 모든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가족을 위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면서, 왜 그 방향을 거꾸로 돌리지는 못하는지 궁금하다. 나의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확대가족 안에서 비건지향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무지 궁금해서 검색도 조금 해보았지만 딱히 나오는 게 없다. 비건 까페에 가입해야 하려나? 도대체 어떻게들 살아가고 계신 건가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좀 던져주세요. 이런 고민 있는 비건 관련 책도 아시면 좀. 


*** 

여기까지 적어두고 <비건 세상 만들기>를 읽었다. 뒷부분 슬렁슬렁 넘겨보니... 

이론과 증거를 들이대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일단 숙이고 들어가라,는 요지의 글들. 윤리를 내세우지 말 것, 주장하지 말 것, 설득하려 하지 말 것, 판단하지 말 것, 상대방을 이해할 것. 대나무 말고 풀이 되라는. 좋아요 좋아. 그렇게 한다고 치자. 같이 고깃집 간다. 그런데 정말 생고기 굽는 냄새는 못 맡겠단 말이다. 중간에 뛰쳐나오는 것보다 내가 안 가는 게 낫지 않나? 고기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못 먹고 못 맡는 사람이 있으니 중간 어디메쯤에서 타협하자는 거지. 양념한 건 좀 덜하니 그럼 불고기집이나 아니면 중국집, 이런 데로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아주 나중에 만약 내가 그마저도 정말 못 가겠다고 뻗대는 때가 오면, 그때는 어찌 할 텐가? 


오늘 읽은 두꺼운 빨간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목표는 의제에 남겨두고, 현존하는 제약 안에서 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부엌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 정치경제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하나의 억압된 범주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뛰는 식으로 체제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하아. 모든 노력이라. 대나무가 되어 들이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막상 뻔히 드러나는 내 위치에 서서 안 쪼그라들고 들이받을 자신은 없고. 안 그래도 미운털(?) 박힌 둘째 며늘 이제는 꼴값 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생겼다. 그 꼴값, 아드님이 같이 하면 좀 나을까요. 더 가슴 아프실까요. (그럼 또 나만 나쁜x?)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노력한다. 결론은 이거지 싶다. 그런데 정말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정말 그런 걸까. 



















"'나는 옳은가?' 혹은 '이것은 나의 진리인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효과적인가?'이다." (178) (- 방법론적인 면에서 글쓴이의 주장의 일부를 내 경우에 비추어 가져온 문장이므로, 전체 책의 내용이라 볼 수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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