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잘 한 일을 꼽아보자.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일이 다른 어떤 일보다 월등하게 좋을 수도 현저히 나쁘기도 힘들다. 꼭 같은 일이 아니고서야. 그러니 그냥 꼽자. 두 가지를 생각하는데 사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보완의 관계이기도 하다.


먼저 '각방 예찬'.

방이 부족한 집에서 '내 방'을 만들었다. 혼자 자고 혼자 책상을 쓴다. 거실용 식탁을 방으로 들였다. (커다란 6인용이지만 코로나 이후 쓸 일이 없었다.) 흩어져있던 책들을 장식장 안에 대략 정리해서 넣고 침대와 책상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어보았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1인용 안락의자(라고 하기엔 빈약한)에 반쯤 누워서 책을 읽다가 졸기도 한다. 집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던 장소가 주방에서 내 방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한밤중에 다른 곳에서 나는 소리에 잠이 깰 때도 있지만 적어도 옆사람이 뒤척이거나 일어나거나 눕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다. 자는 사람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책을 들고 주방으로 가는 아침도 없어졌다. 옆지기는 거실을 사용한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거실의 기능이 사라지다시피 했고 평소에도 나는 거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집이 복도식이라 공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거실에도 문이 달려있어 방으로 쓰기에 별 무리가 없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옆지기는 오디오가 있는 거실을 이전보다 더 많이 활용하고 나는 잠만 자러 들어오던 방을 하루종일 책 읽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침대에서 불 켜두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쓴다. 그저 방을 따로 쓸 뿐인데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진작 할 것을. 부부가 하나의 방을 사용하는 것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방 하나에 침대 하나가 아니라 각자의 방에 각자의 침대를 마련(혹은 각자의 이불을 사용)하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이롭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부부는 한 방을 써야 한다고 배웠다. 싸우더라도 한 이불을 덮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각방을 쓴다고 하면 이혼 전야의 부부를 보는 눈빛을 만나게 된다. 1+1=1을 요구하는 사회. 틀렸다.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이유는 많은 부분 남성에게 이로운 일이다. 루소인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옛적의 한 여성혐오자는 절대적으로 부부가 한 침대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침대에서 남편이 원할 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고 말했다. (썩을 놈!)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아래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썩을 놈 이야기 여기 나온다, 아마도.) 그리고 되도록이면 잠자리 독립을 권한다. 따로 잔다고 애정이 식는 건 아니다. 해보시라. 생활이 덜 피곤해진다. 나는 내 방에서 책 읽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 작은 집에 살아서 방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을 안다. 나도 지금껏 그렇게 살았으니까. 아이디어를 쥐어짜서라도 한 귀퉁이 내 공간을 정해두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다고 한다. 거기 있을 땐 방해하지 않기.)

















다음은, 모임이다. 독서모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익숙치 않고 누군가를 사귀는 것은 더욱 힘들고 낯을 가리기도 하는 내가 간간이 대화를 하는 도구로 인터넷을 활용해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으로 한국의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으... 나는 점점 작게 쪼그라들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림책 이야기로, 그 다음에는 그릇과 뜨개질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냈다. 때로 침잠하는 긴 시간에는 그것마저 끊었다.) 작년 즈음부터 책을 사들이면서 알라딘 서재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알던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일상을 가끔 늘어놓던 블로그에 책 이야기를 쓰면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책이 연결해준 사람들이다. 자꾸 말이 길어지는데, 이러면 곤란한데, 아 막 설레잖아. 이 사람들, 너무 좋아서. 무엇보다 내 나름대로 큰 용기를 내어 줌독서모임들을 하게 된 것이 뿌듯함과 설렘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어설프고 긴장도 하지만 차차 나아질 것이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 거기에서 또 느끼고 배우는 경험, 무언가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 매일 하고 싶다. 글로 만나는 독서모임 친구들 역시 굉장한 사람들. 매일 보고 배우고 자극받는다. 어떻게든 나와 연결된 책 친구들, 서툰 내 말과 글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 책 친구들, 모두 고맙다. 내 애정이 글자들을 넘어 전달되기를.


나를 칭찬한다고 제목 써놓고 감사인사로 마무리하게 되는 건가. 부끄러우니 딴소리 시전. 아무튼 잘 했다. 칭찬한다. 이 외에도 잘 한 일 몇 가지 더 있지 싶으나 길어지니까 여기까지. 라고 쓰면서 막 몇몇 이야깃거리가 떠오른다. 다음에 하자. 칭찬은 많이, 자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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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2-30 05: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칭찬 합니다.난티나무님♡
그나저나 ‘각방 예찬‘이란 책 넘 좋은데요?^^
나이 들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짐을 깨닫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녔음을 느낍니다.
한 침대에서 부스럭 거림, 옆지기의 코골이등 한 번 깨면 밤을 새게 되더라구요.그리고 우리 부부는 온도가 서로 안맞아 한 겨울, 한 여름은 정말 최악이죠ㅋㅋㅋ
새벽형 사람들은 남편 깰까봐 불을 못켜니 그냥 눈만 껌뻑거리고 누워서 시간을 죽인다는군요.그래서 나이 들수록 각방을 쓰게 되나보다~싶더라구요.헌데 부부는 한 이불이란 말이 모두의 마음에 사슬로 옥죄니 죄책감이 들곤 하겠죠?
저는 주말부부라 혼자 편하게 자다가(때론 딸들이 곁에 와 자기도 하는데 이젠 딸들도 불편해요ㅋㅋㅋ 혼자 자는 게 넘 익숙해져 버림^^) 주말은 거의 잠을 못자 낮엔 피곤피곤~~ 사랑으로 극복하기엔 체력이 넘 딸리네요ㅋㅋㅋ
요즘 저도 지인들께 수면의 질을 높이는 각방을 권하고 다니는데(직장 다니는 제 친구는 일찌감치 각방을 쓴다더라구요) 와~난티나무님 👏👏👏 그런만큼 부부의 정도 더 깊어지시겠어요?^^ㅋㅋㅋ

올 해는 저도 난티나무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반갑고, 좋았습니다.그동안 참 많이 궁금했었어요.같은 나무여서???ㅋㅋㅋ
지금 와 고백하지만...알라딘을 떠나버리신 줄 알고 섭섭했었어요ㅜㅜ
이제 난티나무님의 글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겠어서 좋네요^^

난티나무 2021-12-30 06:46   좋아요 4 | URL
수면의 질! 진짜 이거 중요한데 말이죠. 어떤 면에선 아내들이 거의 평생을 잠자리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봐도 좋을 듯해요. ㅠㅠ 온도 차이도 거의 비슷할 걸요. 여자가 추위 더 타고 더위 덜 타는 거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책을 사지 못해서? ㅠㅠ 알라딘 올 생각을 더 못(안) 했던 거 같아요. 여긴 책 이야기가 넘쳐나니까 와서 보면 책이 읽고 싶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을 제가 했던 건 아니지만 여러 상황으로 짐작컨대 무의식적으로 했을 지도 모르겠다 싶어요. 몇 개월 동안 뜨개질만 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건 아마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서였던 거 같고요. 이래저래 힘든 시기가 많았나 봅니다.^^;;;;;;

책읽는나무님 감사해요. 말씀 너무 기쁘고 든든합니다.^^ ❤️❤️❤️❤️❤️

그레이스 2021-12-30 0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완전 공감합니다

난티나무 2021-12-30 14:39   좋아요 1 | URL
🎶🎶 그쵸그쵸!

mini74 2021-12-30 0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썩을 넘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네요 ㅎㅎㅎ 난티나무님 저도 칭찬해드려요. 잠자리 독립 ! 독서모임 ! 난티나무님 행복하시면 그게 바로 잘한 일이지요 ~ 내년에도 서로 칭찬하며 사이좋게 지내요 *^^*

난티나무 2021-12-30 14:40   좋아요 1 | URL
썩을 넘 개풀 뜯어먹는 소리! 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mini74님~~~~^^

다락방 2021-12-30 08: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아빠와 각방 쓰시고 제 여동생도 남편과 각방 씁니다. 특히나 여동생네 집은 모든 식구가 방을 한개씩 가지고 있고 또 저마다의 책상도 갖추고 있어요. 제부는 본인 방에 모니터 두 대 들여놓고 완전 컴퓨터실로 꾸몄는데 각자의 방이라고 하면 으레 별거중이냐, 사이 안좋냐고 묻더라고요. 제 여동생의 책상 얘기에는 책상이 왜 필요하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반응에 놀라 말문이 막혔어요...

각방도 독서도 그리고 독서 모임도 응원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계속 쓰시는 것도 힘차게 응원합니다!

난티나무 2021-12-30 14:43   좋아요 1 | URL
식구들의 각방 쓰기가 생활화된 다락방님 가족!!!! 매우 바람직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고마워요~~~ 새해에도 꾸준하기를 저도 제게 바라봅니다.^^

수이 2021-12-30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만나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각방 예찬 격렬하게 찬성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여건이 힘드니 얼른 여건을 만들어 저도 난티나무님 본받아 저만의 방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새해에도 건강하게 계속 함께 읽고 쓸 수 있기를! :)

난티나무 2021-12-30 14:50   좋아요 0 | URL
vita님^^ (왠지 부끄럽다 ㅎ 다음엔 제가 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응? 뭘?)
방 만들기 응원해요~ 여건아 얼른 만들어져라!!! 얍!!!!
씐나!!!!!! ❤️❤️❤️

거리의화가 2021-12-30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가 한방을 써야 한다는 거 생각만 해도 숨막힙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의 영역이 있어야 부부 관계도 더 오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방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도 커피와 맛난 음식도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참행복이잖아요. 독서모임도 응원합니다!

난티나무 2021-12-30 14:56   좋아요 0 | URL
서로의 영역, 맞아요 거리의 화가님. 공간도 그렇지만 심리적 거리도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부부 = 한몸 이라고 생각들 하는 걸까요. ㅠㅠ
응원 감사합니다!! 🥰

공쟝쟝 2021-12-3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칭찬하는 난티나무님을 내가 더 많이 칭찬해!! 너무 너무 근사한 2021년 이었는 걸요? 와. 진짜. 멋져요. 엄지척!!

난티나무 2022-01-06 16:39   좋아요 0 | URL
아 댓글을 이제야 봤어요!^^;; 오늘 6일인데?@@
고마워요~! 2022년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 더 근사한 시간이길~~~~~~

단발머리 2021-12-3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방예찬 넘 감동적이에요. 가족이라고 해서 꼭 모든 것을 같이! 해야하는 건 아닌데, 일반적으로 그 생각을 벗어나는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 혼자 책 읽는 새벽이라니, 우아... 넘 근사한걸요!!

난티나무 2022-01-06 16:40   좋아요 0 | URL
이 댓글도 이제야 확인합니다.^^;;;
‘가족 신화‘도 깨뜨릴 필요가 있어요, 완전. 우린 도대체 얼마나 많은 편견덩어리들일까요?ㅠㅠ
올해도 근사하게! 단발머리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