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귀환한 장군에게 노예를 보내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라고 속삭이게 했다 한다. 그 장군의 자긍심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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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두번째 이야기 - 길을 안다는 것, 길을 간다는 것 여행자의 독서 2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품절


객창감(客窓感). 그렇다. 이 단어다. 내가 여행에서 즐기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객창감, 그 쓸쓸함의 즐거움이다. 별 까닭도 없이 이끌려 젊은 날 많은 시간을 외딴 시골길이나 장터, 비 오는 처마 밑에 서게 했던 감정의 실체.....객창감 속에 떠다닌 여행은 쓸쓸했지만 그 쓸쓸함으로 여행의 시간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희망이라는 거짓 행복이 더러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있어도, 쓸쓸함과 외로움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드물다.-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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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City and Design 1
권준호 지음 / 지콜론북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내 관심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런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보게 된 책이다. 따라서 내 눈에 들어온 구절도 디자인에 관한 부분이 아니다. 순전히 내 입맛에 맞는 부분만 읽었음을 밝힌다.

 

정성들여 쓴 책을 그렇게 건성으로 읽어나갔지만, 지은이의 생각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부분이,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무척이나 얄팍한 독서였음) 몇 권의 디자인 관련 책과 다른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13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의 수업에서, 교수는 나에게 "네가 평생에 걸쳐서 저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 지향하는 가치관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불평과 불만은 개인적 감정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았으며, 비판과 저항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영국에서의 삶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수많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대화와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말로 전달되지 않는 것들을 읽고 해석하는 것과 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연습했다. 영국이라는 낯선 사회에 비추어 내가 떠나온 한국사회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고, 내가 그곳에서 저항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소개한 자신의 디자인 작업도 바로 "네가 평생에 걸쳐서 저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를테면 2009년 용산참사에 대한 것, 탈북자들에 관한 작업들에서 그 생각과 고민의 과정을 읽을 수 있다.

 

p.132  선진국에 살고 있는 지식인들이 자기 자식 걱정만 하는 것이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영국이라는 곳에서 비싼 돈을 써가며 공부하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만을 다루는 것 역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382   내가 런던에서 몸으로 부딪쳐가며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집단의 강요와 폭력에 저항하는 개인의 목소리였다.

 

"네가 평생에 걸쳐서 저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한 문장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부분, 영국의 유명한 디자이너와의 대화라든가, 영국디자인 교육기관 같은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책을 읽어도 되나?) 나와는 관련이 없는 분야지만, 영국에 디자인 계통으로 공부하러 갈 분들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comedycarpet 이라는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어서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동영상이 있었다. 감상해보시길....

 

http://vimeo.com/31909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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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길

                 

                            함민복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


길이 노인을 밀어내는지

노인은 걷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촘촘 튄다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

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


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

숨을 멈추고서야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나


길은 유서

몸은 붓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길은 짓밟히려 태어났다


 


....오후 5시, 어두워지는 초겨울 저녁 퇴근길.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며 집을 향해 걷는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모습만 남았다. 나에게는 길이었던 어머니, '짓밟히려 태어나'셨다. 나 역시 이 길에 몸으로 유서를 쓰고 있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 이 무겁지만 보는 사람 하나 없어 넋을 놓고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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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2-0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한구절 한구절이 그냥 읽히지 않으셨나 봅니다.
시인은 어찌 이렇게 '비정함'에 대한 묘사를 잘 했을까요.
저도 마음이 푸욱 가라앉네요.

nama 2013-12-05 10:02   좋아요 0 | URL
그냥 아파옵니다.
 
캐나다 교육 이야기 -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박진동.김수정 지음 / 양철북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불쌍하다. 소고기도 아닌데 등급이 매겨진 채 아둥바둥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새삼 이런 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 알고 있는데...그런데 왜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대안이 없어서? No!!!

 

그 대안을 캐나다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캐나다교육현장은 참으로 상식적이다. 요란하지도 않다. 그곳의 아이들은 우리 나라의 아이들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부럽다. 그렇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우린 이미 지고 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고 부모들도 괴로운 데,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 모든 시스템을 언제까지 견디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

 

p.309...'경쟁교육'은 아이들만 빼고 그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한 제도다. 학부모도 선생님도 아이의 등수만 보고 '더 올려라!말하기 쉽다. 그 말을 안 들을 수 있는 아이는 전국에 단 한 명뿐이다. 상위 교육기관에서 우수 학생 뽑기도 쉽다. 지원자 중에서 점수가 좋은 학생을 고르면 된다. 그러한 방식을 모두 공정한 것으로 동의하고 있으니 공정성 시비도 없다. 효율성으로는 최고로 좋은 이 시스템의 문제는 교육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내 자식은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부모들은 문제아는 못난 부모 밑에서 생긴다고 자신하지만 세상일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도 하는 법이다. 내 자식도 시스템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고 더 잘 키울 수 있다.

  '비경쟁 교육'은 아이들을 주체로 놓고 설계하는 어려운 과정이다...학부모가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비경쟁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다. 엄마들이 만나서 좋은 학원, 훌륭한 과외 선생,명문대 입학 정보만 나누지 말고, 아이들에게 등수를 붙이지 말자는 공감을 나누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많은 학부모와 시민들이 성적표에서 석차를 없애고 수능을 없애거나 점수 분표를 공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일을 나서서 하겟다는 정치인과 교육감 후보가 등장할 것이다. ..'등수가 없으면 대학에서 입학생 선발을 어떻게 할까?'하는 것도 학부모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 대학이 고민할 일이다.

  학부모들은 경쟁 체제와 비경쟁 체제 중 어느 것이 자녀를 위한 것인지 다른 부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쓰고 싶지만, 구구절절 공감하지만 옮겨적지 못하는 이유라면...지금은 일과중이라 긴 시간이 나지 않고(이 책도 겨우 읽었다), 고2인 딸아이의 늦은 귀가 때문에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할 일이란 좋은 과외선생 구해주는 게 전부더라."고 하던 목동 사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 부모들이 대세라면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친구야, 미안하다.)

 

 

(어제는 일과중의 짧은 시간에 이 글을 쓰느라고 대충 인상적인 글만 옮겨 놓고 몇 자 끄적거렸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새 심사가 사나워진 것이다. 사나워진 심사를 내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겨본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쓰고 싶지만, 캐나다라는 교육선진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구구절절 공감은 하지만 옮겨적지 않는 이유라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좋으나 싫으나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이곳의 학부모에게 '해야할 일'을 주문하는 저자의 제안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 이 땅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 내 자식도 시스템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고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말로 대한민국의 부모들을 위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모나 자식이나 이미 희생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녀를 대학에 보내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이상한 성장세계가 있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이런 세계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고3을 눈앞에 둔 자식 덕분에 더욱 확실하게 몸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다.(ㅎㅎ 이제야 어른이 되다니. 머잖아 철들자 노망이지 않을까 싶어 더럭 겁도난다.) 그러니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런 제안들은 공허하게 들린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했던가. 우산을 들어주기보다 함께 비를 맞고 싶은 것이다. 이미 남의 우산을 쓴 사람에게 함께 비를 맞자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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