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로 오며가며 읽으며 혼자서 키득거리는 맛이란... 나도 충청도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한탄하며 읽었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난 엄마는 평생 황해도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나마 몇마디 줏어들은 표현도 다 잊어버리고 오늘도 표준어에 어긋날까 자기검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놈의 띄어쓰기는 또 어떻고. 어렸을 땐 동네에 함경도에서 월남한 분이 있었는데 함경도 특유의 억양과 표현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말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어린 마음에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저 책처럼 '함경의 말들'이란 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대학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로렌스의 저 책을 드디어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1권은 도저히 책을 바르게 펼쳐 읽을 수가 없었다. 두 쪽으로 떨어져나간 책을 스태플러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책을 읽으라고 둔 건지 구색 맞추려고 둔 건지...혼자 씩씩대다가 아예 책을 구입했다. 다 읽으면 도서관에 기증할까 궁리도 해봤는데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소설도 잘 읽힌다. 한 인물의 인생 종점까지 전개되는 통 큰 스케일이 읽을 만하다. 괜히 로렌스가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도시 도서관과 시골 도서관의 차이. 도시 나름이지만, 인구가 조밀한 지역의 도서관은 사람들이 책을 어찌나 읽어대는지 낡은 책도 많고(대부분이 낡았다.) 마음먹은 대로 대출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인구소멸 지역의 시골 도서관은 출간된 지 몇년 된 책을 새책으로 만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무도 읽지 않은 새책 느낌의 헌 책을 접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 종종 자문자답에 빠진다.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던 저 책. 도시 도서관이었다면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시골 도서관에선 찾는 이가 드물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라도 읽어주지 하는 심정.
















p.91

하지만 근대를 고대와 대응시켜 벤야민 식으로 읽으면, 우리가 이제까지 역사라고 생각해왔던 문명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 퇴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실 우리에겐 이제까지 한번도 역사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으로 보면 우리가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이 반드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The Return of the Repressed) 우리는 문명사를 발전사가 아니라 억압하고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시골 도서관에서 빌린 아주 깨끗한 책. 느닷없이 벤야민을 읽게 된 건? 바로 다음 책 때문.
















잘 자란 고구마처럼 꼭지마다 꼬리를 물고 책이 이어진다. 행복한 발견. 일본 전문가들이 은근 많다.















마사오카 시키(1867~1902) 하이쿠 혁신과 단카 활성화에 큰 공을 세운 사람. 나쓰메 소세키와 동갑이자 친구. 산문에는 나쓰메 소세키, 운문에는 마사오카 시키. 


p.161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틀린 것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깨달음의 경지일까...


**마사오카 시키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용어, 일테면 1루수, 우익수, 포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한다.
















양양 출신의 소설가 이경자의 책. 양양을 소개하는 책인데...어렵다. 양양 출신만이 쓸 수 있는 책이고 양양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 같다. 책을 읽되 그 땅을 하나하나 밟아봐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터. 좀 아는 척한다면, 단양면옥은 물막국수나 물냉면보다 비빔막국수나 비빔냉면이 훨씬 맛있다. 얄팍하지 않다. 김치는 순수한 국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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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4-2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청도 출신이지만 충청도 억양이 거의 없으셨던 아버지에 비해, 충청도 억양이 그래도 살아있던 할머니와 한집에서 자란 저는 지금도 어디서 충청도 사투리가 들리면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며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다 돌아가시고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태연히 살아가는 것...한번도 태연히 살아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호들갑스럽게, 법석을 떨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듯. 생각해볼 말이네요.

nama 2026-04-26 10:24   좋아요 0 | URL
35세에 사망한 마사오카 시키는 짧은 인생의 후반기를 병상에서 보냈다고 해요. 태연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단순하게 들리지 않아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으시군요. 저는 할머니, 외할머니를 한번도 뵌 적이 없어요. 두 분 다 피난나오지 못하셨지요. 어떻게 살다가 돌아가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