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길

                 

                            함민복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


길이 노인을 밀어내는지

노인은 걷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촘촘 튄다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

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


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

숨을 멈추고서야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나


길은 유서

몸은 붓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길은 짓밟히려 태어났다


 


....오후 5시, 어두워지는 초겨울 저녁 퇴근길.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며 집을 향해 걷는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모습만 남았다. 나에게는 길이었던 어머니, '짓밟히려 태어나'셨다. 나 역시 이 길에 몸으로 유서를 쓰고 있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 이 무겁지만 보는 사람 하나 없어 넋을 놓고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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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2-0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한구절 한구절이 그냥 읽히지 않으셨나 봅니다.
시인은 어찌 이렇게 '비정함'에 대한 묘사를 잘 했을까요.
저도 마음이 푸욱 가라앉네요.

nama 2013-12-05 10:02   좋아요 0 | URL
그냥 아파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