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길
함민복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
길이 노인을 밀어내는지
노인은 걷지도 못하고
길 위에서 촘촘 튄다
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
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
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
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
숨을 멈추고서야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나
길은 유서
몸은 붓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길은 짓밟히려 태어났다
....오후 5시, 어두워지는 초겨울 저녁 퇴근길. '진액을 다 빼앗긴 저 바싹 마른 노인'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며 집을 향해 걷는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에게마저 비정한' 모습만 남았다. 나에게는 길이었던 어머니, '짓밟히려 태어나'셨다. 나 역시 이 길에 몸으로 유서를 쓰고 있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 이 무겁지만 보는 사람 하나 없어 넋을 놓고 타박타박 집으로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