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사진을 올려본다. 35인승 버스, 왼쪽은 조수, 오른쪽은 버스 운전 기사 그루 바바. (양쪽에 나를 포함한 일행이 3명 있었지만 딸에게 부탁해서 ai로 깔끔하게 지웠다.) 바바는 아저씨, 할아버지 정도의 뜻. 그루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운전의 고수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이분이 한달 내내 혼자서 운전을 도맡았다. 인도에서 네팔로, 다시 네팔에서 인도로, 시속은 40~60 km. 한번에 30시간씩 이동할 때도 몇번 있었다. 30시간 안에는 길에서 하염없이 멈춰선 시간도 포함된다. 혼자 운전하다보니 중간에 휴식 겸 취침도 필요해서였으리라. 곳곳에서 통행세를 받는 사람들은 늘 자리를 비워서 통행세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 툭하면 벌어지곤 했다. 이래저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숙소가 따로 없었고 물론 화장실도 없으니 들판에서 해결해야 했다. 번듯한 식당에 대한 기대는 금물. 길가에서 파는 토마토, 바나나, 귤, 석류 등으로 때우고 운이 좋으면 짜파티 몇장을 구하는 게 전부였다. 칠흑같은 밤이 오면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는데 대담한 친구들은 버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잤다. 

 

한번은 시크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바바가 시크교도여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일행을 사원 바닥에 일렬로 쭉 앉게 하더니 우리 앞에 스테인레스 물컵과 식판을 거의 던지다시피 놓았다. 그러더니 컵에 물을 따라주고 식판에는 두세 장의 짜파티를 배급했다. 배는 몹시 고팠지만 그때만해도 인도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해 물도 못마시고 짜파티도 거의 먹지 못했다. 여행 내내 배앓이를 했다. 준비해간 지사제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워서 몸살난 친구에게도 약효가 있었다.


이 버스의 독특한 점은 후진할 때 아기울음소리를 내는데 주위에 있던 인도인들도 신기했는지 버스 뒤편으로 가서 바퀴를 자세히 살펴보곤 했다.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가 창가 좌석마다 붙어 있었고 창문 잠금장치가 시원찮아서 닫으면 틈이 벌어져서 열리고 또 닫으면 열리곤하여 창문과 싸우다보면 새벽이 희뿌옇게 밝아오곤 했다.



이른 아침. 잠시 버스에서 내리면 어쩌다가 길가 찻집에서 짜이를 사 마셨다. 달콤하고 뜨거운 짜이 한 잔. 그때 맛을 알았을까? 글쎄...세상과 처음 만난 기분? 세상에 처음 눈 뜬 경이로움? 세상의 다양성에 짜릿했던 놀라움? 순간순간이 살아 있었고 깨어 있었지만 당시엔 잘 몰랐다. 


저 35인승 버스는 첫 인도여행의 잊지 못할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씩 몹시 그립다. 버스가 그립다니... 작년에 죽은 우리 댕댕이 아진군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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