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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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나온 건 1993년이었고, 나는 1993년 12월에 인도에 갔었다. 물론 이 책의 존재는 근래에 알게 되었으니 내 인도여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마치 나를 위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의 첫 인도여행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사연 같은 것은 그 당시 내게 없었다. 인도는 그저 나의 오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석이었다. 늘 어딘가의 장소와 그곳으로의 탈출에 굶주려 있는 치기 왕성한 시절에 우연히 인도가 내 의식안에 무겁게 자리잡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선은 이 소설의 줄거리보다 인도에 관한 이러저러한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라나시의 '구미코펜션'의 여주인이 인도인과 결혼한 일본여성이라는 부분에선 적잖이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1993년에도 구미코펜션이 있었고, 2008년에는 직접 그 숙소에 찾아가서 방을 구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누더기 같은 더러운 1인용 매트를 보고 남편과 딸아이가 기겁하는 바람에 포기했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그곳에서 장기체류하면서 타블라 같은 인도전통악기를 배우고 있었다.

 

갠지스강의 새벽 일출, 밤마다 가트에서 열리는 힌두교 푸자의식, 화장터의 매캐한 연기, 바라나시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좁다란 골목길, 온갖 짐승과 쓰레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 구걸하는 무리, 악다귀 같은 상인과 릭샤왈라들...1993년, 2001년, 그리고 2008년, 세 번째로 갔을 때 비로소 바라나시가 제대로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포감을 일으켰던 골목길을 겁 먹지 않고 거닐 수 있었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은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든 것을 품에 안은 매우 독특한 곳이다. 이야기가 넘쳐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사연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이 강은 넉넉히 품에 안아준다.

 

이 소설 속 인물 중 오쓰는 작가가 특히 공을 들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신부의 길을 걷지만 끝내는 신부로서 인정 받지 못하고 쓸쓸히 바라나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그의 마지막 삶이 참으로 적절하게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다음의 구절을 반복적으로 제시한 것은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이 책을 읽으며 콜카타의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를 쓴 조병준시인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사람들로하여금 인도로 향하게 할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미쓰코의 대사를 읽으며 작가 엔도 슈사쿠가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내 생각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소설이 나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되었다.

 

"냄새가 나요."

"다른 나라에선 나지 않는 냄새가 인간의 냄새가."

"싫지 않아요. 좋아요. 이 냄새는 절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요. 유럽 같은 델 가면 전 뭐 잘 알지는 못해도, 프랑스가 바로 그 반대예요. 사나흘 만에 완전히 뼛속까지 녹초가 되고 말거든요."

"글쎄, 프랑스는 워낙 질서정연해서 혼돈스런 구석이라곤 없잖아요. 카오스가 없는 걸요. 콩코드 광장이나 베르사유 정원을 걷고 있으면 전 그 지나치게 정연된 질서를 아름답다고 여기기 전에 먼저 지치는 성격이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이 나라의 난잡함이나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광경, 선도 악도 존재하는 힌두교 여신들의 조각상이 오히려 성미에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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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1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이나 다녀오셨으니, 인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엔도 슈사쿠가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요. 어떤 철학적 주제보다도 인간에게 제일 두렵고 절실한 주제는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nama 2014-04-12 21:55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인도에 다섯 번 갔었어요. 바라나시만 세 번 이었지요.
그렇지요. 죽음, 제일 두렵지요.
 
굿바이 마이 프랜드
피터 호튼 감독, 브래드 렌프로 외 출연 / 클레버컴퍼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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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Cure , 1995년 작품.

예전에, 그러니까 vtr이 있었던 시절에는 이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얼추 10년 전의 일이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문명의 이기들이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하는 바람에 비디오테이프 시절은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지나간 비디오테이프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기가 없어서 볼 수도 없는 것들 속에 이 영화도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 근래에 dvd로 재탄생한 덕분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dvd를 구입한 건 물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에 기대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는 아이들 모습이 이렇다. 수학문제를 풀면서 틈틈이 화면을 들여다보는 아이, 아예 처음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슬며시 잠이 들어버린 아이, 휴대폰 가지고 놀다가 내가 지르는 꽥 소리에 움츠러드는 아이, 지루한 척하다가도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눈을 반짝이는 아이, 그래도 묵묵히 화면에 집중하는 아이....20명도 안 되는 아이들의 영화 감상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

 

영화를 보여주면서도, 이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를 끊임없이 회의하게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듯이 아이들 역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하니 내가 괜한 짓을 한 건 아니었나보다.

 

10년 후에 다시 보아도 감동을 주는 영화, 명화라는 게 이런 영화일 터. 허나 궁금해서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브레드 렌프로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1982~2008) 사인은 헤로인의 과잉 섭취라나. 에이즈에 걸린 소년역을 맡았던 조셉 마젤로는 다행히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엄마역의 아나벨라 시오라는 그러고보니 나와 연배가 같다. 잘 살고 있나?

 

오늘 동아리활동은 이 영화로 때웠는데 다음에는 또 무엇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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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로 교원증만 제시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고 해서 방금 보고 왔는데, 뭐랄까...영화라기 보다는 마치 연수를 받고 온 기분이 든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어려운 일임을, 내가 그런 자리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극장의 옆좌석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 처럼 작년에 같은 교무실에서 일 년을 함께 보낸 동료교사가 남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졸지에 부부동반 영화관람을 한 셈인데 그분들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을 터.

 

그래, 이런 영화를 교사들에게 무료로 관람하게 하는 건 잘한 일이다. 진정한 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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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우리처럼 중학교 2학년이 제일 무서운 학년인가보다 했더니 원래 중2 신드롬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진위는 모르겠지만 중학교2학년 시절이 인생(?)에서 제일 철없고, 제일 팔팔하고, 제일 제멋대로이고, 제일 즐거운 시절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간관계형성에 제일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수한 '제일'의 시기를 거치기 때문에 이 시기 자체가 지각변동과 맞먹는 격동의 연속이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절이다.

 

수 년 전 일이다. 신설 학교여서 교실에는 새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살펴보니 컴퓨터에 있는 중요 부품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학급 아이들에게는 없던 일로 할테니 가져간 사람은 이 부품을 조용히 갖다놓거라 했다. 며칠이 흘렀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결국 범인 색출을 위해 무기명 설문지를 돌렸더니 몇 명이 평소에 컴퓨터 박사로 불리는 한 남학생을 지영했고, 어떤 쪽지에는 "00번 사물함에 갖다 놓았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이 거론된 녀석에게 물었더니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여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심증이 아닌 물증이 필요했다. 그리고 과연 그 '00번사물함'에 누군가 부품을 갖다 놓았다. 그러나 도난당한 부품이 아니라 그 비슷한 중고부품이었는데 컴퓨터에 장착해보니 작동하지 않았다. 바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무기명 설문지였지만 하나하나 필적 감정에 들어가보니 속속 쪽지 임자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맨 나중에는 서로 자기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지 3~4장이 남았다.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재차 본인 확인에 들어가서 결국에는 "00번 사물함에 갖다 놓았음"이라고 쓴 쪽지의 주인을 밝혀냈다. 역시나 컴퓨터 박사가 범인이었으나 이 녀석은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담담하고 무표정했다. 섬뜩했다. 한바탕 형사놀이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이 일과 몇 몇의 비슷한 일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래, 아이들이 깜찍하고 무섭지. 절대로 사실을 말하지 않을 때가 많지....하지만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파고들어가면 밝혀지기도 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왕따학생의 죽음을  절묘한 이야기로 풀어낸 오쿠다 히데오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이 이 책의 줄거리인데 보일듯이 보일듯이 조금씩 비밀을 풀어내는 솜씨가 감질나면서도 재밌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끝까지 가서야 마침내 사실의 전모가 밝혀지고 마는데 정말 끝까지 독자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작가에게서 벗어나는데 마침내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렇게 외치게 된다.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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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매혹적인 명자꽃은 여인네들의 가슴에 바람기를 일으켜서 집을 나가게 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예전에 지체있는 가문에서는 명자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퇴근하면서 명자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와서 접시에 담갔다. 사흘을 지켜보며 가슴에 바람과 불을 지펴보았다.

 

봄이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하루

 

 

 

이틀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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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도 예쁘지만 꽃을 꽂아놓으신 배치가 참 멋있습니다.
접시는 혹시 직접 만드신거 맞는지요?
사진도, 배경도, 탐나요.

nama 2014-04-02 21:54   좋아요 0 | URL
ㅎㅎ 접시는 그릇 안쪽에 꼭 한 송이를 꽂을 수 있는 고리가 달려 있는 기성품이구요.
배경은 전원을 끈 텔레비전입니다.
예술은 장난이라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