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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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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책은 질색이다. 음식에 관한 책이라는 것, 여러 사람이 한 꼭지씩 썼다는 것,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것이 그 이유일 터.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내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 한 가지 쯤은 있다는 것, 여러 사람이 썼지만 그 꼭지마다 글쓴이의 인생이 녹아있다는 것, TV 프로그램 중에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병적으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책으로 읽는 것만큼은 용서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을 즐겁게 그리고 부담없이 읽었다. 

읽으면서, 나도 나만의 소울푸드를 떠올리면서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다음 글을 만났다. 박찬일씨의 글이다. 

p142. 한때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동숙하던 칼라브리아(이탈리아 남부 지방으로 매우 가난한 지역이다) 출신의 친구가 먹던 요리가 생각났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고향 칼라브리아에서 노모를 비롯한 온 가족이 올라왔다. 나는 그들의 점심식사 자리에 우연히 끼게 되었는데, 정말 그 메뉴는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아버렸다. 변변한 농사나 목축이 잘 되지 않는 칼라브리아 지방 사람들은 정식 식사나 간식으로 오직 마른 빵 한 조각을 먹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음식이 막 우리가 살던 집의 식탁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오직 마른 빵과 오레가노 가루만 놓여 있었다. 이탈리아에선 너무도 흔해 허브 대접도 못 받는 오레가노. 맵고 떫은 맛의 그 가루를 빵 위에 술술 뿌리고, 싱크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수돗물을 틀어 빵을 적셨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 전부 맞다. 2000년대의 이탈리아에서도 누군가는 이런 악식을 먹고 있었던 거다. 마른 빵을 부드럽게 먹기 위해 물에 적셨고, 밋밋한 맛에 포인트를 주는 건 오직 약간의 오레가노 가루일 뿐이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잠시 가슴이 울컥했다.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엄마가 끓여주시던 '두부새우젓국찌개'가 생각나서였다. 라면 1.5인분에 해당하는 물을 넣은 냄비에 두부 한 모를 썰어넣고, 매운 고추 두어 개를 잘게 썰어 넣은 다음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어 끓이면 되는 아주 간단한 끼개였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아버지는 그 찌개가 고향 음식이라며 아주 좋아하셨는데 나는 그저 매콤한 고추를 씹는 맛에 그 찌개를 먹곤 했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썰지않은 두부를 통놈으로 접시에 담아 간장이나 볶은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 두부 한 모 마저도 여러 식구가 함께 먹어야했던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었다. 언젠가 그 찌게가 그리워 한 번 만들어보았지만 옛날의 그 맛은 도저히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이런 음식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가족이 떠오르고 가족이 떠오르면 편치않은 가족사에 목이 메이기 때문이다. 우울해진다. 그래서인지  

p.166. ...대부분은 농민들의 거친 손만 눈에 가득 담고 돌아온다. 그들에게 소울푸드를 물으면 웃으며 되물을 것이다. '소가 울면 주는 푸드인가요?' 의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꼭지의 글은 또 이렇게 끝난다. p.168 ..경의선 객차에서 바닷내가 나는 밤이면, 기차가 수십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할 때의 그 고요를 담고 북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환상을 만든다. 거기 가서, 굶주림의 동포들에게 소울푸드를 묻는 만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차마. 

위에서 '나 또한 내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 한 가지 쯤은 있다는 것' 을 말했다. 있긴 있다. 들어는 보셨을라나. 이름하여 '꿀꿀이죽'. 미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이 희한한 음식이 내 영혼에는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미군들이 먹고 난 온갖 음식을 마치 돼지죽처럼 끓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그만 손수레에 실린 꿀꿀이죽을 파는 장사치가 동네에 나타나면 그날은 별식을 먹는 행복한 날이었다. 온갖 음식을 잡탕으로 끓인 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가지 야채와 큼직큼직한 고깃덩어리가 듬뿍 담겨있어서 골라먹는 재미도 한 몫 했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담배꽁초도 나왔지만. 

이런 눈물겹고 보잘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 음식이 그리워진다. 부모님과 4남매가 온전히 함께 보냈던 '행복한 유년시절'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음식 얘기는 그만. 배 고픈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서다. 그리고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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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친구들아.

올해는 매일 너희들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사실 즐거움 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았단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잘 알거야. 점심시간의 급식판 사건,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수업 방해를 받는 일, 온갖 장난과 다툼으로 병원 신세진 친구들, 남을 괴롭히거나 때려서 잠시 가정에서 교육을 받고 온 친구들, 선생님들께 무례하게 대들거나 말대꾸를 해서 수업 진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친구들, 교실이 털렸던 일, 억지 행동이나 흉내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친구들, 점심시간에 남의 식판에 툭하면 젓가락을 들이대는 욕심 사나운 친구들, 교실 바닥에 종이를 마구 버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친구들, 자신에게는 단지 장난에 불과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이 되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 야한 농담으로 친구들을 웃기려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나 뿐인’ 친구들, 입과 행동이 야수같은 친구들... 참으로 힘든 날들이었다.

그런 중에 처음부터 너희들을 괴롭히던 어떤 친구를, 참다못해 너희들 중 누군가가 그 친구에 대해 학교에 투서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 너희도 다 알거야.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지. 덕분에 그 친구에게는 개과천선하는 기회가 되어 요즘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거야. 학년 초의 그 철없고 건방지고 폭력적인 태도가 많이 수그러들었고 수업 태도도 좋아졌다는 것도 알거야.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폭력적인 친구도 몇 번의 눈물을 흘렸어야했어. 말하자면 마음 속 깊이 반성할 기회를 준거야, 그 편지들이. 누가 그 편지를 썼는지는 미스터리지만 하여튼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한 셈이지.

그런데 아직도 그 친구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친구가 있다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단다. 그 친구의 버릇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너희들이 피해를 입는 거야. 만약에 아직도 그 친구(혹은 다른 친구들도 포함)가 때리거나 금품 갈취를 하고 있어서 더 이상 같은 학급에서 공부한다는 자체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글로 써주기 바래. 담임인 내가 악동 같은 여러 친구들 때문에 나날이 괴롭고 피곤한데 너희들이라고 편할 날이 있겠냐 싶어. 너희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게 되겠지. 물론 학교 교칙에 의거해서.

담임선생으로서 너희들이 고통을 당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조처를 취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단다. “한 그릇의 밥을 푸면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교사”라고. 너희들 모두 모두가 정말 소중한 한 알이라서 한 알도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오늘도 생각한다.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써주렴. 
 

***결과를 말해야겠다. 위 글을 프린트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뒷면에다 쓰고 싶은 말을 쓰게 했더니, 다른 친구에게 미안했던 일, 괴롭힘 당한 일, 수업 방해하는 친구들 얘기, 싸운 얘기 등등 하소연도 다양했다. 이것을 개인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고 더불어 해당 학생에게 프린트를 해서 주었다. 요즘 아이들은 교사가 하는 말 쯤은 그저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여도 동급생인 친구들이 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아주 꼼꼼하게 읽으며 화를 내기도 하고 시인하기도 한다. 친구들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생각할 기회를 주고는 그 여백에 해명의 글이나 억울함 혹은 변명 혹은 반성의 글을 쓰게 했다. 이 쪽지를 받은 열서너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신이 나서(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열심히 읽고 열심히 글을 썼다. 이 진지한 모습이라니...교실 분위기가 펄펄 살아났다.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아이도 있었다. 눈빛을 반짝이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모습을 드러내는 눈부신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일방적인 반성문 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자주 하기는 힘들 것 같다.(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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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 Guzaaris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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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지난번 수능이 있던 날(11월 10일), 모처럼 학교가 쉬는 날, 나는 이 영화를 보러갔다, 혼자서. 주위에서 쉽게 갈 수 있는 cgv(멀지 않은 곳에 세군데나 있다!)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인터넷검색을 거쳐 낯선 동네를 돌고돌아서 찾아갔다. 아직도 이런 열정이 남아있다니, 스스로 대견해함은 쓸쓸함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으나, 평일 대낮에(오후 12시대와 오후 2시대가 전부) 그것도 인도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찾아보지도 않았다. 

텅텅 빈 객석의 관객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으나 나중에 몇 명이 더 들어와서 10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생략하고 싶다. 나는 긴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재주가 원래 없다. 글로 옮기는 건 그래도 말로 하는 것 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게 그거다. 굳이 한 문장으로 이 영화를 말한다면, 안락사를 둘러싼 사랑 얘기쯤 된다고나 할까. 지나치게 여주인공이 이쁜 점이 역시 인도 영화답다고 생각했을뿐 줄거리 자체는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 다만 몇 장면이 색채면에서 감각이 매우 돋보였을 뿐. 사실 나는 노래와 춤이 흥청대는 맛살라 볼리우드를 더 좋아한다. 이런 심각한 인도 영화는 신파조로 흐르기 십상이다. 흠, 그것도 싫지는 않지만.(어쨌건 나는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아무리 인도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의 질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저 그렇다고 생각되는 이 영화가 그래도 계속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뭔가 짚고 넘어가주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일주일 전, 매일 1시간씩 걷는 것으로는 운동이 약하다 싶어 중간에 몇 차례에 걸쳐 달리기를 시도했다. 달리기라고 해봤자 기껏 몇 백 미터에 불과했는데 그게 무리가 갔는지 왼발 엄지발톱에 통증이 오더니 새까맣게 변색이 되고 오른쪽 다리의 오금부분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한술 더떠 걸어서 (50여분 걸림) 출근하는데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었다. 뛰는 방법 밖에 없었다.  

결국 퇴근길은 병원행이었는데,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인대가 늘어나기는 난생 처음이다. '별 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늘 별 일 없이 살아왔나 싶다.  

병원에서 나와서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또 걸어서 퇴근했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절뚝거리며 걷자니 우울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이 <청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4년간 전신불수로 살아온 전직 유명 마술사인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 날을 택하여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돌잔치 같은 분위기의 생의 이별 파티를 상상해보시라.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넣었으나 매번 패소당하는 데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날을 결정하고야만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이별 파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벌어진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둘러싼 채. 

이 영화,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걸 보면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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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계신 우리 엄마, 82세. 

겨우 한글을 읽을 줄은 아나 쓸 줄은 모르시기에 종이에 기록하는 대신 모든 걸 기억에 담아두신다. 엄마의 지적 능력은 곧 기억력 그 자체이다. 그래서인지 정신력이 그대로이시다. 병실의 다른 노인들처럼 그냥 침대에 누워 계시기에는 너무나 총명한 정신력을 가지고 계신데 몸은 손놀림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움직임이 성치 못하니 화장실 한 번 혼자서 다녀오시는 게 유일한 소망이신데... 

같은 병실의 치매에 걸린 어떤 할머니를 보며 한말씀 하신다. "차라리 치매에 걸리면 좋겠다." 

"정신과 육체가 함께 망가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요즘 생각이 많다." 내 친구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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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던라이츠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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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하면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하면 알래스카, 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의 알래스카 기행문을 읽어보니 모두 짝퉁으로 보였다. 알래스카의 어느 지역을 '촌동네' 운운하는 데서는 더 이상 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짝퉁 두어 권을 미련없이 서가에 다시 꽂으며(도서관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에 다시 젖어본다. 

p.172 ...기온은 영하 40도. 일출은 10시 32분, 일몰은 15시 28분. 태양은 지평선 저편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아침에 떠오른 태양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석양이 된다. 세상은 또 그렇게 어두운 밤이 되고, 밤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태양이 가라앉지 않는 여름의 백야도 인상적이지만, 이곳이 극북임을 실감할 때는 역시나 겨울이다. 겨울의 짧은 해는 알래스카의 상징이다. 지평선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내 마음도 애처로움에 물들어간다. 이곳에서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쌓이는 것 같다. 그 쌓인 만큼의 무게 때문에 나는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 내가 알래스카의 겨울을 사랑하는 까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태양에 대한 추억들을 되살리기 때문은 아닐까.

p.194...그때 나는 '머나먼 자연'이라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머나먼 자연의 소중함을 믿는다. 알래스카는 머나먼 자연이다. 이곳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알래스카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땅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땅이다. 지구 어딘가에 태초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영혼으로 찾아가는 머나먼 자연이다. 

p. 224..."알래스카는 언제나 발견되고, 언제나 잊혀진다." 알래스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p. 237...베트남 전쟁에서 5만 8,132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병 중 약 15만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에 관해서는 무관심했다. 윌리도 그 15만 명 중 한 명이 될 뻔한 시기가 있었다. 공황장애를 겪던 윌리는 목을 메려고 했다. 당시 그의 아들은 고작 일곱 살이었다. 일곱 살 먹은 그 아들이 자기 앞에서 목을 맨 아버지의 허리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떠받쳤던 것이다.  

 

윌리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이 책에는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대부분 잔잔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혹은 절절한 우정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읽다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알래스카에서 일생을 보내는 지니와 셀리아라는 미국 여성비행사들, 툰드라 지역의 허허벌판에 오두막짓고 살아가는 어느 백인의 가족사, 알래스카에서 태고적부터 살아온 원주민과 인디언들의 삶...등등은 오랜동안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을 주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래스카를 잠깐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기행문들이 왜 허접스럽고 경망스럽고 수다스럽고 부질없어보이는 지를 알게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책을 내던지게 된다.  

만약 내가 알래스카를 여행하게 된다면, 또 그게 가능하다면, 호시노 미치오의 궤적을 더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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