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던라이츠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알래스카하면 호시노 미치오, 호시노 미치오하면 알래스카, 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의 알래스카 기행문을 읽어보니 모두 짝퉁으로 보였다. 알래스카의 어느 지역을 '촌동네' 운운하는 데서는 더 이상 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짝퉁 두어 권을 미련없이 서가에 다시 꽂으며(도서관에서)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이야기에 다시 젖어본다. 

p.172 ...기온은 영하 40도. 일출은 10시 32분, 일몰은 15시 28분. 태양은 지평선 저편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아침에 떠오른 태양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석양이 된다. 세상은 또 그렇게 어두운 밤이 되고, 밤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태양이 가라앉지 않는 여름의 백야도 인상적이지만, 이곳이 극북임을 실감할 때는 역시나 겨울이다. 겨울의 짧은 해는 알래스카의 상징이다. 지평선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내 마음도 애처로움에 물들어간다. 이곳에서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쌓이는 것 같다. 그 쌓인 만큼의 무게 때문에 나는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 내가 알래스카의 겨울을 사랑하는 까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태양에 대한 추억들을 되살리기 때문은 아닐까.

p.194...그때 나는 '머나먼 자연'이라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머나먼 자연의 소중함을 믿는다. 알래스카는 머나먼 자연이다. 이곳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자연이 숨 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단 한 번도 알래스카 땅을 밟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알래스카는 그들에게도 소중한 땅이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땅이다. 지구 어딘가에 태초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는 자연이 아니다. 인간이 영혼으로 찾아가는 머나먼 자연이다. 

p. 224..."알래스카는 언제나 발견되고, 언제나 잊혀진다." 알래스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p. 237...베트남 전쟁에서 5만 8,132명의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병 중 약 15만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에 관해서는 무관심했다. 윌리도 그 15만 명 중 한 명이 될 뻔한 시기가 있었다. 공황장애를 겪던 윌리는 목을 메려고 했다. 당시 그의 아들은 고작 일곱 살이었다. 일곱 살 먹은 그 아들이 자기 앞에서 목을 맨 아버지의 허리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떠받쳤던 것이다.  

 

윌리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이 책에는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대부분 잔잔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혹은 절절한 우정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읽다보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알래스카에서 일생을 보내는 지니와 셀리아라는 미국 여성비행사들, 툰드라 지역의 허허벌판에 오두막짓고 살아가는 어느 백인의 가족사, 알래스카에서 태고적부터 살아온 원주민과 인디언들의 삶...등등은 오랜동안 알래스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글이다. 

그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을 주는 이 책을 읽다보면, 알래스카를 잠깐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기행문들이 왜 허접스럽고 경망스럽고 수다스럽고 부질없어보이는 지를 알게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책을 내던지게 된다.  

만약 내가 알래스카를 여행하게 된다면, 또 그게 가능하다면, 호시노 미치오의 궤적을 더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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