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 Guzaaris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번 수능이 있던 날(11월 10일), 모처럼 학교가 쉬는 날, 나는 이 영화를 보러갔다, 혼자서. 주위에서 쉽게 갈 수 있는 cgv(멀지 않은 곳에 세군데나 있다!)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인터넷검색을 거쳐 낯선 동네를 돌고돌아서 찾아갔다. 아직도 이런 열정이 남아있다니, 스스로 대견해함은 쓸쓸함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으나, 평일 대낮에(오후 12시대와 오후 2시대가 전부) 그것도 인도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찾아보지도 않았다. 

텅텅 빈 객석의 관객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으나 나중에 몇 명이 더 들어와서 10명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줄거리는 생략하고 싶다. 나는 긴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재주가 원래 없다. 글로 옮기는 건 그래도 말로 하는 것 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게 그거다. 굳이 한 문장으로 이 영화를 말한다면, 안락사를 둘러싼 사랑 얘기쯤 된다고나 할까. 지나치게 여주인공이 이쁜 점이 역시 인도 영화답다고 생각했을뿐 줄거리 자체는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다. 다만 몇 장면이 색채면에서 감각이 매우 돋보였을 뿐. 사실 나는 노래와 춤이 흥청대는 맛살라 볼리우드를 더 좋아한다. 이런 심각한 인도 영화는 신파조로 흐르기 십상이다. 흠, 그것도 싫지는 않지만.(어쨌건 나는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아무리 인도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의 질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저 그렇다고 생각되는 이 영화가 그래도 계속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뭔가 짚고 넘어가주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일주일 전, 매일 1시간씩 걷는 것으로는 운동이 약하다 싶어 중간에 몇 차례에 걸쳐 달리기를 시도했다. 달리기라고 해봤자 기껏 몇 백 미터에 불과했는데 그게 무리가 갔는지 왼발 엄지발톱에 통증이 오더니 새까맣게 변색이 되고 오른쪽 다리의 오금부분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한술 더떠 걸어서 (50여분 걸림) 출근하는데 중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었다. 뛰는 방법 밖에 없었다.  

결국 퇴근길은 병원행이었는데, 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인대가 늘어나기는 난생 처음이다. '별 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나는 늘 별 일 없이 살아왔나 싶다.  

병원에서 나와서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또 걸어서 퇴근했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절뚝거리며 걷자니 우울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이 <청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14년간 전신불수로 살아온 전직 유명 마술사인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 날을 택하여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돌잔치 같은 분위기의 생의 이별 파티를 상상해보시라. 법원에 안락사를 허락해달라는 '청원'을 넣었으나 매번 패소당하는 데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날을 결정하고야만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이별 파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벌어진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둘러싼 채. 

이 영화,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걸 보면 나도 조금씩 늙어가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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