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만 15년이 되어간다. 아파트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럭저럭 내 고향이려니 여기고 살고 있다.

 

얼마전 바로 앞집이 이사갔다. 족히 6~7년은 얼굴 마주치며 살았다. 특히 여행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울 경우 온갖 우편물 수거를 부탁하곤 했었고, 마침 그 집 둘째딸과 우리 딸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수험생 부모의 심정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한바탕 수다를 떤다거나 서로 오고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늘 바빴으니까.

 

앞집이 이사가던 날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새벽에 출근하기 때문에 이사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사가고 이사오는 아파트 풍경이지만 바로 앞집이 이사가는 모습은 차마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또 우리 라인에 살던 민경이네가 이사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경이와 딸아이는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었다. 민경이네는 이 아파트에 입주한 초창기 멤버였다. 특히 민경이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명절 무렵이면 늘 민경이 할머니께서 식혜를 한 냄비씩 주셔서 넙적넙적 얻어 먹곤 했다.

 

앞집이 이사가던 날, 딸아이와 나는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다들 이사가고 우리는 이제 완전히 원주민이 되었어."

"원주민 정도가 아니야. 영주권의 영자를 써서 영주민이 되었어."

 

퇴근하면서 혹시나 해서 들러본 민경이네. 벌써 이삿짐이 들어오고 있었다. 민경이 할머니께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씀도 못드렸는데 이를 어쩌나. 몹시 서운하다.

 

아는 얼굴들이 떠나간 아파트는 허전하기만 하다. 이젠 진짜 영주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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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에 앞서 책을 먼저 읽었다.

 

 

 

 

 

 

 

 

 

 

 

 

 

사진집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영화로 보충설명을 들었다고나 할까. 평생을 남의 집 자식들을 보살피는 보모로 일하고 말년에는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던 한 여인의 숨겨진 예술혼(?)에 대한 찬가쯤 되는 영화다.

 

영화는 시종 이 여인의 특이한 성향이나 행동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다보면 이 여인이 그렇게 특이하거나 괴상하다거나 이해 불가능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저런 상황에서 삶을 영위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이해심도 생긴다. 단 하나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는 것이다.

 

왜 찍었을까. 왜 찍어야만 했을까. 생전에는 발표할 기회도 얻지 못했으면서. 외로움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녀에게 필요한 건 사진가로서의 인정보다 사람으로서의 사랑이 더 절실한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한 고독한 여인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사진작업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는데, 다행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영화에 등장한 주변 사람들도 그런 말을 했다. 만약 그녀가 살아서 이런 광경을 보았더라면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고.

 

사진집에서 보았던 것 중에 인상적인 건, 자신을 찍은 자화상 사진들이다. 카메라를 분신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다양하고 절묘하게 찍을 수 없을 듯한 사진들이다.

 

서울에서도 이 분의 사진전이 열릴 모양이다. 사람들...정보가 빠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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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인도에선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이 만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결국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 계급이 높을수록, 부자일수록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못한다는 건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못해 자식과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아낙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그리 특이한 소재는 분명 아닐 것이다. 영화답게 그것도 인도영화답게 이 영화 역시 과장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중상층의 젊은 아낙이 영어를 전혀 못한다는 것, 재즈를 '차즈'로 발음하는 사람이 3~4주만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는 것, 프랑스 남자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 결국 해피엔딩의 결말....뻔한 전개인데, 그래도 재밌다. 결말에 대한 관객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데도 유쾌하다. 뻔한데 재밌다는 것, 이것이 인도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이 이렇게 예측 가능하다면 얼마나 사는 게 단순하고 즐거울까.

 

주인공 아줌마가 영어를 사용하게 되자 남편과 자식들이 그제서야 아내다운 엄마다운 대접을 해준다는 게 좀 씁쓸하지만 영화니까 그렇다고 치는 수밖에. 우리는 또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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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ina 2015-06-15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달 전인가 저도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영어배우기가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이면 저도 한 번 다시 도전해 보겠는데요,
저의 영어 관련 결말은 늘 해피하지 않더라구요. ^^


nama 2015-06-15 18:43   좋아요 0 | URL
영화 끝부분에서 여럿이 어울려 춤추는 군무 장면이 나오는데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관람했던 인도영화 <신상>이 잠시 떠올랐어요. <신상>에서 흐르던 곡조가 언뜻 섞여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요. 굉장히 강렬한 영화였지만 얼마전에 다시 보니 너무 지루해서 볼 수가 없었어요. 중학교 때 그 지루한 영화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영어, 평생 웬수 같은 거지요.^^
 

 

 

 

 

 

 

 

 

 

 

 

 

ㅎㅎ 이 비싼 책을 도서관 예산으로 구입해서 읽는 맛이라니... 비록 직접 전시장에는 못 갔지만 뭐 괜찮다. 주말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에서 읽는 맛이 쏠쏠하다. 허나 내 책이 아니니 몇 장 사진으로나마 흔적을 남긴다.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죽음이 느껴지는가?

 

 

 

로스코채플. 공연도 하고 강연도 하는 예배당. 세련된 토굴 같은 느낌.

 

 

 

 

 

 

책 뒷모습. 로스코스럽다.

 

1권은 도록과 간단한 설명으로 되어 있고, 2권은 강신주의 해설서. 그런데 강신주의 글이 좀 그렇다. 현학적인 해설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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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ette 2015-06-1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 지난번에 다녀왔어요! 무언가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압력을 넣는둣한..? 느낌을 받고 돌아왔어요 ㅎㅎ

nama 2015-06-15 07:11   좋아요 0 | URL
책으로만 봐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있는데 직접 본다면 더욱 실감이 나겠지요. 며칠 안 남았는데 봐야할지 고민중입니다.

nama 2015-06-23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5년6월20일 기어코 로스코전을 보고 옴.
 

 

 

 

 

 

 

 

 

 

 

 

 

 

어제, 오늘 틈틈이 읽으면서 즐거웠다.

 

요즘 내 책 읽기는 건성건성이다. 만약 어떤 작가가 한 줄로 할 수 있는 말을 서너 줄로 늘려 말하는 경우, 이럴 땐 가차없이 손에서 책을 놓아버린다. 그러고보니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쓸데없이 말이 말은 사람을 꺼려하니까.

 

그런 불친절한 심성을 가진 내가 그래도 이 책은 잘근잘근 씹으며 읽었다. 뻔한 말인데도 글이 착착 안겨오는 맛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읽은 다음 책은,

 

 

 

 

 

 

 

 

 

 

 

 

 

 

읽다가 말았다. 말이 너무 많아서. 글은 읽는 맛이고 말은 듣는 맛인데, 말을 읽어야 하니 재미없었던 걸까? 내 취향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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