땰내미 다니는 재수학원에서 발생한 식중독 사건으로 단체급식이 중단되는 바람에 열흘간 도시락을 쌌다. 늘 일어나는 시간이 새벽 5시라서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도시락 싸는 일은 손이 많이 갔다. 밥 먹고 설거지하고 창문 닫고 허둥대다 출근하면 7시 좀 넘어 사무실에 들어선다. 눈꺼풀이 무거운데 잠은 오지 않는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그냥 엎어져 자도 되련만.

 

드디어 다시 급식이 시작되어 도시락에서 해방되나 했더니 이번엔 13년 간 사용한 세탁기가 고장났다. 17년 간 사용한 사람도 있다는 말에 얼떨결에 구입한 독일제 세탁기였건만 매일 해대는 빨래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새로 주문한 세탁기는 거의 일주일 후에 온다나 어쩐다나. 퇴근 후 저녁마다 손빨래를 하는데, 내가 헹굼까지 해놓으면 남편은 인간 탈수기가 되어 빨래를 쥐어짠다. 이건 여행가서 하는 방식인데, 흠 일상이 여행이라 생각하니 그래도 할 만하네.

 

16년 된 승용차를 53만원 주고 수리했는데 새 스프링과 헌 스프링이 대결을 하는지 자갈길을 가는 것처럼 덜컹거린다. 신호대기라도 걸리는 양이면 시동마저 꺼져버리는데 손재주 좋은 남편은 겁도 내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시도한다. 성질 급한 나는 창문 열고 뒷차에게 수신호라도 보낼 기세, 보통 욕 나올 상황에선 내가 먼저 진하게 욕을 뱉어내기 때문이다.

 

단체급식, 세탁기, 냉장고, 승용차도 없던 시절, 우리 엄마는 매일 돈 버느냐고 고생하면서도 도시락 싸고 손빨래하고 이틀 걸러 김치 담그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셨는데, 난 요것도 힘들다고 난리다. 가볍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5-09-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 세탁기도 요즘 세탁하는동안 마구 앞으로 걸어나오는 (!) 바람에 세탁 한번 끝나면 다시 밀어서 제자리에 놓느라고 힘 좀 쓰고 있답니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이제 그럴 때도 되었지 않냐고 하네요. 이제 12년 밖에 안되었는데? 제가 그랬답니다. 10년은 기본이니 기본 빼고 겨우 2년 더 썼다고요 ㅋㅋ 승용차 16년 타신것도 놀랍네요. 저희는 11년 타고 작년에 바꿨거든요.
따님 학원에서 식중독 사건이 있었군요! 이런...

nama 2015-09-08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개월 간 세탁기가 마구 앞으로 돌진하더니 어느 날 조용히 숨을 거두더라구요. 보통 탈수 때는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나서 나름 비행기 타는 기분도 느꼈어요.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아무래도 그리워질 것 같아요. ㅎㅎ
자동차는, 남편은 주로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저는 걸어서 퇴근하고, 딸은 고등학교 내내 걸어다녀서, 사실 자동차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강원도 갈 때 무지 부려먹기는 했지만요.
딸아이는 친구들이 그런대요.`철장`을 지녔다고. 무사했어요.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에 이나마 깨끗한 하늘 아래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면, 모든 사람이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린다면, 이 지구는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지 않습니다. 결국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에 깨끗한 하늘 아래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57쪽)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내 손으로

 

농사지은 쌀로

 

정성껏 밥을 지어

 

천천히 씹어 먹으면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흉내)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시험 보는 날

 

내가 출제한 문제에 문제가 생겨

 

쩔쩔매다

 

식은땀으로 해결됐을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논가에 미루나무를 심고 길가에는 무궁화를 심어야 한다.'

 

미루나무는 병충해의 천적인 무당벌레, 거미류의 서식처로 이용되며, 미루나무에 서식하는 무당벌레는 성충이 되기 전에는 무궁화나무의 진딧물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이 진딧물을 먹고 자란 무당벌레는 벼멸구, 매미충 등 벼의 해충들을 왕성하게 잠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에 미루나무와 무궁화를 심으면 평화로운 공생이 이루어지고 해충도 없애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해도 논가에 미루나무가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경기도 안성에서 였다. 그리고 그전엔 길거리 곳곳마다 무궁화나무를 쉽게 볼 수 있었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다니...

 

*대규모 산불이 나면, 자연을 하루라도 빨리 되살리기 위해서는 인공조림이 아니라 곡물 씨앗을 뿌려야 한다.

 

'식물의 특성을 적용시키면 자연 상태로 방치하거나 인공조림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복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두 꼭지만 읽었는데도 기존에 지니고 있던 상식을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다. 당장 귀농이나 귀촌을 할 처지가 아니라서 더 이상 읽지는 않지만, 나중에 혹여 시골에 가서 살게 된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그것도 매우. 뭔가 근본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뵙고 왔다.

난감하다, 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게 난감하다.

딸의 얼굴을 알아보시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재밌는 건 그래도 사위 얼굴을 보곤 웃으셨다. 백년 손님이 맞나보다.

앞으로 얼마나 엄마의 육성을 듣겠나싶어 한마디한마디에 귀를 기울여본다.

 

"빨랑 와."

잠시 밖에 나갔다왔더니 간병도우미분들이 엄마의 말씀을 전한다. 마치 나를 찾으셨다는 듯이.

건너편 침대에서 점심을 잡수시는 어떤 할머니를 보시고는 "빨랑 와."를 외치시는 거였다. 배가 고프셨나보다.

 

"다 싫다."

점심을 드신 후, 간병인도우미분들이 '앉아계실 거예요, 누워계실 거예요?'라고 묻자 하신 말씀이다. 밤낮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계시는데 좋은 게 무엇이 있겠나 싶어 가슴이 저려온다.

 

"쌀은 있어?"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월남 후 고생을 많이 하셨다.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워야했던 시절이 고생스러우셨는지 잡곡밥을 싫어하시고 흰 쌀밥을 좋아하신다. 먹을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뼛속 깊이 사무치셨다.

 

"이제 가봐."

얼굴을 뵌 지 10분 정도 되면 하시는 말씀인데 어제는 1시간 쯤 지난 후에 말씀하셨다. 자식에  대한 원망인지 배려인지 모호하다. 새겨들어야 할 말씀으로 가슴을 늘 서늘하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눈에는 온통 '노인요양원'만 눈에 띈다. 어떤 건물에는 심지어 요양원이 세 곳이나 들어차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0대였을 때

아버지는 그러셨다.

'발이 안 보인다.'

사람도 안 보고 걸었다.

 

20대

낯선 곳을 무작정 걷곤 했다.

내 등을 보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앞질렀다.

 

30대 중반에 만난 남편 왈,

'정보 요원 같다'나.

각도와 속도를

유지했다.

 

40대

추월하고 추월당하는 수가

엇비슷해졌지만

추월하는 맛이 좋았다.

 

50대

이젠 앞선 이의 등을 보며 걷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5-08-30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60대가 되면, 그저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될까요? ^^

nama 2015-08-30 07:0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70대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고요.

nama 2025-08-2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0대
당신 등도
내 등도 아닌
내 무릎만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