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중에서 가정사에 얽힌 문제가 제일 고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란게, 일단 문제를 안고 있으면, 예를 들어 우환 같은 게 있으면, 그 세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는 난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풀리지 않는 난제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다보면 세상사에 일정한 거리감 내지는 무심함이 자신을 대신하게 된다. 가정사에 빠져있으면서 세상을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진짜 새삼 깨닫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을 향한,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진지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마음에 또 하나의 바윗덩어리를 얹는 것처럼 무게를 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독서라는 게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정사에, 세상사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투사해야 할 일임을 그저 묵묵히 실천할 뿐이다.

 

  참다운 이 책을 요렇게밖에 소개하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다. 그래도 이나마 끄적거리는 이유는 이 책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215쪽) 시민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진정한 이해에 눈을 뜨면 그것이 날줄이 되고,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면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하게 그물처럼 엮이면 빈곤선 이하로 추락하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되고, 기득권을 가지 이들로부터 양보와 동의를 받아내는 압력 수단이 될 것이다.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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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 떠남에 서툰 당신을 위한 청춘 여행법
노동효 지음, 안시내 그림 / 나무발전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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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으로 아이들 데리고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눈에 띄어 빌려온 책이다.

 

6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도서관에 들이닥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소란을 떠니 참다못한 도서관 직원이 바로 학교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 지도 좀 잘 해달란다. (나를 포함한 지도 교사 두 명 중 한 사람은 자전거 타다 부상한 아이를 데리고 병원 가는 바람에 60여 명의 아이들은 오로지 내 책임이었다). 학교가 그렇듯 공공도서관 역시 학생들이 이용해주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안되는 곳인데 기껏 아이들 데리고 왔더니 소란 떤다고 그런다. 학생들도 고객인데 친절하게 가르치거나 안내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넓은 도서관 구석구석에서 학생들 지도를 기대하는 그대들, 교사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것 아닌가.

 

그 와중에 눈치를 보며 빌려온 책이 이 책이다. 웬만하면 반납하기 귀찮아서 그냥 나오거나 나중에 인터넷으로 살 요량으로 제목만 적으련만, 이 책을 집어들고 첫 장을 펼쳐 읽는 순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반납 따위, 그건 나중 일이다.

 

이미 저만치 흘러가 버린 20대의 여행이라.....내 나이 또래는 30대에 접어들어서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그것도 나 처럼 제 때에 자리잡지 못한 경우에나 여행이 가능했지 착실히 살아온 내 친구들에게는 여행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취직, 결혼, 아이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삶의 연속에서 어디 만만한 구석이 있는가. 얼마 전 명퇴를 하고 동유럽 여행을 떠난 내 중학교때 단짝의 경우도 누구나 쉽게 마음 먹는다고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이래저래 여행은 만만한 게 아니다.

 

그래서 20대의 무모한 여행을 기록한 이 책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한 장 한 장을 한숨을 섞어가며 읽었다. 이런 게 회한이라는 건가.

 

이 무모한 여행에서 지은이를 보살펴주고 지켜준 건 여행의 신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렇게.

 

(313쪽) 당신이 모험길에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의 신은 당신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아무리 힘든 여행길이라 할지라도 내일을 위한 계획은 하되, 걱정은 하지 마라. 당신을 내려다보던 여행의 신은 당신이 정말 간절히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이 곧, 여행이다.

 

작년 10월 이후로 전혀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오른쪽 다리의 고통으로 어제는 급기야 종합병원에 가게 되었다. 그간 네 군데의 동네 의원을 전전했건만 결국은 시간 낭비 돈 낭비였던 것 같다. 한 달 후로 잡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근전도검사와 혈류 검사 예약지를 앞에 놓고 인터넷검색으로 알아본 이들 검사 내용은 그리 반가운 것들이 아니었다.

 

걱정 반 우울 반의 기분을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잊을 수가 있었다.

 

'여행은 재산'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혜안에 깊이 공감하며 내게도 여행 신의 강림을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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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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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겉표지에는 세 개의 문장이 울타리처럼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의 삐딱한 국가론.

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하기.

 

많은 내용 중에서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하나.

 

(37쪽)...우리가 국가를 '합리적인 조절자'로 생각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음의 극치인 셈이다. 계급국가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일 수도 없다. 예컨대 지금의 남한처럼 모국어 이해마저 잘 안 되는 서너 살짜리의 유아들까지 혀 수술을 받아가면서 '영어 유치원'에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워야 할 정도로 전국적인 '영어 광풍'을 일으키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고 그 반대다. 영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다수가 영어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그저 다수에 대한 가혹 행위이자 엄청난 규모의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영어 능력을 그 주된 문화자본으로 삼고 있는 남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서 '영어 광풍'은 너무나 필요하다. 그러한 분위기에서야 영어를 무기로 삼는 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고 세습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3월 초. 원어민 교사의 첫 수업. 영어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강연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중국에서의 영어 열풍을 보여주면서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강연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흡사 종교 집회와 흡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종교는 아니잖은가. 수업이 끝나고 이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서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종교적인 강연같다고. 그랬더니 그 다음 시간 부터는 수업 중에 내 눈치를 살짝 보는 듯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할 걸 그랬나 싶다. '영어가 무슨 종교냐?" 고.

 

버겁다. 불편하다. 괴롭다. 고통이다. 무엇이? 영어가. 

 

둘.

 

(287)...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이런 빚을 지고 있을까?

 

(287)...'또라이'로 취급받아도, 이등/삼등 시민으로 전락해도, 그들은 군사주의적 독재의 유순한 '국민'되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초기 기독교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다.

 

11쪽에 걸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부분(277~287)을 읽으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침례교회-여호와의 증인-천주교-불교의 영향을 차례대로 받아온 내게 여호와의 증인은 쉽게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었다. 변호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남들처럼 그들을 비웃거나 조롱할 수는 없었다. 아련한 동정심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들도 제대로 평가를 받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것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옮기지 못해 애석하다.

 

여호와의 증인하면 떠오르는 소책자가 있다. <깨어라>, <파수대>. 어렸을 때 한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먼 친척 고모가 상당기간 이 잡지를 집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그 고모도 음지에서 살았을까, 왜 한번도 얼굴을 뵐 수 없었을까.

 

 

내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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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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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서적이 아닌데 여행서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세계일주를 했으니 그 목적과 방향이 어떻든 분명 여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여행은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절대 아니다. <Unfair Trade>라는 원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불공정한 세계를 좇아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는 일을 생각해낸 것도 대단하고 직접 두 발로 찾아다닌 것은 더 대단하고 의미있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수록된 국가별 소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이 실렸을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니카라과-' 바닷가재가 팔릴 때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공정 무역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중국-'그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마라'(중국 정부도 못 건드리는 공룡 기업, 폭스콘 얘기)

라오스-'모든 산에 고무나무를 심는 나라'

콩고-'당신의 휴대폰에는 콩고의 눈물이 흐른다.'

아프가니스탄-'무조건 금지하면 뭘 먹고살란 말입니까'(양귀비와 마약 얘기)

탄자니아-'최고의 품질은 공정한 거래에서 나온다'

코트디부아르-'성공하는 기업은 눈앞의 이익에 욕심내지 않는다'

 

소비적인 여행을 잠시 반성하게 하는 책이긴 한데 어디 그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인가. 그러니 이런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서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해야 할 터.

 

그런데 이 책은 저자의 활동지역인 영국 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사무실 내 옆자리에 앉은 영국인에게 이 책을 보여주며 아는 작가냐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흠, 우리가 빠른 세상에 살고 있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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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일 년 동안 신간평가단에서 활동했다.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을 공짜로 받아보는 맛은 별미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읽어보고 싶은 책이 선정되었을 때는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으며, 즐거울 일이 별로 없는 일상에서 이런 책들은 박카스 같은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갈수록 리뷰 쓰기가 만만찮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난 해 10월, 무릎인대가 늘어나고 그 여파가 드디어는 족저근막염까지 몰고왔다. 여러 군데의 병원 치료도 그때뿐이어서 오늘은 큰마음 먹고 멀리 있는 전문한방병원에 다녀왔다. 통증이 심한 건 아닌데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출근의 유일한 목적인 퇴근 산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부터였으리라. 걷는 게 시원찮아지면서 삶도 쓸쓸해졌고 리뷰쓰기도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 지론인 <걷듯이 읽고, 읽듯이 걷고>를 철저히 실천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언행일치의 완벽한 삶을 구가하고 있다니...겨우 산책 정도 가지고 이렇게 앓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게 좀 부끄럽긴 하지만.

 

하여간 걷는 것이 시원찮아지면서 리뷰 쓰기가 숙제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글을 제대로 쓰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숙제는 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했다. 타고난 성실성이 미적 감수성과 예술적인 노력에 앞섰다고나 할까. 재미 보다 성실성이 앞서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님을 절감하며 꾸역꾸역 10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리뷰를 쓰고, 11기 신간평가단에는 일말의 희망도 품지 말자고 생각했다.

 

속절없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벗꽃을 물끄러미 지켜보듯, 눈 앞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신간평가단 공지는 내 굳은 의지와는 별도로 내 마음 한 구석을 쓸쓸하게 적셔왔음을, 그래서 이 짧은 봄이 더 아쉬웠음을 숨기고 싶지 않다. 허나 숙제에서 벗어나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그러면 마지막 미션!

 

1)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좋았던 책으로는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꼽고 싶다. 내가 호주를 여행한다 해도 절대로 이런 책을 쓸 수 없기에.

 

 

 

 

 

 

 

 

 

2)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베스트 5:

 

 

 

이 책에 소개된 <나스타샤>라는 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상의 삶에 대한 어떤 통찰 같은 게 느껴졌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책.

 

 

 

 

 

 

 

 

새삼 내게도 이상형의 인간이 있었으니, 그 이름 호시노 미치오!

 

 

 

 

 

 

 

무라카리 하루키의 책 중에서 기대에 못 미친 책이라 골라보았다. 기대에 못 미친 책이어도 선정되다니 무라카미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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