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나태주의 시집으로 제호 <세상을 껴안다>가 눈에 거슬려서 뒤적여보았다. 도대체 세상을 껴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세상을 껴안으라니...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이런 세상을 껴안을 수 있냐 싶어 약간은 삐딱한 기분으로 펼쳐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봄날>이라는 시 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 봄날>

 

봄에 꽃이 많이 피면

사람이 떠난다

사람 가운데서도

좋은 사람이 떠난다

 

아! 두려운 봄

소리 소문도 없이

유서도 없이

모가지 꺾는 봄

 

이담에 나도 꽃이

많이 피어나는 어느 봄날

떠나갈 것이다.

 

왜 하필 이럴 때 이런 시구가 눈에 띈담. '모가지 꺾는 봄'이라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생긴 비염이 다시 도지려고 한다. 자꾸 콧등이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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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평소에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은 분명 이 지시대로 얌전하게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믿지 마라, 너희들 생각대로 행동해라, 너희들 목숨은 너희 스스로가 지켜라.... 나의 허접한 수업을 오늘도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말을 간절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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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주기도 한다.'.....이 영화의 주제가가 있다면 이 제목이 어울릴 터, 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금방 가슴에 와 닿는 명대사.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상상을 불러 일으킬지 어떨지 모르겠다.

 

 

보통 인도 영화의 특징중의 하나는 '베끼기'인데 이 영화 역시 상투적인 방식으로 너무나 흔한 이야기를 베끼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 장면들이다.

 

1.부탄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며, 인도1루피가 부탄에서는 5루피의 가치가 있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기에, 두 주인공이 부탄으로의 일탈을 꿈꾼다. 많은 여행자들이 인도의 값싼 물가가 주는 매력으로 인도에서 장기간에 걸쳐 여행을 즐기는데, 정작 꿈의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인도인에게는 그런 여행의 로망이 부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여주인공이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게 되는 건 남편이 벗어놓은 와이셔츠에서 나는 낯선 냄새 때문이다. 베끼기라고 할 것도 없는 단순한 장면.

 

3.남자 주인공이 나이를 의식하고 이제는 늙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몸에서 할아버지의 냄새가 나고 전철에서 젊은 사람에게서 자리양보를 받게 될 때. 너무나 이해하기 쉬운 설정이다.

 

이런 흔하디 흔한 설정이 진부하지만 인도영화에서는 좀 낯설게 다가온다. 그간 내가 보아온 인도영화와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일 년에 80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든다는 인도영화의 세계를 내가 어찌 다 알랴. 맛살라무비를 즐기는 내 취향의 한계일 터.

 

이런 단순하고 뻔한 장면에 이야기의 결말도 모호하지만, 나름 이 영화의 매력을 꼽아보면-(아마도)최소의 등장인물과 최소의 비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아나로그적인 묘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더 이상 손글씨로 쓰는 편지를 쓸 수 없는 시대에 '도시락과 편지'라는 구식 소재가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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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2쪽) 표토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은...'개인의 존중과 상호연대의 실천이라는 두 덕목을 동시에 구현하던 중세적 코뮌주의를 해체하고 시민들을 무력한 개인주의자로 전락시킨 국가야말로 인류에게는 하나의 역사적 반동이라는 점을 치밀한 역사적 추적을 통해 입증... 중세사회에 대한 독특한 해석도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오늘날 마치 인류 최고의 제도처럼, 혹은 전혀 불가역적인 선험적 시스템처럼 자리 잡고 있는 국가라고 하는 괴물의 약탈적 태생을 입증'

 

.....국가는 괴물이며 역사적 반동이라...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24쪽)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 부모의 섹스로 '우연히' 태어났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효도'를 강요하거나 바란다는 것은 지극히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겐 효도해야 할 의무가 '전혀'없다. 따라서 나중에 결혼(또는 동거)하여 아이를 낳을 때는 보다 더 신중해져야 한다.

 

(43쪽) '나라 사랑'은 곧바로 '충효사상'으로 이어지고, '충효사상'은 모든 독재정치의 밑거름이 된다.

 

 

....마광수의 솔직함과 직설법이 와 닿을 때가 있다.

 

 

 

(185쪽)<다치바나 다카시 <우주로부터의 귀환>을 다룬 글에서......

.<우주식 치유법>'언젠가부터 난 걱정거리가 생기면 우주로 탈출하는 치유법으로 걱정의 소용돌이에서 탈출해왔다. 머릿속으로 점점 멀리 시야를 이동하여 창공으로, 지구 밖으로, 우주 속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그 속에 당연히 보이지도 않을 나를 응시하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낸 먼지만큼도 안 되는 사소한 갈등과 상처들을 헤아려본다. 저 지구라는 작은 별 그 어딘가에 갇힌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진 분노, 질투, 불안, 미움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 부질없는 감정의 낭비였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주적 시각을 빌려 응시하다 보면, 자잘한 걱정들은 소멸된다. 콩알에서 먼지로 그리고 무로...그러면 걱정에서 벗어난다.'

 

                                      (265쪽)...한국 우파들에게 '빨갱이'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붙여지는 이름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권력자들에게 반기를 드는 모든 자, 세상의 모든 불순한(?) 자들에게 붙여지는 공통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빨갱이다.

 

 

 

 

 

 

 

 

 

 

이 책 또한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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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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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나온 건 1993년이었고, 나는 1993년 12월에 인도에 갔었다. 물론 이 책의 존재는 근래에 알게 되었으니 내 인도여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마치 나를 위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의 첫 인도여행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사연 같은 것은 그 당시 내게 없었다. 인도는 그저 나의 오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석이었다. 늘 어딘가의 장소와 그곳으로의 탈출에 굶주려 있는 치기 왕성한 시절에 우연히 인도가 내 의식안에 무겁게 자리잡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선은 이 소설의 줄거리보다 인도에 관한 이러저러한 사실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라나시의 '구미코펜션'의 여주인이 인도인과 결혼한 일본여성이라는 부분에선 적잖이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1993년에도 구미코펜션이 있었고, 2008년에는 직접 그 숙소에 찾아가서 방을 구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누더기 같은 더러운 1인용 매트를 보고 남편과 딸아이가 기겁하는 바람에 포기했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그곳에서 장기체류하면서 타블라 같은 인도전통악기를 배우고 있었다.

 

갠지스강의 새벽 일출, 밤마다 가트에서 열리는 힌두교 푸자의식, 화장터의 매캐한 연기, 바라나시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좁다란 골목길, 온갖 짐승과 쓰레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 구걸하는 무리, 악다귀 같은 상인과 릭샤왈라들...1993년, 2001년, 그리고 2008년, 세 번째로 갔을 때 비로소 바라나시가 제대로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포감을 일으켰던 골목길을 겁 먹지 않고 거닐 수 있었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은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든 것을 품에 안은 매우 독특한 곳이다. 이야기가 넘쳐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사연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이 강은 넉넉히 품에 안아준다.

 

이 소설 속 인물 중 오쓰는 작가가 특히 공을 들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신부의 길을 걷지만 끝내는 신부로서 인정 받지 못하고 쓸쓸히 바라나시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그의 마지막 삶이 참으로 적절하게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다음의 구절을 반복적으로 제시한 것은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이 책을 읽으며 콜카타의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를 쓴 조병준시인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사람들로하여금 인도로 향하게 할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인 미쓰코의 대사를 읽으며 작가 엔도 슈사쿠가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내 생각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소설이 나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되었다.

 

"냄새가 나요."

"다른 나라에선 나지 않는 냄새가 인간의 냄새가."

"싫지 않아요. 좋아요. 이 냄새는 절 피곤하게 만들지 않아요. 유럽 같은 델 가면 전 뭐 잘 알지는 못해도, 프랑스가 바로 그 반대예요. 사나흘 만에 완전히 뼛속까지 녹초가 되고 말거든요."

"글쎄, 프랑스는 워낙 질서정연해서 혼돈스런 구석이라곤 없잖아요. 카오스가 없는 걸요. 콩코드 광장이나 베르사유 정원을 걷고 있으면 전 그 지나치게 정연된 질서를 아름답다고 여기기 전에 먼저 지치는 성격이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이 나라의 난잡함이나 온갖 것들이 공존하는 광경, 선도 악도 존재하는 힌두교 여신들의 조각상이 오히려 성미에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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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1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이나 다녀오셨으니, 인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엔도 슈사쿠가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요. 어떤 철학적 주제보다도 인간에게 제일 두렵고 절실한 주제는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nama 2014-04-12 21:55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인도에 다섯 번 갔었어요. 바라나시만 세 번 이었지요.
그렇지요. 죽음, 제일 두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