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의 <고별연>
새해 담배를 끊었다.
값이 올라서도,
건강이 나빠져서도 아니다.
세상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미개인 보듯 하고,
담배 피울 곳이 없어
쓰레기통 옆이나 독가스실 같은 흡연실에서 피고 있자니
서럽고 처량하고 치사해서 끊은 것이다.
잘 가라, 담배여. 그동안 고마웠다, 나의 연차여.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4807.html )
1. 예전 우리 아버지는 식후에 밥상머리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나는 담배연기가 내 쪽으로 오면 인상을 쓰고 얼굴을 돌리고 손으로 연기를 휘저을지언정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셨다. "얘는 담배냄새 싫어해요." 그러면 아버지는 몇모금 더 빨다가 밥상에 놓인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 끄셨다. 연례적인 행사인 금연 결심 때마다 재털이를 내다버리곤 하셨지만 60살이 훨씬 넘어 병이 들어서야 겨우 담배를 끊으셨다.
초등학교 2학년 봄소풍 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겼는데 다름아닌 담배 2곽이었다. 선물은 포장지에 싸야 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쭈삣거리며 선생님께 담배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내 또래쯤 되셨던 선생님은 아저씨와 할아버지 중간쯤 되는 늙고 흐뭇한 표정으로 선뜻 담배선물을 받으셨다. 화창하게 햇빛이 비추던 60년대 말 어느 봄날이었다.
개인별 컴퓨터도 칸막이도 없던 90년대 중반까지도 교무실 책상 위에는 담배 재털이가 있었고 남교사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실내를 두둥실 떠다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도 흡연의 천국이었다, 우리나라가.
결혼을 했더니 이번엔 아버지 대신 남편이 피우는 담배 때문에 간접흡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러나 남편에게 금연을 권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길에서 남편이 담배를 물기 시작하면 나는 미리 몇 미터 뒤나, 냅다 뛰어 앞질러서 걷고는 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까칠하게 구는군'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21세기가 시작되던 1월 초, 남편이 단번에 담배를 끊었다.(금연 후 비로소 내가 까칠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나...) 물론 보건소의 무료금연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그런 사위를 보고 우리 어머니는 "독하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연이은 금연 실패만을 경험하신 어머니에게는 경이로운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도 종종 거리나 건물 주변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면 인상부터 구겨지곤 한다. 나의 오래된 습관적인 반사작용이다. 담배냄새는 정말 역겹고 지독히도 싫다. 그러나...
담배 피울 곳도 마땅치 않아서 무슨 죄지은 사람마냥 겨우겨우 담배 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비난보다는 연민이 앞선다, 요즘은. 욕은 욕대로, 조롱에, 미개인 취급에, 계급까지 매겨지고 더불어 드높은 세금까지 지불해야 하니 흡연이 무슨 죄라도 되는지....정말 담배 생각나겠다.
2. 어떤 단어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몇 시간이나 다음 날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댬배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방금 생각났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유달리 멋진 남자가 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일 때의 간절한 눈빛,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일 때의 달콤한 표정,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살짝 각도를 옆으로 기울인 머리와 멍하고 흐린 눈빛, 멀리 던진 시선에서 느껴지는 고독. 찰나의 순간마다 변하는 변화무쌍한 다양한 표정에 삶의 희열과 인생무상이 동시에 녹아있는, 그렇게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있다. (여자는 모르겠다. 남자교사들이 교무실 책상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울 때 여자교사들은 화장실에서 몰래 정말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워야하는 세상에서 여성흡연가들의 멋진 폼을 기대하는건 무리다.)
요즘처럼 움츠리고 숨어서 죄인같이 흡연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니 안타깝다고나 해야할까. 폼도 나지않는 흡연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