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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평점 :
읽기 전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는 책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바로 이탈리아어 사전이었다. 영어권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고? 부끄러움, 부러움, 질투, 놀람, 수긍. 나는 복잡한 감정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평일,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자세를 고쳐잡고 bbc 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내게 이 책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모르는 단어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늘 느끼는 기분을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한계가 있는 조건을 더 좋아한다. 무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혹여 내가 무의식중이거나 시건방지게 이런 생각을 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죽으면 이탈리아어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도 끝나기 때문에 난 죽고 싶지 않다. 매일 배워야 할 새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영원을 꿈꾸나 보다.
여기에서 이 작가와 나와의 근본적인 차이가 들어난다. 아픈 인식이다. 난 영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존재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나. 수 없는 열패감과 열등감과 모멸감을 안겨주는 이 거대한 언어, 영어를 어떻게 나의 상대로 만만하게 볼 수 있는가.
또 하나의 차이점.
나의 이탈리아어 글쓰기는 일종의 도주라고 생각한다. 철저히 언어적 변신을 꾀하며 무언가에서 멀어져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거라고.
나는 내가 영어를 붙잡고 있는 한 절대로 현상황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대학 영어영문과에 진학하면서 나를 끊임없이 의기소침하게 만든 게 바로 이 영어다. 나는 절대로 영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엇저녁에도 꿈에 어떤 단어를 가지고 강세가 2음절에 있느니 3음절에 있느니 갈등을 일으켰었다. 나는 영어 때문에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이 책은 삶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외국어를 공부하고 그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삶의 과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막간을 이용한 글쓰기가 참으로 숨가쁘다. 지금.
영어야, 나도 너한테 빠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