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이어 법수치 오두막으로 책을 옮기는 작업을 재개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곤란함에 대해선 작년에 글을 올렸었다.

 

http://blog.aladin.co.kr/nama/8646249

 

작년에는 나올 길이 없어 옆집 대문 밑으로 빠져나와야만 했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욱 가관이다.

 

 

아마도 대문 밑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대문 아래쪽에 레이스같은 펜스를 쳐서 대문을 통과하는 자체를 원천적으로 철저하게 차단했다. 개 한 마리 드나들 수 없게 해놓았다.

 

 

 

대문 옆 나무 울타리 역시 철조망을 둘러놓았다. 키가 웬만한 사람이라면 울타리를 타고 넘어갈 수도 있는 통로 아닌 통로였는데 이마저도 주인의 눈에는 가시였나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다른 방도가 있었으니...사진 오른쪽 아래로 가파른 비탈길이 생겨났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를 위해 원주민들도 이 길을 이용해야 했기에 임시방편으로 길이 만들어졌고, 역시 원주민들이 민원을 넣어 조만간 이 대문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한 측량결과 대문이 들어선 이 땅이 이 집 주인의 땅이 아니었다나.

 

이런 상황에서 옆집을 통과해서 무언가를 옮긴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가더라도 고르지 못한 돌무더기 길을 지나고 덤불을 헤치며 200m 이상을 족히 걸어가야 하는데 짐이 없는 빈 몸이어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 물이야 그리 깊지 않아서 무릎이 잠길 정도라지만 바닥에 깔린 돌에 이끼가 껴서 첨범대며 여유있게 건널 수가 없다. 한여름이라면 일부러 물에 빠지는 일도 즐겁겠지만 책 꾸러미 들고 저 개울물을 여러 차례 지날 일을 생각해보면, 저절로 인정머리 없는 옆집주인에게 화가 치밀고야 만다. 책 꾸러미 뿐이랴. 저 원목과 벽돌은 어떻고.

 

 

(2g폰 사진)

 

원목을 속초에서 구입했는데 배달비 7만 원은 따로 였다. 그러면 뭐하나. 언덕에서 개울까지, 개울에서 집까지 100m이상을 날라야 했다. 언덕에서 개울까지는 남편과 내가 합심해서, 개울 건너기는 남편 혼자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하는 오두막까지는 작은 손수레에 의지해서 역시 남편과 내가 일일이 옮겼다. 그리고 책은 큰 배낭에 넣어서 수차례 물을 건너고 손수레에 실려 오두막으로 옮겼다. 여기까지가 지난 8월, 1박 2일에 했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벽돌을 구입했으나 지난 번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으나, 개울물은 한여름의 물이 아니다. 남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개울물을 차마 건널 수가 없어 인정머리 없는 옆집 대문 비탈길로 빙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있는 책을 저렇게 옮겨놨다. 옮겨놓고 보니 몇 권을 빼놓고는 아까운 책이 별로 없어서 누군가 집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책을 많이 구입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까지 생겨났다. 물론 저 책의 3~4 배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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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음력 생일에 익숙하다. 음력 날짜를 따지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새 세대인 딸아이의 생일은 양력으로 쇤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태어난 정확한 양력 날짜가 궁금했다. 해마다 음력으로 따져서 알아내는 양력 날짜가 아니라 바로 내가 태어난, 정확한 서기0000년 00월 00일 하는 날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2g폰을 이용해서 날짜 검색에 들어갔다.

 

 

 

오른쪽 하단에 표기된 오늘의 음력일은 7월 29일이다. 손가락 하나로 빨간 사각형을 움직이면 과거를 나타내는 위와, 미래를 가리키는 아래로 무한정 날짜와 달과 연도가 바뀐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았다. 음력 날짜가 표기되는 과거의 시작일과 음력 날짜가 끝나는 미래의 마지막 날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음력 날짜 표기 시작 일: 1900년 1월1일

*음력 날짜 표기 마지막 날: 2040년 12월 31일

 

이 휴대폰에는 무려 140년 간의 음력 날짜가 입력되어 있었다. 덧붙이자면 1900년 1월 1일 이전이나 2040년 12월 31일 이후에는 그냥 양력 날짜만 나오지 음력 날짜는 더 이상 표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음력 날짜 표기가 끝나는 날을 2040년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즘 되면 더 이상 음력 날짜를 따지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게 될까? 아니다. 더 이상 이런 고물 같은 휴대폰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 한 마디로 140여 년을 넘나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남짓. 해보시라. 해보면 알겠지만 멀미가 난다. 과거의 온갖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숫자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듯하지만 제각각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멀미 기운이 느껴진다. 이상 야릇한 경험이다. 2g폰으로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난 아직도 2g폰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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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은 것 같아요.
명절 앞두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nama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nama 2017-10-04 19:45   좋아요 1 | URL
여기저기 다녀오다보니 인사가 늦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재미있는 책은, 책을 읽다가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나와야 하고, 공감에 겨워 무릎을 쳐야하고, 혼자 읽기 아까워 주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해야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작가가 인도 여행 중에 겪은 에피소드 한 토막에 며칠이 즐거웠으니...

 

하지만 이 염소수염의 양탄자 상인은 여전히 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손님. 인생은 짧디짧아요. 재산 같은 거 남기면 뭐하나요? 양탄자를 사지 않아도 돼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하지만 만약 이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괜찮잖아요, 하나쯤은. 이 아름다운 양탄자를 소유하는 시간은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아주 잠깐뿐이겠지만, 양탄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 잠깐의 시간이 바로 영원이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시인이 전하고자 했던 말 아니겠습니까?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읊는 양탄자 상인을 맞닥뜨린 저자는 마침내 비싼 양탄자를 구입하고마는데...물론 사기에 가까운 바가지를  흠뻑 쓰고.

 

대학시절에 접했던 오마르 하이얌의 시도 반갑고 사기꾼에 가까운 양탄자 상인도 추억 속의 첫 인도여행 때 만났던 카시미르 양탄자 상인을 떠올리게 해 매우 즐거웠다.

 

오늘도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적고 마는 게 아쉽다.( 근무시간중이다)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하고. ㅎㅎ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에서 모종의 경험을 한 여행자는 그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설<어린 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여행자와 여행지는 모종의 '길들여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곳의 이름을 들으면 곧장 반가움에 '돌아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돌아간다'고 표현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의미 아니었을까?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릎을 치며 읽은 구절이다.

 

맛있는 책을 읽는 맛이 좋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슬쩍 짜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바로 식도락여행 부분이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음식 얘기에선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도 했는데, 꾹 참고 끝까지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이어져서 다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는...

 

...게다가 세월이 흐르며 마음가짐에도 상당한 변화가 왔다. '인생은 그저 한 번의 여행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재산이란 죽어서 챙겨갈 수도 없는 것이니 인생 속에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과감히 '손을 놓는'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자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돈을 쓰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여행 중에 비용 때문에 망설이게 될 때는 꼭 이 문장을 기억하리라 다짐하면서.

 

 

책 뒷표지에 적혀 있는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 옮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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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접하면서 서가 한 쪽 구석에 숨어 있는 그의 <즐거운 사라>를 떠올렸다. 드러내서는 안 되는 금서처럼 종이로 감싸놓았는데 이젠 복권시키고 싶었다. 내가 그런 책을 읽었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이젠 당당히 종이를 떼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가를 살폈는데...

 

 

 

 

 

아니었다. <즐거운 사라>는 당당하게 제호를 드러내며 서가에 꽂혀 있었다. 엉? 근데 옆에 있는 다른 책이 수상했다. 종이를 두른 저 책은 뭐지? <즐거운 사라>보다 더 쎈 책인가? 분명 내가 꽂아놓은 책인데 기억이 안난다. 바로 이 책이었다.

 

 

 

 

 

 

 

 

 

 

 

 

 

 

 

그래서 등수를 매겨보았다. 어떤 게 더 쎈가를. 단연 서갑숙의 책이다. 왜? <즐거운 사라>가 픽션이라면 <나도 때론...>은 다큐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생각으로 서갑숙의 책을 비밀스럽게 모셔놨을 게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책이 또 한 권 있었다. 다름아닌 <까마수트라>. 1994년 인도에서 구입한 책인데 프랑어로 되어 있다. 당시 그 책을 발견했을 때 그림이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언어 따위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워낙 쎈 책이라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이 책을 서가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다.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읽거나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다시 정리해본다.

 * 야한 정도: 까마수트라>나도 때론...>즐거운 사라

 * 작품으로서의 가치면: 즐거운 사라> 까마수트라>나도 때론...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나는 건 없지만 <즐거운 사라>를 읽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즐거움이었다. 책이란 아무리 극단적으로 흘러도 그저 책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책 한 권 읽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나,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을 쓴 작가가 대단하게 보였다. 어쩌려고...결국 마광수는 이 책 때문에 인생이 꼬였고 외롭게 죽었다. 이 책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래봐야 까마수트라의 적나라함에는 비교도 안 되는 그저 한 인간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인데. 까마수트라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세계적인 책이 되었건만 대한민국의 야한 작가는 감옥까지 가야하는.....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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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꾸준한 노력으로 체중이 6kg정도 빠졌다. 우선 평생을 트레이드마크처럼 지녀왔던 통통함이 얼마간 사라져버렸다. 얼굴이야 원래 큰 사이즈가 작아질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몸은 제법 가벼워졌다. 심지어 맨바닥에 앉으면 엉덩이 뼈가 아플 정도로 그 푸짐하던 엉덩이살도 빠졌다. 전에는 상상해볼 수도 없는 변화를 맞았다. 진정한 의미의 상전벽해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아프다. 통증이 낫기는커녕 조금씩 강도와 폭을 넓히고 있다. 어제 아픈 곳이 더 아프고 안 아프던 곳도 덩달아 아파온다. 몸은 아프다고 아우성치지만 다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병원으로 돌아가긴 싫고, 내 몸의 주인이 되어 이러저러한 방법을 강구해보지만.....길이 더디고 멀다. 마음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책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읽은 책.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어서 언젠가는 읽으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직장의 '왕언니'가 선물로 주었다.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고....구구절절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인데 극단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왜 건강관련 프로그램에서 꼭 자막으로 뜨는 구절이 있잖은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체험'일 뿐일 수 있다는. 그러나 이 책은 개인적인 체험보다는 개인적인 소소한 감상과 사유가 책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자연을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의 자연 예찬, 일상과 의학적인 소견들이 마구 섞여있다. 낙엽더미에서 도토리 줍듯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걸러내야 했다. 눈에 체를 달고 읽어야 할 듯...

 

 

 

 

 

 

 

 

 

 

 

 

 

 

 

 

 이 책의 저자는 양의로서 흔치않은 길을 걷고 있는 분이라 진정성이 느껴지나, 이 자연치유의 길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환자를 일컫는 영단어 patient 를 말 그대로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이 책을 읽어도 통증을 가라앉힐 손쉬운 방법은 열리지 않는다, 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또다시 읽게 되는.

 

 

 

 

 

 

 

 

 

 

 

 

 

 

 

 

 

몹시 아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얻는다. 책의 서두는 구절구절이 밑줄긋기감이다.

 

(이하 인용문)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인정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질병은 삶을 위협하지만 살아갈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충만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다만 내게 일어나고 있던 일이 조금이라도 인정받기를 원했다./질병은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얼마쯤 읽다가 다시 내 조급증이 발동했다. 중간부분부터 성큼성큼 읽다가, 끝부분에서 한차례 더 엿보다가 책을 덮고 말았다.

 

 

아프다고 징징거리느니 동네라도 한 바퀴 돌다와야겠다. 오후에 온다던 남편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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