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기, 가 궁금해서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그저 그렇다. 내가 직접 살아보지 않는 한 대리만족 따위로 만족할 수 없나보다.

 

때론 한 문장으로 배가 부른 날이 있는데, 이 책에 있는 다음의 문장이 그렇다. 

 

   파월 북스의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그리고 D.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이들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그들 모두 자가 출판을 했습니다.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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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데생 - 사코 게이스케의 여행
노로 쿠니노부 지음, 송태욱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노로 구니노보(1937~1980)라는 낯선 작가의 소설. 어쩌다 무료 일본영화를 접할 때의 기대감, 딱 그만큼의 기대를 안고 읽었다. 어차피 빌린 책, 읽다말면 그뿐, 그랬는데 끝까지 읽었다.

 

고서점 주인인 스물여섯 살의 게이스케, 책을 매개로 한 그의 소소한 여행이 이 책의 내용이다. 시시한 이야기로군, 하면서 읽다보면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약간의 아쉬움 같은 여운까지 남을 줄이야. 긴 겨울밤, 난롯가에 앉아서 읽는 듯한 고졸한 외로움 같은 소설. 좋다.

 

 

오후 세 시까지 게이스케는 교토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헉슬리가 교토의 거리를 "쇠퇴한 광산 마을 같다"고 평한 것은 언제쯤의 일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로 같은 도쿄의 거리에 익숙한 케이스케에게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구획된 교토의 거리는 늘 그렇듯이 기분 좋은 질서감을 동반한 자극을 주었다. '이런 거리에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아'라고 게이스케는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교토 거리.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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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오후, 두세 시간 동안 동네 도서관에 다녀왔더니 보일러에 문제가 생겼다. '점검'하라는 글자가 무정하게도 계속 깜박거린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전자레인지에 행주를 데우는 둥 뜨거운 물 끓이는 둥 드라이어로 보일러 곳곳에 온풍을 불어넣어주는 둥 온갖 정성들였건만 요지부동이다. 이게 마지막이다 싶어 전기코드를 뽑았다 다시 꽂았더니 '팡'하고 보일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외출을 자제하고 온종일 보일러를 위로했다. 혼자뒀다고 또 얼어버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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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8-01-2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에요~ 추운날 보일러가 말썽이면 진짜 막막하죠~~^^

nama 2018-01-28 08:25   좋아요 0 | URL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정말 추운 날씨. 설마 이러다 지구가 망하진 않겠지요.^^

서니데이 2018-01-2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전기요도 고장인 줄 알았는데 플러그를 다시 꽂았더니 작동해요.
날씨가 매일 많이 추워요.
nama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nama 2018-01-28 08:28   좋아요 1 | URL
컴퓨터 작동이 시원찮을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듯 전기제품도 때로 처음부터 시작하면 말을 들어요.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감기 조심하시구요.~~
 
세상 끝 천 개의 얼굴 - 아마존에서 티베트까지, 인류 지혜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40년의 여행
웨이드 데이비스 글.사진, 김훈 옮김 / 다빈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엔 꼼꼼하게 읽다가 중반부터는 초고속으로 책장을 넒겼다. 흥미는 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는 행위는 무의미해 보였다. 어떤 책의 효용을 따지게 되면 이미 정이 식어버린 연인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것도 괜찮다. 독서는 일단 즐거워야 되니까.

 

읽기를 도중하차했으나 이 책은 대단한 책이고 저자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단지 내 그릇이 작아 소화시키지 못할 뿐이다. 어떤 책인지 옮긴이의 말을 적어본다.

 

   이 책은 인류학자·민속식물학자·민족지학자·시인·모험적 여행자·뛰어난 사진작가를 겸한 웨이드 데이비스의 어린 시절 일화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의 온갖 토착 문화들을 탐방하고, 조사하고, 연구하고, 공감하고, 행동해온 모든 역사를 망라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리알, 코기, 와오라니, 바라사나, 프난, 이누이트, 티베트, 아이티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토착 사회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또 그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그런 고통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공하기도 한 역사까지 등장한다.

 

그냥 흥미로 읽기에는 좀 과분한 책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이어질 것 같지도 않다. 나중에 도움이 될까 싶은 내용이 있다면 남미 안데스 지역 얘기 정도. 언젠가 남미를 여행한다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 이런 범상치 않은 저자의 글을 조금 접해봤다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오늘날에도 안데스 지역 일대에서는 거리를 측정할 때 마일이나 킬로미터가 아니라 코카 일을 씹는 동안 가는 거리에 해당하는 코카츄(coca chew)를 쓴다. 루나Runa족 사람들이 만날 때는 악수를 하는 게 아니라 코카 잎을 교환한다. 점쟁이들은 천에 뿌려진 코카 잎들이 이루는 모양이나 코카 잎의 엽맥 모양을 통해서 미래의 일을 점친다. 그런 기술은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

 

         (중략)

 

   사람들은 길에서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 세 장의 코카 잎이 완벽한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을 서로 교환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푸, 곧 산신 꼭으로 돌아서서 그 이파리들을 입에 물고 가볍게 불어서 날린다. 그런 행위는 코카의 정수에 해당하는 그것을 대지에, 공동체에, 성소들에, 조상들의 영혼에 되돌려주는 일종의 기원 의식이다. 그렇게 코카 잎을 교환하는 행위는 사회적 제스처요, 인간관계를 인정하는 한 방식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공부하고, 행동하는 저자가 몹시 부러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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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러니까 어언 30여 년 만에, 고요한 마음으로 책 두 권을 읽었다. 쉽게 말하면 백수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는 얘기. 두 권의 책을 두 도서관에서 각각 빌리는 행위조차도 백수스러웠다.

 

 

 

 

 

 

 

 

 

 

 

 

 

 

대학 교수의 안식년 1년 중 6개월 간의 런던생활기. 이국 땅에서 홀로 밥 하고, 빨래하고, 음악 듣고, 책 읽으며 써내려간 일기 형식의 글.

 

 

 

 

 

 

 

 

 

 

 

 

 

 

 

작가 김보통.

2009년 입사

2013년 퇴사

2013년 만화가 전업

2015년 수필가 겸업

2017년 아직 불행하지 않음

 

'회사를 벗어나 맞이했던 막연함에 대한 이야기.'

 

 

위의 두 책을 오락가락하면서 읽으니 오전에는 교수가 되고, 오후에는 백수가 되는 묘한 기분에 젖었다. 책은 그냥 읽으면 되는데 왜 꼭 자신을 이입해서 읽게 되는 건지....이 또한 백수스럽다. 백수가 될 날이 머지 않아서일 거다. 이 두 책을 억지로 연관시켜 이야기하기는 좀 너무 아주 억지스럽다. 다만, 백수의 심정으로 읽힌 구절이 있어 옮겨본다.

 

그러나 지식인임을 자처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안락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유혹,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회피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유혹, 혹은 온건하고 균형 잡힌 사람 소리 들으면서 살고 싶은 유혹, 나의 지식과 인맥 등에 적당히 기대서 명성이나 쌓고 미시권력이나 누리며 살다 가고 싶은 유혹에 늘 시달리면서 산다.(중략)

 

썩지 않으면서 이대로 조금씩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내면 산책자의 시간>에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막바로 취업한 나는 사실 백수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퇴사하고 사회에 방치되었을 때의 느낌이란,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자격 미달의 불량품이 된 것만 같았다. 어느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고 신경쓰지 않았다. 알아서 어디론가 사라져줬으면 싶은 눈길로 바라볼 뿐.

   마치 붕어똥이 된 기분이었다. 밀려나온 똥 주제에 쉽게 떨어지지 않고 달랑달랑 붙어 있다가, 결국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고 꼴 보기 싫게 어항 속을 둥둥 떠다니는 붕어똥.

                                          -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서

 

 

쓰다보니 이제 정리가 된다. <내면 산책자의 시간>은 두뇌형 백수,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실존형 백수. 나는 물론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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