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나는 홍신자에 홀딱 빠져 있었다.
그 당시 <자유를 위한 변명>만큼 온몸으로 읽은 책도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강렬했다. 감히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라는 염원 같은 것도 마음 속 깊이 품었을 지도 모른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홍신자의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더니 자연스레 황병기의 가야금 소리도 알게 되었다.
밤 늦은 시간, 홀로, LP판으로 나온 <미궁>을 턴테이블에 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숨이 막힐 지졍이었다. 이건 노래도 아니고 연주도 아닌 접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넋두리라고 생각했다. 원초적인, 음악 이전의 소리였다. 그 후 cd가 나와서, 이국의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으나 글쎄, 제대로 감상했을라나 모르겠다.
이것도 구입했으나 끝내 마음 속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이 책은 그냥 밋밋했다. 한 세상 자기 길을 잘 찾아간 사람의 소소한 얘기 같은 거여서 큰 울림 같은 것은 없었다. 손자 자랑 따위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평생을 무탈하게 잘 살아온 사람의 얘기는 큰 감동을 주지 않는다고나 할까. 하여튼.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간 황병기 님,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