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 천년, 탄금 60년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황병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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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0년대 초반, 무용가 홍신자 책을 읽다가 황병기라는 분의 <미궁>을 듣게 되었다. 전율이었다. 점잖고 선비같이 깔끔하게 생기신 분이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의 가야금 연주곡을 cd로 들으며 마음을 달래곤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분이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점은, 참 평탄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구나, 라는 것이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다. 나름 노력을 많이 기울였겠지만 시대가 주는 행운의 덕을 누리지 않았나 싶다.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음악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분의 cd 한 장 더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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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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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통령이 되기 전에 출간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에세이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고백 에세이다. 인간적인 결점이나 후회 같은 것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여성관을 피력한 부분을 읽다가는 배꼽을 잡고 한참동안 웃고 또 웃었다. 우리네 오빠 같은 분이었구나, 이분은...다음 순간 어느 새 눈물이 고인다.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침 한겨레신문(2009.6.6일자)에 서경식의 칼럼이 눈에 띈다. 그대로 옮겨 적는다. 

   
  노무현씨는 호찌민만큼 청빈하진 않았고 다른 많은 정치지도자들만큼 낯 두껍지도 않았다. 그가 훌륭한 것은 자신의 실책과 약점을 인정할 줄 아는 정직성의 소유자라는 점이리라. 내가 그에게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청빈과 도덕성은 빈자나 약자가 부자나 강자와 싸울 때 필수불가결한 무기다.

 
   
<빈자의 무기, 그리고 노무현>이 그 칼럼의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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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픈 아시안
이시이 코타 지음, 노희운 옮김 / 도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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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전히 몸으로 겪으며 써내려간 글은 거칠지만 울림이 크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동남아시아나 인도, 네팔 등을 여행할 때 늘 맞닥뜨리게 되는 어두운 세계- 거지, 거지로 몰락한 장애인, 전쟁으로 인한 상이군인, 마약에 빠진 사람들. 어린이 유괴와 렌트차일드 등등...-를 직접 두 발로 걷고 그들과의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알아낸 비참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몇번 씩을 갔어도 차마 그 세계에 눈 한번을 줄 수 없어 애써 외면하곤했던 그 비참한 세계를 이렇게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세상을 보겠노라고 여기저기 싸다니지만 도대체 내가 본 것은 무엇이며, 제대로 본 것은 무엇인가, 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자의 가벼운 흥분과 몸놀림 속에서 이국적인 풍물에 대한 보잘것 없는 호기심과 얕은 지식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는지...따져볼라치면 마음이 착잡해지고 부끄러워진다.  

난 도대체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인도만해도 그렇다. 뭄바이의 거지들을 피할 줄만 알았지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렴풋이 들은 얘기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거지들에게 렌트를 해주어 돈을 착취하고, 이후 이 렌트용 어린이가 다섯 살이 되면 팔이나 다리를 잘라서 불구로 만들어놓고는 거지 행각을 시키는 인도의 무서운 마피아 얘기에는 소름이 끼쳤다. 차마 이 정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인도 영화에서 보는 섬뜩한 폭력성이 왜곡이 아님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요즈음에는 접하는 책 마다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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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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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게 돈이 많이 있다면 조그마한 섬을 통째로 하나 사서 나의 왕국을 만들면 좋겠다는 꿈. 나는 한때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나간 나의 꿈이 떠올랐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쩌다 놀러 다니곤 했던 섬은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물이 아쉬웠다. 야영이라도 하게 되면 제대로 씻을 수 없어서 이내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섬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당연히 섬에서의 추억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다. 부족함과 불편을 참아낼 엄두도 못내면서 섬을 하나 사겠다니 도대체 이 무슨 황당한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렇게 비현실적인 꿈 속을 거닐 때, 이 글을 쓴 강제윤이라는 분은 직접 두 발로 섬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 있는 4400여 개의 섬 중에 유인도 500여 개. 10년 동안 이 유인도를 모두 걸어갈 예정이라한다. 지금까지 그는 100여 개의 섬을 걸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간의 기록이다. 

여행이 일반화된 시대라 몇십 개국 여행은 이제 얘깃거리도 못되는 풍요의 세상에서 그의 고독한 섬 걷기 여행 기록은 나즈막하면서도 진지하게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새로운 곳을 밟았다는 흥분이나 남이 가보지 못한 곳에 갔다는 자랑 같은 것은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행기나 기행문과는 거리가 멀다. 

섬이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섬을 지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노인들뿐이다.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생애의 스승이고 나침반이라고 저자는 쓸쓸하게 말한다.'세계의 어느  길에서도 나는 이 나라 섬에서 만난 노인들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104) 강한 군사 집단이 이웃 나라를 침략하여 노략질을 하고 땅을 빼앗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해적질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가들은 이를 정복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기도 하지만 해양 왕국의 역사가 바로 해적의 역사다. 먼저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운 해적 두목은 왕이 되고 뒤에 나타난 세력은 해적으로 이름이 남겨졌을 뿐이다.....중국에서는 '관리가 되려면 먼저 도적의 수령이 되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 그 격언은 여전히 이 시대 이 땅에서까지 통용된다...이 땅의 정치인들이 나라를 거덜 내는 도적질만을 일삼는 것은 그들의 뿌리가 도적의 뿌리와 같기 때문이다. 

(199)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후예다. 우리는 모두가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삶이여! 

(210) 기도란 무엇일까? 내 안에 신이 있고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기도란 내 안의 부처와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하는 것도 나고 소망을 이루어 주는 것도 나다. 그러므로 기도처에서의 기도는 소망을 이루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인간 정신의 높은 곳으로 이끄는 고귀한 행위다. 정신의 고양을 통해 스스로 신과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야 나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기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것도 기도라 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쓰레기 같은 못된 것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어서 한 편으로는 아픈 책이다. 그러나 더욱 아파할 일이다.  

우리 나라의 섬을 다 둘러본 저자의 목소리를 언젠가 다시 듣고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프다면 나는 분명 세상을 잘못 살았을테지만.... 

사실이 너무 잔혹하지 않고 꿈이 너무 비현실적이 아닌 나라에서 살았으면...버나스 쇼가 했다는 이 말에 다시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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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정생 유언장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2. 장영희 유서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3. 노무현 유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I've been in debt to too many people.

The suffering caused by me is too great to too many people.

I can't imagine the countless agonies down the road.

The rest of my life would only be a burden for others.

I can't do anything because I'm not healthy.

I can't read books, nor can I write.

 

Don't be too sad.

Isn't life and death all part of nature?

Don't be sorry.

Don't blame anybody.

It's fate. 
 


Please cremate me.

And please leave a small tombstone near home.

I've long thought about that.  

 


  

 

4. 시인 오규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죽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쓴 시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5. 하이타니 겐지로 유언장

 

가깝게 지내던 분들께

아무래도 명이 다할 때가 가까워진 듯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내 마음을 전해 두려 합니다.

들판의 나비나 잠자리처럼 살다 죽고 싶습니다.

삶은 그렇지 못했지만 죽음은 자연에 맡기고 싶습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무집착의 사상,

다시 말해서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배워 온 그대로 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삶에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조금은 있을지도).

죽음을 무턱대고 멀리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죽음도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이 나는 더없이 좋습니다.

나의 단 한 가지 바람이라면, 머잖아 찾아올 나의 죽음을

그런 마음으로 받아들여 준다면 고맙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 덧붙이면, 어떤 혹독한 현실에서든 자신과 타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있으며 희망을 잃은 채 이 시간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한 발 먼저 갑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식이나 추모회 등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럼 언젠가 저세상에서 만나 뵙지요.

 


2006년 11월 23일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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