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저자 사인 시간에 안도현시인의 뒤에 섰더니 우리학교도서관 학부모봉사단 어머니께서 찍어주셨다. 모처럼 귀엽게 나온 사진인데 공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너와 나

 

                             안도현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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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7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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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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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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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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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11-1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님..저도 안타까워요 ^^

nama 2015-11-17 10:05   좋아요 0 | URL
카메라 실수로 잘 나온 사진인데요....아깝...
 

지난 일주일 동안 큰 일을 치렀습니다.

 

월요일(11월 9일)

가족과 떨어져 낯선 사람들의 간병을 받아가며 4년간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별세하셨습니다. 3학년 학기말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는데 3교시 감독을 끝내고 잠시 자리에 돌아와보니 전화가 여러통 와있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좀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였지요. 잠시 우왕좌왕하다 4교시 시험감독에 들어갔습니다. 소식을 들은 동료가 대신 감독을 해주겠다는 걸 사양했습니다. 눈물은 났지만 이미 어머니의 죽음은 예견된 사실이라서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은 최대한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일만 남았는데 한 시간 정도 일찍 서두른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지요.

 

특별휴가를 신청하는 일 등 번거로운 일을 처리하고 학교문을 나서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생협에 가서 달걀과 쌀식빵과 냉동 치킨크로켓을 사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근처에서 내려 농협에 들러 얼마간의 돈을 인출했습니다. 수능을 치러야 할 딸을 위해 며칠간의 일용할 양식과 수능 당일의 도시락과 비상금을 준비했습니다.

 

얼만 전에 준비했던 어머니의 영정을 들고 남편과 함께 화성시에 있는 장례식장에 당도해보니 큰오빠와 새언니가 얼추 준비를 해놓고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20년 전 얼굴이 찍힌 영정을 두고 좀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사진은 제 결혼식 때 어머니와 제가 얼굴을 나란히 하고 찍은 것인데 어머니의 은은한 미소가 무척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효도다운 효도를 한 날이었기에 저에게는 의미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작은 오빠는 장성한 조카들에 이끌려 택시에 태워줘 오빠가 살고 있는 집으로 보내진 후여서 식장의 분위기는 더욱 침울하고 무거웠습니다. 저와 한 살 터울인 미혼의 작은 오빠는 여직껏 직장 생활과는 거리가 먼 고립적인 생활을 해와서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곤 합니다.

 

밤 늦게까지 큰오빠 내외가 다니는 성당에서 많은 분들들이 와주셔서 연도를 바쳐주셨고 제 직장 동료들도 먼 길을 마다않고 와주셔서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화요일(11월10일)

오전 5시 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2시쯤에 다시 왔다는 작은 오빠는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잠시후 잠이 깬 작은 오빠는 아직도 만취 상태로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특유의 남 속 뒤집는 말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작은 오빠의 주정을 받아주는 사이 서울에서 작은 아버지와 사촌형제들이 도착했습니다. 10년 만에 뵙는 작은 아버지 앞에서 작은 오빠가 또다시 추태를 부리기 시작하자 작은 아버지는 몹시 불쾌해하셨고 저희 가족 역시 속이 뒤집히기 시작해서 결국 건장한 두 조카가 제 삼촌을 달래가며 위협하며 억지로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습니다.

 

제일 마지막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작은 오빠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요.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엄마의 오줌 똥을 받아봤냐? 그걸 생각하면 기분이 처참해진단 말야."  작은 오빠의 도발적인 언어와 행태를 보고 서른 살이 넘은 두 조카가 그렇다고 제 삼촌을 미워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촌을 이해는 하는데 삼촌의 행동 방식이 틀렸을 뿐'이라고 나름 깊은 생각을 내보입니다.

 

오늘은 조문객들이 참 많이도 오셨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조문객을 제대로 대접도 못하고 대화도 몇마디 나누지 못한 채 초라하게 차려진 상차림으로 대신했습니다. 그중에는 이십여 년만에 만나는 고향분들도 계셨는데 역시 몇마디 나누지 못하고 고맙다는 인사말도 제대로 못한 채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섭섭하셨을 텐데 나중에라도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입관식이 있는 날입니다. 30여 년 전에 어머니께서 미리 만들어놓으신 수의를 입고 계신 어머니를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뵙는 날입니다. 성당에서 오신 신도분들의 기도소리가 든든한 힘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눈물은 흘렀지만 담담했습니다. 2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와는 좀 달랐습니다. 자발적 존엄사를 선택하신 아버지의 죽음은 저에게 청천벽력 이상이었습니다. 성당에서는 장례미사조차도 거부당했었지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때 보여주었던 카톨릭 단체의 애도를 보던 장면이 지금도 저를 서럽게합니다. 죽음이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인데 이 인간들의 종교라는 것은 편협하고도 편협합니다. 종교와 화해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한평생 일꾼처럼 살아오신 저희 어머니는 저희도 모자라서 손주들 대학 등록금까지 손수 마련해주셨습니다만 언제가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수금하느라고 여름에 한창 더울 때도 아이스케키 하나 못 사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는 게 참 억울해." 이 말씀을 옮기고 있자니 또 눈물이 고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게 죄송스러워 다시 눈물이 흐릅니다.

 

수요일(11월 11일)

오전 9시에 발인식이 있었습니다. 미리 부탁한 검정색 리무진에 관을 안치하고 남편과 제가 탑승했습니다. 영정은 사위가 드는 것이라하여 남편이 내내 어머니 영정을 가슴에 안고 있었지요. 25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저는 미혼이었고 제일 맏이인 언니는 병원에 있는 환자라서 우리 아버지에겐 사위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보다 두 살 아래인 사촌여동생의 남편이 아버지 영정을 모셨습니다. 허, 무슨 이런 관습이 있답디까? 사위가 없으면 그만이지 없는 사위를 딴데서 빌려와서라도 영정을 모셔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화가 납니다. 어머니 영정 만큼은 그래도 사위 손에 맡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나 또한 어이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투덜거렸더니 남편이 이렇게 해석합니다. "장례식 자체가 유교에서 비롯된 가부장적인 제도일 뿐이야. 상주의 팔에 다는 완장에도 계급을 적용한 것이고. 사위가 영정을 드는 것은 사위도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행위야."라고.

 

장지는 아버지를 모신 천주교공원묘지로 어머니를 위해 이미 가묘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가묘라는 것도 상당히 잔인합니다. 25년 전 아버지 장례 때 만든 것이니 그동안 이 가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까요? 끊임없이 죽음을 떠올리시지 않았을까요? 살아계신 분에게 참으로 잔인한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걸 지적한 사람은 역시 우리 말썽꾸러기 작은 오빠였지요. 작은 오빠는 날카로운 지적을 잘 합니다만 자신에게는 무한히 너그러운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목요일(11월 12일)

지난 주 텔레비전에서 기상예보를 보는데 이렇게 씌어 있더군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대입수능일 금요일 토요일..' 그 대입수능일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는데 안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는 딸아이를 깨울세라 안방화장실을 두고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딸아이가 수능을 치르는 날입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어서 재빨리 모드를 바꿔야 하는 날이지요.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불쌍하십니다. 아무리 '하나가 떠나면 하나가 도착한다. 하나가 도착하면 하나가 떠난다.(시인 권혁웅의 칼럼에서)라고 하지만 미처 애도할 틈도 없이 딸아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니 우리 어머니는 지지리 복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딸을 위한 걱정은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딸아이가 공부한만큼만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뿐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학교 근처에서 서성거리지도 않고 촛불 하나 켜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부터 재수에 들어간 딸은 일요일에도 쉼 없이 공부에 정진했습니다. "공부할만큼은 다 했어. 더 이상 할 수 없어."라는 딸한테 그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조용히 지켜볼 뿐입니다만 마음만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부모로 산다는 건 고역입니다. 시스템을 따르자니 화가 나고 그렇다고 시스템을 벗어날 용기도 없습니다. 무력한 인간을 만드는 곳입니다.

 

금요일(11월 13일)

삼우제가 있는 날. 수능이 끝나 한층 가벼워진 딸을 데리고 큰 오빠가 사는 동네의 성당을 가기 위해 전철에 오릅니다. 가는 내내 머리가 자꾸 옆으로 떨어집니다. 잠이 쏟아집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새 모양을 갖춘 어머니의 묘 앞에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절을 합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작은 오빠도 말 없이 절을 올립니다. 작은 오빠는, 지난 발인식 땐 장례미사고 뭐고 다 빠지고 직접 산소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머니관을 매장할 때 조용히 한 삽 떠서 어머니관에 뿌렸습니다. 다른 식구들이 한 삽씩 흙을 붓는 것을 바라보는 것보다 작은 오빠를 바라보는 것이 왠지 가슴이 짠해집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지도 못한 채 병원에 입원중인 언니는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삼우제를 급하게 끝내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병원 근처의 식당에 가는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재작년 봄 어머니 생신 때, 작년 봄 어머니 생신 때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더랬습니다. 와중에도 수능을 끝낸 딸아이를 사촌 오빠들이 챙겨주는 모습이 귀엽고 정겹습니다. 오빠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딸아이는 어려워하지만 따라주는 맥주를 벌컥벌컥 잘도 마십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아이가 다니던 학원 근처에 있는 치과에 들렀습니다. 이빨이 썩어가도 치과에 갈 시간이 없어 참고 참다가 하는 수 없이 수능 며칠 앞두고 다니기 시작한 병원입니다. 왼쪽 오른쪽 썩은 이빨이 한두 개가 아니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겨우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이번엔 휴대폰 사러가자고 합니다. 제딴엔 공부한다고 2년 넘게 사용한 2G폰을 이제는 새 스마트폰으로 바꿔줄 때가 온 것입니다.

 

시인의 말이 맞나봅니다. '하나가 떠나면 하나가 도착한다. 하나가 도착하면 하나가 떠난다.'

 

"엄마, 고마워요." 딸의 말인지, 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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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11-1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으셨군요...
이젠 좀 다 내려놓으시고, 잠을 푹 주무시면 좋겠어요.
삼가 nama님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nama 2015-11-14 14: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큰 일들을 연속으로 겪으니 오히려 중화되는 기분이 들어요. 묘합니다.

2015-11-14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4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헤르미온느 2015-11-14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함께 기도해요!

nama 2015-11-14 21:48   좋아요 0 | URL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이런 가족 얘기하는 거 싫어하셨어요. 제가 좀 그래요.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hnine 2015-11-1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오늘에서야 이 글을 읽었네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는게 참 억울해 라고 하신 어머님 말씀이 제 가슴을 치고 갑니다.
제 아버지 돌아가셨을때도 제 남편이 영정을 안고 위패는 제 아들아이가 모셨지요.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인데, 날이 추우면 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겨울이 오면 겨울이 와서 자꾸 생각나고 눈물납니다. nama님 심정이 어떠시겠어요. 그냥 같이 울어드리고 싶네요.

nama 2015-11-17 07:49   좋아요 0 | URL
집안의 경제를 일으키고 후손들을 끊임없이 챙기시느라 당신은 일꾼처럼 사시고, 자신을 위해서는 조그마한 낭비도 허락지 않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 고생도 심하셨고, 아픈 자식은 평생 마음의 십자가였지요. 자식들은 부모의 인간적인 약점을 들춰내곤 했지만, 당신은 자식들의 못난 점을 입에 담지 않으셨지요. 아침부터 눈물이 고이는군요.
감사합니다.
 

매년 연말이면 이런저런 달력을 얻을 때도 있고 얻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주거래 은행에서는 해마다 문자를 보내어 달력을 수령해가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어디 직장이란 곳이 '하찮은' 달력 하나 얻으려고 쉽게 자리를 이탈할 수 있는 곳인가. 감히 7시간의 무단 이석 행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정신이 나갔거나 짤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어찌어찌해서 겨우 얻은 달력에 정을 붙여갈 즈음이면 일 년이 다 갔을 때다. 처음부터 마음을 확 사로잡는 그림으로 시작하면 안될까? 그래서 저질렀다. 1만 6천 원이 넘는 거금이다. 이 작은 사치 덕분에 내년이 성큼 다가와서 나이 한 살 더 먹는다쳐도 별로 섭섭할 것 같지 않다. 단, 지난 전시회 때 직접 내 눈으로 본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지만 사진으로 접하는 건 좀 감흥이 떨어지는 일이긴 하다. 뭐, 그때의 감흥을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달력이 담긴 저 택배상자는 처음 보는 알라딘택배 상자이다. 예전의 LP판을 넣을 수 있는 크기인데 LP판 보다 피자를 넣으면 어울릴 성싶다.

 

 

달력 뒷면. 이런 그림들이 실려 있다.

 

 

어? 빨간 날이 없다. 한 달 내내 경건하게 살아야할 듯. 당연 음력표시도 없다. 표시된 거라곤, Full Moon, New Moon, First Quarter, Last Quarter, 외국의 주요 명절 정도. 각종 기념일을 무시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 한마디로 '내 맘대로 달력'이다.

 

 

 

달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몇 년 째 못버리고 주방 한쪽에 걸어놓은 달력이 있다.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그 유명한 차마고도 일대를 한 지역씩 톺아가며 만든 달력이다. 위 그림은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장(여강)이다. 지금도 저 그림을 보면 집과 집 사이를 흐르던 작은 수로들이 그리워진다. 다시 리장에 간다면 저 달력을 사오리라. 저 달력 때문에라도 리장에 다시 가야할 것 같다.

 

 

달력으로 잠시 사치스런 생각을 해봤다.

 

 

달력을 일찍 구매한 이유.....내 나이 먹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런 시절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염원에서다. 염원이다. 그리고 내년에 대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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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님의 손글씨를 보고 나도 손글씨가 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우리반 생활기록부(졸업 후 50년간 보관함)를 기록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생수병 뚜껑 따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다. 이러니 앞으로 손글씨를 쓸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터이다. 손글씨를 쓴 적이 언제던가. 몇 자 써보는 것도 참 낯설다.

 

 

-손글씨에 대한 추억

중학교에 들어가니 모든 공책 필기는 잉크와 펜을 사용해야 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잉크병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였고, 책상속에 넣어두어도 자칫 무심한 손짓에 바닥에 떨어지거나 잉크가 쏟아지곤 했다. 쓰러진 잉크병에서 흘러나온 잉크는 공책에 교복에 교과서에 퍼런 자국을 남기곤 했다. 천방지축인 중학생들에게 왜 잉크와 펜을 사용하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혹독한 훈련 덕분에 글씨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잉크를 묻힌 펜촉으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어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중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힘들게 했던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공책필기도 제대로 해야 했으니, 제목, 날짜를 기록해야 하는 건 물론 공책이란 공간의 적절한 배분, 시각적인 가독성도 고려해야 했다. 가히 종합 예술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우리 세대처럼 손글씨를 강요하지 않는다. 공책 활용 방법도 가르치지 않는다. 공책이란 그저 숙제할 때나 필요한 정도여서 공책 없이 책만 달랑 들고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숙제할 일이 생기면 다른 과목 공책에 쓰거나 친구의 공책에서 한 장 찢어내 성의없이 내용만 채운다. 아,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공책 제대로 안 쓴다고 지도할 여력도 없다. 몇 년 전만해도 일제히 공책을 걷어서 숙제검사를 하곤 했는데 이젠 그 수고로운 행위도 잘 하지 않는다. 대신 ppt 제작 같은 것을 시키거나 그냥 암기를 시킨다. 그나마 논술쓰기를 하니 손글씨를 무시하지는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앞으로 30년 쯤 후에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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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밑에 적혀 있는 설명 .... '아쟁 비슷한 악기...' 를 바로잡고 싶어서 올린다.

위 사진의 악기는 아쟁이 아니라 해금 비슷한 악기이다. 아시아 일대에서는 해금 비슷한 악기가 많은데, 중국에서는 얼후, 인도네사아에서는 레밥, 캄보디아에서는 트로우, 타이에서는 소우, 라오스에서는 소이라고 부른단다. 홍콩이나 베트남, 대만, 라오스 등을 여행하다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매우 대중적인 '아시아의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라오스에서 거리의 걸인이 이 악기를 켜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책, 여행보다는 독서에 더 치중한 책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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