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히는 책을 오래도 잡고 있었다. 서서히 기력이 회복되는 기분이 든다.
여행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책에 가깝다. 읽어야 할 책이 눈앞에 쌓여가지만 행복하다.
헤어지기 아쉬워 몇 자 옮긴다.
집이란 신발끈을 묶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여행은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꿈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던 땅들이 마침내 눈과 코, 발바닥 앞에 벗겨질 때 그 만큼의 감격과 함께 꼭 그 만큼의 상실감이 따라온다. 꿈꾸던 곳을 디딘 순간, 꿈이 하나둘 가슴팍 어디가에서 허무하게 빠져나간다. 처음부터 꿈 따위는 갖고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일지도 모른다. 티티카카는 훌륭했지만 그곳을 떠날 때 엄습한 알 수 없는 섭섭함, 상실감은 대책 없이 쓸쓸했다.
돈과 시간이 아까우니 그냥 지나쳐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그때 문득 언젠가 들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라는 말이 떠올랐다. 행동에 대한 후회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거나 반성하며 극복이 가능하지만, 해보지 않은 행동에 대해선 후회할 근거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후회가 더 오래도록 깊게 남는다고. 나는 나스카에 내렸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잠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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