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미국을 누비다
장원용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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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미국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왠지 미국식으로 살아온 것 같은 생각에(미군부대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음) 미국에 대한 동경 내지는 호기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지내왔다. 남들이 미국 여행을 들먹일 때 나는 늘 코웃음을 치며 그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여권과 돈만 있으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외국인데 유독 미국이라는 나라는 입국 조건이 까다롭고 비자 발급 받기가 어려운 나라로 사람에게 등급을 매겨 그네들 입맛대로 받아들이는 나라이다. '흥, 비자가 없어지면 그때나 한 번 갈까, 내 그런 나라에는 절대 안간다' 그랬는데 정말 비자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을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다. 예를 들면 전교조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순함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찌 내 눈과 그들의 눈은 이렇게나 다를까.....이런 모습을 나는 내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내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미국을 공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시각을 갖기 위한 내 나를의 노력이다. 출근하면 먼저 인터넷으로 미국발 뉴스를 본다. 영국발 뉴스도 보는데 (둘 다 청취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나마) 귀에 더 익숙한 건 영국 발음이다. (내 귀도 주인을 닮아 미국쪽을 거부하는지..) 그리고 미국 여행기도 기회가 닿으면 열심히 읽어준다. 홍은택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를 명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니 미국 관련 책은 별로 읽은 게 없다. 왜 그럴까? 궁금한 게 없기 때문? 미국 문화권 혹은 미국화된 문화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 평생을 옥죄고있다고 생각하는 영어 때문?

  미국에 관한 책은 그래서 일단 날을 세우고 보는 습성이 생겼다. 그러나 늘 읽지 않은 책을 쌓아두고 차일피일 미루는 고질적인 나의 안일한 독서 행태상 마음에도 없는 미국쪽 책을 그리 쉽게 집어들지는 못한다. 날을 세우고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미국 관련 책은 집어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 한가족의 미국 여행기는 요란스럽지도 않고 어께에 힘을 준 책도 아니어서 읽는 내내 유쾌했다. 미국이라면 늘 날을 세우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무리없이 볼 수 있는 책이고라고나 할까. 지은이의 소박한 심성이 곳곳에 드러나있어 마치 친구의 여행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낚싯대를 던지는 아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버지 잘 만나 참 복도 많은 놈이다!' 생각하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고 하는 지은이. 이 말은 내가 우리 딸아이에게 여행 때마다 써 먹는 멘트다. 

  여행기를 읽는 재미 중의 하나는 '낯섬'이 주는 묘한 끌어당김인데 미국 여행기에는 그 '낯섬'이 절대 부족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도시나 사람들 얘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하다.여기가 미국인가?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오공처럼 미국이라는 손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한 권의 부담없는 여행기를 읽고 소박한 독서의 즐거움이나 쓰려고 했는데 생각이 중구난방이다, 미국은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어려운 대상, 공부해야 할 대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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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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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김영갑. 직접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가 찍은 사진을 직접 본 적도 없으니 내가 이 분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이라는 분의 책을 읽다보니 사진 몇 점과 함께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그 사진에는 묘하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나는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그리고 지독하게 해나갔을 뿐이다. 외로운 길을 택한 것에도 나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보낸 것에도 역시 필요 이상의 의미 부여는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내 주위에는 독신으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언니가 그렇고 오빠도 그렇다. 물론 사정이야 다른 것이지만. 

외로운 예술가의 길 만이 고달프고 힘겨운 것인가. 10대의 자녀들을 남겨놓고 부부가 각기 제 갈 길을 간 사람들의 삶도 모질고 고달프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는 요즘 이런 사람들을 대하면서 선생이라는 단어가 품고있는 고전적인 가치 개념 같은 것은 개에게나 던져주자고 울부짖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불량 부모들의 뻔뻔함에 기가 차다가도 그들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보면 울컥 솟았던 분노도 수그러들곤한다. 누가 누구를....나도 알고 보면 불량 선생인 것을. 사는 것은 이래저래 만만치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기식대로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한 행복일 수 있다. 배부른 나는 그래서 배고픈 예술가의 길을 하염없는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한다. 나도 한 때 그런 길을 꿈꾸었기에...아직도 접지 못하는 꿈이 있다면 나도 마음껏 세상을 누벼보고 밤새워 글이나 그림에 빠져 몇날 며칠을 폐인처럼 지내보는 것...이 아닐런지.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애써 무시하고 잠재우고 있던 그리운 꿈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다 쓰러져가는 소금 창고 몇 채와 과거의 모습을 되살려 학습장으로 삼은 염전밭이 전부인 습지생태공원이 있다. 억새와 갈대, 이름모를 벼과 식물로 뒤덮인 벌판의 한 쪽 끝에 서서 바람에 온 몸을 맡기면 나는 간단하게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늘과 갈대밭이 전부인 그곳에서는 하늘이 하늘답게 무한히 넓게 느껴지고 땅은 나즈막히 엎드려 있어 땅에 붙어있는 인간의 왜소함이 비로소 제대로 파악되는 것이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한쪽으로 쏠리는 갈대밭의 장엄한 광경! 이 광경을 나는 김영갑의 사진에서 발견한다.  

외롭고 고독한 길. 그것은 바람을 찍고 바람을 살려내고 바람이 되어버린 자가 치러야 할 대가일지도 모른다. 

p.s  이 책을 읽으면서 문체의 맛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아 이상하다 싶었더니 구술로 쓰여진 책이란다. 어쩐지... 그래서 이 책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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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기사 제대로 읽는 법 - Health Literacy
김양중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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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네 보통  일상생활 중 제일 약한 부분이 무엇일까? 아마도 입시를 앞둔 자식 교육에 관한 일이나 평소 건강에 자신 없어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건강에 대한 이러저러한 정보가 아닐까 싶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보니 오히려 '아는 게 병'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을 때가 많다. 한마디로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갈수록 그렇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은 약간의 도움을 준다.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며 제대로 세상을 읽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원론적인 성격이 강하다보니 물론 내가 생각했던 만큼 시원한 해법을 얻을 수 있는 데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1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새로운 치료법은 일단 검증 되기 전의 치료법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의사에게 한 번 물어보자. " 방송에서 소개된 새 치료법이 기존 치료법보다 낫다는 근거가 있나요?" 

 p.125  "병원에만 가면 살 수 있다"....(암 환자의 경우) 사망 전 6개월과 3개월 안에 각각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8 퍼센트, 43.9퍼센트가 항암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33퍼센트, 23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심지어 우리나라 환자들은 사망하기 1개월 전에도 30.9퍼센트가 항암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역시 미국의 9퍼센트보다 3배 이상 높다....말기 암 환자는 현대 의학의 치료 방법으로는 생명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다. 연구진은 말기 암 환자에게 신체적 혹은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는 무의미한 치료보다 통증을 덜어주며 환자들이 남은 삶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잘 정리하고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죽음을 품위 있게 맞이할 수 있도고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을 통해 존엄사라고 하나. 품위있는 죽음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p.127 "왜 이리 늦게 왔습니까?"......윤리적인 의사라면 사실 질병 발견의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지 않는다. 책임을 다하는 의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환자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라면 적절한 조기 검진을 제도화하고, 위험성이 있다면 누구나 조기 검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p.147 새로운 의료기기와 약이 개발되고  출시될수록 새로운 질병도 늘어난다.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사용돼야 할 최첨단 의료기기와 약들이 제약회사와 병원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드시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곳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온갖 증상의 질병화가 심화되는 것이다.....거의 대부분의 언론은 구태여 의학 발달의 부정적인 측면까지 다루지 않는다. 주로 새 상품이 나온 것에 관심을 두고, 새 상품을 잘 소개하는 것에 주목하고, 그에 따른 폐해에는 일부러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한다.  

이 책을 사기 전에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게 이런 것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건강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접한다면 이 책은 별로 얻을 만한 게 없을 것 같다. 실망할 지도 모른다.  

기존의 관념들을 한 번 진지하게 따져보고,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기의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 그러나 속까지 시원해지지는 않는다. 답답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약발이 약한 책이다. 이미 믿지 않는 게 너무 많은데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이런 책으로 세상은 더 쓸쓸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비타민제를 열심히 복용하고 있고 먹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내 친구들을 위하여 내용을 옮겨본다. 

p.175 (2007년에 덴마크 코펜하겐대학병원 연구팀이 <미국의학협회>에 발표한 연구 결과) 몸에 좋은 줄만 알았던 비타민제가 오히려 수명을 짧게 한다고 한다...합성 비타민제가 사람의 수명 연장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심지어 비타민A, E,베타카로틴 등이 든 합성 비타민제를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빨리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수치를 보면 관련 비타민제를 모두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도가 5퍼센트 높았고, 비타민A만 먹은 경우에도 사망 위험도는 16퍼센트, 베타카로틴은 7퍼센트, 비타민E는 4퍼센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가장 많이 먹는 비타민 C는 효과도 없었지만 해로움도 나타나지 않았다...감기를 비롯해 다른 질병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결국 비타민C는 먹으나 안 먹으나 상관없는 셈이다...종합 비타민제가 사망률을 높이는 동시에 전립선암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비타민을)적은 양이라도 오래 먹으면 독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노인이나 알코올의존증 환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종합 비타민제 복용보다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연한 얘기다. 인류가 언제부터 약으로 버텨왔던가. 무릇 귀가 약한 내 친구들이여 그럴바에야 차라리 건강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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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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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167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교육이 없으면 사람은 더 훌륭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스승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제자를 대하듯이 경건하게 아이를 대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내가 독점해서 관리하고 있는 듯한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검정고시의 좋은 점을 얘기하고 학교에 안 다니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또 말했다는 김점선이라는 분. 선생인 나도 얼마 전 중학교 입학을 앞에 둔 딸아이에게 검정고시를 얘기한 적이 있어서 슬몃 웃음이 나왔다. 나도 흉내 하나는 잘내고 있구나,하고.

어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킬킬거리거나 시원하게 웃어가면서 재밌다고 입맛까지 다셔가며 읽으면서도 이 책의 저자가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에는 깜깜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가 아니었다면 아마 한 달 후 쯤 아니면 일 년 후 쯤 알게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사 온갖 뉴스를 내 나름으로 걸러서 듣는 내 지각력에 문제가 생겼나, 너무 거르다보니 모든 게 바람처럼 술술 새어버리기라도 하는건가. 

하여튼 잠시 이 책을 읽으며 통쾌하고 무지 행복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운명을 달리했다니 슬프다. <점선뎐>---- "장엄하게 죽기 위해서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p.390)고 했으니 이 분은 분명 장엄하게 생을 마감했으리라. 

p.151  내가 나의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저절로 기억할 만한 좋은 부분들은.....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도 힘들어하면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분의 비범한 점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식적이고 인습적인 온갖 부조리한 것에 맞서 평생을 당당하고 당차게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싶었다. 

p.226  내 몸에 '앎'이 생겨난 것은 내 몸이 정신과 일치한다는 증표다. 이제야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오랜 수양의 결과로 환갑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여기서 '앎'은 병명 '암'을 일컫는 말이다. 몸은 암에 걸렸어도 얼마나 담담하고 당당한가. 깨끗한 정신이다 싶다, 감히 흉내내기 힘든.... 

p.257  예술가는 개안을 위해 많은 경험을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개안을 하고 나서는 다시 욕심을 버리고 멍청해져야 한다고 그(화가 변종하)는 설명한다. 

이건 다름아닌 김점선 그분의 얘기로 읽어야한다. 

하나만 더 인용해본다. 

p267 궁극적으로 사람은,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버무려진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선과 악을 나누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선에 치우친 교육을 받는다. 선한 체하는 인간들과 글과 책을 늘 만난다. 구역질이 난다....그런 기저에서 사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악을 알지 않고서는 어떤 사소한 일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점잖은 척, 착한 척, 아름다운 척,....척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던 분의 책을 끝내 손에서 놓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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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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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꼼꼼할 수가.  

이렇게 철저하게 파고들 수가. 

호기심과 의욕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지독한 장인 정신 같은 게 느껴지는 책이다. 그간 인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단연 이 책을 따라올 만한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인도에 관한 책 열 권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아니면 인도를 한 열 번쯤 다녀온 것 같다고나 할까. 

세노 갓파라는 사람. 정말 지독한 사람이다.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술렁술렁 넘어가는 듯하면서도 할 말은 꼭 한다. 치밀하고 섬세한 그의 세밀화처럼 그의 글에도 정확성을 기하기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섣불리 감상에 젖거나 주관적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참으로 지독한 책이다. 지독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p.272 방갈로르에 있다는 우주연구소나 지역개발연구소의 연구도, 일본인이 생각하는 연구개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예를 들면 '소똥가스 발생 장치'나 '불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 굽는 법', '제자리 걸음 탈곡기'등, 처음엔 뭐 그런 걸 연구하나 싶었는데 그 연구에 인도 최고의 학자가 참가하고 정부도 진지하게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밖에서 어떻게 보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내고, 믿음이 가는 걸 믿으며, 눈앞의 이익과 편리에 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여하튼 가치관이 다르다. 그런 세계관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다. 가능하면 나는 스스로를 질책하는 건 피하고 싶다....그 점을 갑자기 찌르고 들어오는 인도는, 내게는 엄격한 나라다.

20년도 더 된 책이라는 데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책은 건재하리라.  

이 책에 기재된 물가가 제대로 감이 오지 않고, 호텔을 묘사한 그림이 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참 사랑스런 책이다. 잘 읽었다는 포만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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