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p.167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교육이 없으면 사람은 더 훌륭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의 일상생활에서, 스승이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제자를 대하듯이 경건하게 아이를 대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의 어린 시절을 내가 독점해서 관리하고 있는 듯한 감격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검정고시의 좋은 점을 얘기하고 학교에 안 다니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또 말했다는 김점선이라는 분. 선생인 나도 얼마 전 중학교 입학을 앞에 둔 딸아이에게 검정고시를 얘기한 적이 있어서 슬몃 웃음이 나왔다. 나도 흉내 하나는 잘내고 있구나,하고.

어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킬킬거리거나 시원하게 웃어가면서 재밌다고 입맛까지 다셔가며 읽으면서도 이 책의 저자가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에는 깜깜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가 아니었다면 아마 한 달 후 쯤 아니면 일 년 후 쯤 알게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사 온갖 뉴스를 내 나름으로 걸러서 듣는 내 지각력에 문제가 생겼나, 너무 거르다보니 모든 게 바람처럼 술술 새어버리기라도 하는건가. 

하여튼 잠시 이 책을 읽으며 통쾌하고 무지 행복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운명을 달리했다니 슬프다. <점선뎐>---- "장엄하게 죽기 위해서 이런 제목의 글을 쓴다"(p.390)고 했으니 이 분은 분명 장엄하게 생을 마감했으리라. 

p.151  내가 나의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저절로 기억할 만한 좋은 부분들은.....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도 힘들어하면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분의 비범한 점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식적이고 인습적인 온갖 부조리한 것에 맞서 평생을 당당하고 당차게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싶었다. 

p.226  내 몸에 '앎'이 생겨난 것은 내 몸이 정신과 일치한다는 증표다. 이제야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었다. 오랜 수양의 결과로 환갑을 넘겨서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된 것이다. 이런 내 몸에 경의를 표한다. 

여기서 '앎'은 병명 '암'을 일컫는 말이다. 몸은 암에 걸렸어도 얼마나 담담하고 당당한가. 깨끗한 정신이다 싶다, 감히 흉내내기 힘든.... 

p.257  예술가는 개안을 위해 많은 경험을 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개안을 하고 나서는 다시 욕심을 버리고 멍청해져야 한다고 그(화가 변종하)는 설명한다. 

이건 다름아닌 김점선 그분의 얘기로 읽어야한다. 

하나만 더 인용해본다. 

p267 궁극적으로 사람은,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버무려진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선과 악을 나누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선에 치우친 교육을 받는다. 선한 체하는 인간들과 글과 책을 늘 만난다. 구역질이 난다....그런 기저에서 사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악을 알지 않고서는 어떤 사소한 일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점잖은 척, 착한 척, 아름다운 척,....척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던 분의 책을 끝내 손에서 놓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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