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에 꽂힌 여러 권의 시집 중 백무산의 <그 모든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백무산의 시는, 솔직히 불편하다. 속물근성 내지는 적당주의, 타협, 소시민성 같은 것들을 마구 지적해내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한권의 시집을 읽는다고 달라질 리도 없으니 더욱 한심하긴한데, 그래도 시 한편 읽는 동안만큼은 깨어있고 싶다.

 

 

 

 

 

 

  < 감  수  성 >     

                                 백 무 산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전재산

십억이 넘는 돈을 모교인 국립서울대학교에 기부하고 갔습니다

살아 계실 때 온화한 모습 그대로

 

얼마 뒤 부산 사는 진순자(73) 할머니는 군밤장사 야채장사

파출부 일을 하며 평생 모은 일억 팔백만원을 아프리카 최빈국

우간다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도 옛날에 원조 받아 공부도 하고 학용품도 사고 그랬단다

우간다 아이들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당부도 담아서

 

농사짓고 공장 일 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에서

시를 공부하다 나온 얘기였는데

누가 내게 물었습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나는 계급성이라고 말하려다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계급성 감수성이라고 말하려다

생명의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수성은 윤리적인 거라고 말하려다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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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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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풍농월하는 두 분의 글에 흠뻑 젖은 시간, 신선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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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 벼르다가 드디어 명재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서야 명재고택이 매우 유명하고 유서 깊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찍어 온 사진보다도 훨씬 잘 찍은 사진들이 많다는 것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조금만 수고를 하면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라 내 어눌한 설명이 오히려 어줍잖다. 사진만 몇장 올린다.

 

 

 

장독대 뒤로 보이는 집이 명재고택이다. 사실 나는 집보다 항아리 속이 궁금했으나 열어보진 않았다.

 

 

 

 사랑스러운 사랑채.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풍경이 액자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일본 교토에서도 이러한 액자 속 풍경을 감상하는 절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잘 꾸며놓은 인공적인 정원을 감상하기에 정원가꾸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데 반해, 이곳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폐쇄적이라면 우리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온동네를 내려다본다는 건 일종의 감시 기능도 담당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아래 사진은 교토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오하라의 <호센인>에서 찍었다. 액자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 있는 금강산 모형의 석림. 일본의 가레산스이식 정원이 떠오른다. 가레산스이는  모래와 바위 등으로 바다와 섬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는 정원양식이다. 소꿉장난 같은 이런 모형 감상은 한국과 일본 누가 원조일까?

 

(아래 사진은 일본 교토의 료안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형적인 가레산스이식 정원이다.)

 

 

 

(아래 사진은 료안지 근처의 여느 가정집)

 

 

 

 

 사랑채 누마루 내부. 정면에 보이는 하얀문 뒤에 방이 붙어 있는데 그 내부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곳에서 "너는 평생 책만 읽어라."라는 팔자 좋은 형벌(?)이 내게 떨어진다면 평생 달게 받으련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작은 사랑채방. 8만원의 하루 숙박비가 아깝지 않은 곳.

 

 

 

우리가  묵었던 사랑방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달밤에 저 앞쪽으로 보이는 400년 넘은 고목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면 절경이라는데 초저녁부터 이 지역의 특산막걸리인 <뻑뻑주>를 마시고 자느냐고 달구경을 못했다. 고상하고 우아해지려면 아직 멀었다. 뻑뻑주맛? 이름만큼 뻑뻑하진 않고 탄산음료처럼 가볍고 상큼하다.

 

 

 

 

안채의 뒤란 풍경. 저만한 장독대를 옆에 끼고 살아보는 게 내 꿈이라면 꿈.

 

 

 

딸아이가 묻는다, 고르바초프가 누구냐고. "응? 있어. 아주 유~~명한 사람."  사랑채엔 주인되시는 종손분과 고현정이 함께 찍은 사진도 액자에 걸려있다.

 

 

사진은 그렇고.....점심을 먹기 위해 논산 화지중앙시장이란 곳을 찾아갔다.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나 밥 먹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식당을 겨우 찾으면 문이 닫혀있기 일쑤였는데, 하여튼 구석에 보리밥집이 하나 있어서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출입문을 열자 할아버지 서너분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셨고 우리는 미처 치우지 못한 식탁에 플라스틱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3,000원을 넘지 않는 메뉴 중에서 2,5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해서 먹었다. 찰기 없는 밥 한공기와 삭기 시작한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고춧잎장아찌, 콩나물, 토종된장국이 나왔다. 배도 고팠지만 밥을 절대로 남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박하고 절절한 기운이 들어간 밥상이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젊은 것들이 앉아서 밥을 받아 먹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할머니 세 분이 2~3분의 시차를 두고 들어오셨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두 분, 장보러 나오신 할머니 한 분. 늦게 오신 분은 다른 분들의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드시면 되었다.

 

계산을 치르고 있는데 할머니들 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할머니, 김밥 같은 거 잡수시지 마시고 이런 밥을 드세요. 김밥은 금방 꺼져요."

 

식당을 나서니 금방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과일, 시루떡, 약식, 빵과 쿠키 등을 한아름 사들고 명재고택으로 향했다. 2,500원이 아까워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시는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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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말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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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아도취, 독설, 모순,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통쾌하고 힘있는 도올의 글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특히 한국기독교문화 비판, 음식에 대한 단호한 글을 마음에 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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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의 사진을 보고 딸아이가 그런다. "엄마와 아버지 얼굴을 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아."라고. 아마도 흰머리 때문이리라. 내 흰머리와 남편의 흰머리를 합성한 것 같긴하다. 머리의 하얀색 때문에 얼굴빛이 좀 더 맑게 보이는 모습도 공통점일 게다. 얼굴빛과 더불어 마음도 맑아진다면 늙을 만도 한데...

 

최백호의 cd를 처음 구입했다.

 

젊은 아티스트인 말로, 기타리스트 박주원, 하모니카 연주가 전제덕 등과의 어우러진 곡들이 참 들을 만하다. 기존의 성향과는 다른 시도가 참신해서 좋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해본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듣다보면 경쾌한 탱고리듬에 몸을 맡기고 가볍게 흔들어보기도 한다, 하루종일 들어도, 잠들기 전에 들어도, 낮에 과도하게 섭취한 카페인 때문에 잠을 설치는 새벽에 들어도 좋긴한데, 좀 지나치게 회고조로 흐르는 게 약간 질린다. 그게 콘셉이라면 뭐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좀 더 솔직한 감상은,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이 그리 자연스럽거나 매끄러워 보이지 않고 장식적인 효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최백호의 노래도 강한 호소력은 있지만 변화가 적고 단선적이어서 지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자연스러움이 아쉽다.

 

이 cd에 실린 엇비슷한 분위기의 노래에 젖다보면 어느 새 레너드 코헨의 노래들이 떠오른다.

 

 

 

 

 

 

 

 

 

 

 

 

 

 

 

 

구입해놓고 한두 번 들어본 레너드 코헨의 노래들을 일삼아 다시 들어보았다. 가사도 한번씩 음미해본다. 속삭이듯 하면서 무언가를 늘 뒤돌아보는 듯한 그러면서 철들지 않는 장난기도 느껴지는 듯한 분위기도 여전했고, 악기 소리 같기도 한 잘근잘근 씹는 듯한 읊조림도 더욱 매력적이었다. 노래인지 시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그 모두를 아우르는 묘한 색조의 노래들이 여전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가사가 다시 보였다.

 

I caught the darkness

Drinking from your cup

.

I got no future

I know my days are few

The present's not that pleasant

Just a lot of things to do

.

I used to love the rainbow

I used to love the view

I loved the early morning

I'd pretend that it was new

But I caught the darkness baby

And I got it worse than you

 

두 거장의 노래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사집을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우리말이건, 영어건. 우리말 가사는 좀 더 애절하고 아름답긴 한데 약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가사면에서는 최백호의 노래보다 레너드 코헨의 노래가 훨씬 간결해서 이해하기 쉽고 듣기도 편하다. 레너드 코헨이 손수 쓴 가사들이라는 점에 마음이 더 끌리기도 하고.

 

모처럼 한가한 한때를 레너드 코헨과 최백호를 비교해가며 듣는 맛이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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