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 벼르다가 드디어 명재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다녀와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서야 명재고택이 매우 유명하고 유서 깊은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찍어 온 사진보다도 훨씬 잘 찍은 사진들이 많다는 것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조금만 수고를 하면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라 내 어눌한 설명이 오히려 어줍잖다. 사진만 몇장 올린다.
장독대 뒤로 보이는 집이 명재고택이다. 사실 나는 집보다 항아리 속이 궁금했으나 열어보진 않았다.
사랑스러운 사랑채.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풍경이 액자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일본 교토에서도 이러한 액자 속 풍경을 감상하는 절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잘 꾸며놓은 인공적인 정원을 감상하기에 정원가꾸기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데 반해, 이곳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폐쇄적이라면 우리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높은 곳에서 온동네를 내려다본다는 건 일종의 감시 기능도 담당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아래 사진은 교토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오하라의 <호센인>에서 찍었다. 액자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랑채 누마루 앞에 있는 금강산 모형의 석림. 일본의 가레산스이식 정원이 떠오른다. 가레산스이는 모래와 바위 등으로 바다와 섬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는 정원양식이다. 소꿉장난 같은 이런 모형 감상은 한국과 일본 누가 원조일까?
(아래 사진은 일본 교토의 료안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형적인 가레산스이식 정원이다.)
(아래 사진은 료안지 근처의 여느 가정집)
사랑채 누마루 내부. 정면에 보이는 하얀문 뒤에 방이 붙어 있는데 그 내부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곳에서 "너는 평생 책만 읽어라."라는 팔자 좋은 형벌(?)이 내게 떨어진다면 평생 달게 받으련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작은 사랑채방. 8만원의 하루 숙박비가 아깝지 않은 곳.
우리가 묵었던 사랑방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달밤에 저 앞쪽으로 보이는 400년 넘은 고목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감상하면 절경이라는데 초저녁부터 이 지역의 특산막걸리인 <뻑뻑주>를 마시고 자느냐고 달구경을 못했다. 고상하고 우아해지려면 아직 멀었다. 뻑뻑주맛? 이름만큼 뻑뻑하진 않고 탄산음료처럼 가볍고 상큼하다.
안채의 뒤란 풍경. 저만한 장독대를 옆에 끼고 살아보는 게 내 꿈이라면 꿈.
딸아이가 묻는다, 고르바초프가 누구냐고. "응? 있어. 아주 유~~명한 사람." 사랑채엔 주인되시는 종손분과 고현정이 함께 찍은 사진도 액자에 걸려있다.
사진은 그렇고.....점심을 먹기 위해 논산 화지중앙시장이란 곳을 찾아갔다. 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으나 밥 먹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식당을 겨우 찾으면 문이 닫혀있기 일쑤였는데, 하여튼 구석에 보리밥집이 하나 있어서 쭈뼛거리며 들어갔다. 출입문을 열자 할아버지 서너분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셨고 우리는 미처 치우지 못한 식탁에 플라스틱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3,000원을 넘지 않는 메뉴 중에서 2,5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해서 먹었다. 찰기 없는 밥 한공기와 삭기 시작한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고춧잎장아찌, 콩나물, 토종된장국이 나왔다. 배도 고팠지만 밥을 절대로 남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박하고 절절한 기운이 들어간 밥상이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젊은 것들이 앉아서 밥을 받아 먹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할머니 세 분이 2~3분의 시차를 두고 들어오셨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두 분, 장보러 나오신 할머니 한 분. 늦게 오신 분은 다른 분들의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드시면 되었다.
계산을 치르고 있는데 할머니들 얘기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할머니, 김밥 같은 거 잡수시지 마시고 이런 밥을 드세요. 김밥은 금방 꺼져요."
식당을 나서니 금방 배고파지기 시작했다. 과일, 시루떡, 약식, 빵과 쿠키 등을 한아름 사들고 명재고택으로 향했다. 2,500원이 아까워 1,000원짜리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시는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움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