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
정은주.박미란.백금희 지음 / 창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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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송도 중고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얼마전 실크로드에 며칠 다녀왔더니 눈에 들어오는 게 그쪽 관련 책이다. 확실해진 건, 이제 실크로드 책이 머리에도 쏙쏙 들어온다는 것이다. 예전에 사놓고 못 읽었던 책들도 이제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머리보다 몸으로 읽는 것이다, 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읊조리게 된다.

 

이 책은 꼭 무슨 교과서 같다. 교과서라면 좀 지긋지긋 한데(용서하시라!)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기초적인 것을 건너뛰지 않고 조목조목 짚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독자층의 연령이나 수준이 좀 모호하지만 입문서로는 제격인 셈이다. 어렵고 복잡한 주제일수록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다.

 

이 글은 리뷰라기 보다는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을 흘려버리기 아까워 기록해두는 기록장에 가깝다. 아무려나 이렇게라도 남기지 않으면 망각의 강으로 빠르게 흘러가버리고말 것이다.

 

 

스키타이 이후 여러 유목민족들이 원대한 야망을 펼치며 초원비단길을 무대로 화려한 유목제국의 역사를 창조했다. 중국과 북방유목민족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진나라와 한나라 때는 흉노가, 수나라와 당나라 때는 돌궐과 위구르가, 송나라 때는 거란과 여진이, 뒤이어 몽골이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유목민족들은 교역과 정복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르며 유라시아를 호령했고 동서 교류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40 쪽)

 

 

멕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아카풀코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이어지는 태평양길은 은을 통해 연결된 아메리카대륙과 구대륙의 본격적 만남이었다. 에스파냐는 태평양길의 교두보로 필리핀에 마닐라를 건설했다. 필리핀이라는 이름에는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의 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닐라에는 은을 가득 싣고 태평양을 건너온 에스파냐의 대형 갈레온선과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를 실은 정크선으로 북적거렸다. (중략) 마닐라는 태평양시대의 첫 태양이 떠오른 곳이다. (53쪽)

 

 

알렉산드로스제국 이후 등장한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수도였던 알렉산드리아는 특히 도서관과 무세이온으로 유명했다. 도서관은 40여만 권의 장서를 보유할 만큼 그 규모가 컸다. 일설에는 그 규모가 70여만 권이라고도 한다. 무세이온에서 영어의 박물관이란 단어가 유래했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학술연구소였다.(중략)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처음 측정하고 유클리드가 <기하학원본>을 쓴 곳도 여기며 국왕이 기하학을 쉽게 배울 방도가 없는지 묻자, 유클리드가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란 유명한 말을 남긴 곳도 바로 이곳이다. (62쪽)

 

 

흉노인들은 자신들을 '흉' 또는 '훈'이라고 불렀으나, 중국인들이 이 말과 음이 비슷한 오랑캐흉(匈)자와 노예를 뜻하는 '노(奴)'를 붙여 흉노라고 불렀다. 또 몽골을 우매하고 답답하다는 뜻의 몽고(蒙古)라고도 불렀다. (133쪽)

 

 

흉노가 활약하던 고비사막 일대를 차량으로 이동하며 가이드의 성실하고 진지한 설명에 귀 기울이던 지난 여행이 잠시 떠오른다. 그 땅을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면 '흉노'에도 '유목민'에게도 별 관심이 가지 않았을 터이다. 건조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막에도 켜켜이 인간의 삶과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건 그냥 책으로만 읽는 것과 많이 달랐다. 책은 두 발로 읽어야 비로소 머리로 들어오는 것 같다.

 

 

정주문명권의 사람들은 유목기마민족을 항상 잔혹한 야만인이라고 기록했다. 흉노와 몽골을 표기한 한자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주류라고 자처하는 정주문명권이 저지른 학살은 유목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중세 서유럽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살육, 그리고 근대에 인종차별과 식민지 개척으로 노예와 원주민들에 가해진 고문과 잔혹한 대량학살은 입에 담기 힘들 만큼 끔찍했다. 오늘날 세계를 둘러보자. 누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지.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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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SPAIN 엔 스페인 - 30 days in Barcelona
도은진 지음 / 오브바이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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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기증하고 싶은 책. 그냥 빌려서 보라고.
얼굴 잘린 사진을 보는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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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Tenda of Bologna (Paperback)
존 버거 / Penguin Books Ltd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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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설로 읽어야 할 지 여행담으로 읽어야 할 지 좀 헷갈리지만 아무래도 좋을 듯하다. 초반에는 편지쓰기와 여행을 좋아하는 큰아버지 얘기가 잠깐 나오더니 이내 볼로냐라는 도시 이야기로 이어진다.

 

30년 동안 큰아버지와 주고 받은 선물 목록을 보면 주인공인 나와 큰아버지 사이에는 애틋한 친밀감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편지 봉투 절개용 칼, 아이슬란드 지도. 오토바이용 고글, 문고판 스피노자의 윤리학 ......

 

 

잔잔하면서도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나는 그렇게 읽었다.

 

Much of what my Uncle read was related to the next journey he was planning or the one he had just made.

 

나 역시 여행 전에 여행관련 책을 읽거나 여행 후에는 다녀온 곳에 대한 책 읽기를 좋아한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음악교사로 있는 두 명의 사촌을 찾아낸 큰 아버지는 피렌체에 가기 전에 Burckhardt<르네상스> 책을 읽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나중에는 볼로냐라는 도시에 매혹되기에 이른다. 짧고 강렬한 문장 하나가 눈에 띈다.

 

Plan your work and work your plan.

 

예술학교에 다니던 나는 큰아버지한테 '볼로냐는 모란디의 도시'라고 말하고 볼로냐에 가서 모란디의 그림 보기를 여러 차례 권하게 된다. 볼로냐에 다녀온 큰아버지에게 그곳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 나에게 큰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It's red, I've never seen a red like Bologna's. Ah! If we knew the secret of that red...It's a city to return to, la proxima volta."

 

이후부터는 주인공 '나'가 볼로냐에 가서 빨강색 차양천을 구매하는 얘기로 이어지면서 볼로냐에 푹 빠지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가장 강렬한 문장을 하나 꼽는다면,

 

It's an improbable city, Bologna - like one you might walk through after you have died.

 

*improbable: 정말 같지 않은

 

볼로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도시로 각종 박람회가 열린다고 한다. 스포츠, 패션, 농기계, 어린이책....

 

Who would ever dream of putting martyrs and Blue Mountain coffee side by side?

 

커피와 순교자들을 버무려 생각할 수 있는 곳....볼로냐...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책은 가격이 저렴해서 읽다가 팽개쳐도 그리 아깝지 않다. 이 펭귄 시리즈 참 기특하다.

 

 

 

 

*손바닥만한 이 펭귄 시리즈 목록을 첨부합니다. 지난번 영국의 옥스포드에 갔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구입하며 알게 되었는데 국내에도 이미 들어와있더군요.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인 듯해요.^^

 

 

 

 

 

 

 

* 볼로냐를 일컬어 '붉은 도시'라고도 한다. 이유는, 도시에 붉은 벽돌 건물이 많고, 이 도시가 사회주의 도시이기 때문인데, '볼로냐의 외양과 내면을 동시에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from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다>(최도성)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백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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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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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주제로 한 독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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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어가면 읽다가 탐구심에 이끌려 원서를 찾아보았다. 워즈워스 관련 이야기이다.

 

 

 

워즈워스의 '시간의 점'에 대한 설명이다.

 

'이렇게 알프스가 그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게 되자 워즈워스는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런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했다.'  (210쪽)

 

원서를 찾아보았다. 위의 시 원문이다.

 

There are in our existence spots of time

Which with distinct preeminence retain

A fructifying virtue, whence, depressed

By trivial occupations and the round

Of ordinary intercourse, our minds -

Especially the imaginative power -

Are nourished and invisibly repaired.

Such moments chiefly seem to have their date

In our first childfood.

 

The Two - Part Prelude(1799) 라는 시의 일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위 사진에도 보이듯이 이렇게 번역했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 시에서 '시간의 점'은 자연 속에 있다기 보다는 주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시는 계속 어린 시절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세 줄, "이 힘으로....일으켜 세운다'는 구절에 해당하는 문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면 원문이 길어서 다른 부분에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뭐랄까. 꿈보다 해몽이랄까. 워즈워스의 시 세계를 압축하여 설명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저런 경우 원문과 함께 실어주면 좋겠다. 자기 입맛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면 독자들은 또 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재인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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