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타지마할호텔 앞. 예전이나 지금이나 타지마할호텔은 당당하고 아름답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출입할 때 공항 검색대와 같은 곳을 통과해서 테러를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 큰 호텔에 출입문도 하나여서 매우 폐쇄적인 곳이 되어버렸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실까했더니 그마저도 없애버려서 결국은 화장실만 들락거렸다. 90년대 중반,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타지마할호텔의 화장실은 꼭 가봐야하는 장소였다. 그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품격 높은 고급 화장실이었으니까.

 

많은 인파와 장사꾼으로 가득한 넓은 타지마할호텔 앞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내 키만한 대형풍선이었다. 이 풍선은 그 크기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간 이 풍선은 밋밋하던 상상력에도 가득 바람을 불어넣었는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건 남편이 먼저였다. 학교축제 때 이 풍선을 걸어놓으면 멋질 거라며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학교 체육대회 때 이 풍선에 학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크게 써놓고 플래카드 대신 사용한다면 매우 그럴듯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뭄바이의 유명한 빨래터인 도비가트를 가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이 알록달록한 대형풍선이 꽉 들어차 있었다. 드디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시 타지마할호텔 주변에 가게되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싶어 더이상 미룰것도 없이 어떤 풍선장수와 흥정에 들어갔다.풍선 10개가 담겨있는 한 봉지 가격은 500루피. 좀 비싸다싶어 400루피로 깎았더니 한 봉지를 더 내밀며 모두 600루피에 가져가라고 한다. 머리를 흔들었더니 순간 500루피로 떨어졌다. 같은 가격에 처음의 한 봉지가 두 봉지가 된 셈이다. 뭔가 이상했으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니 흐뭇한 기분이 들어 얼른 가격을 지불했다. 신이 난 남편과 나. 10미터나 갔을까. 또 다른 풍선장수가 눈앞에 등장한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풍선보다 자그만치 10배쯤은 큰 풍선을 우리에게 내민다. 우리가 구입한 풍선이 한 뼘 크기라면 이 풍선장수의 풍선은 덩친 큰 사내의 팔뚝만한 크기였다. 우리가 산 풍선을 보여주었더니 미처 우리가 말리기도 전에 봉지에서 한 개를 꺼내더니 입에 대고 불기 시작한다. 아뿔사, 속았구나! 우리 풍선은 아무리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도 뱀장어만한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풍선에 불과했다. 그것도 함량미달의 병든 뱀장어같은 몰골이라니!

 

두 번째 풍선장수의 풍선에 눈길이 아주 잠시 머물렀으나 이내 거두고 말았다. 마음이 아파서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우리를 속인 풍선장수를 찾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또 한 명의 풍선장수가 다가왔다. 혹시 당신이 우리를 속였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더니 이 세 번째 풍선장수 얼른 자기 턱을 들어올리며 '나요?' 하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자세히 보니 이 아저씨는 이마에 혹이 불거져있는 것이 우리에게 풍선을 판 그 아저씨는 아닌 것 같다. 아, 헷갈려! 이 사랄미 그 사람같고 그 사람이 이 사람같은데 아닌것 같고 긴것 같고...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가 속았다는 사실 뿐이다.

 

찻집에 들어가 친구들에게 얘기하니 배꼽을 잡는다. 누군가 풍선 하나를 불어보았다. 다 불기도 전에 피식 터져버리는 바람에 다시 배꼽을 잡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비닐조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렇게 속고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풍선의 압도적인 크기에 부풀대로 부풀었던 남편과 나의 상상력은 풍선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사람을 잘 믿는 어리숙한 사람일지도, 여행자의 기분에 들떴는지도, 늙은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애정을 받고 싶다는 처절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풍선장수들의 조직적인 고단수의 사기행각에 쉽게 넘어갔다. 그들의 사기수법은 단순하여 뻔히 눈에 보이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바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풍선을 사기 전까지는,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그 풍선 때문에 행복한 기분이 들어 싱글벙글할 수 있었다. 그 부푼 꿈에 행복했다. 그 황홀한 꿈은 또 다른 풍선장수들의 등장으로 5분도 안 되어 깨지고 말았지만.

 

남편은 끝내 아쉬운지 그 섭섭함과 민망함을 이렇게 달랬다.

"집에 갈 때까지 속은 걸 몰랐다면 차라리 기분이나 좋았을 텐데..."

 

그런데 만약 풍선을 사지 않았다면? 아마 한동안 몇 푼도 안 되는 풍선조차 사지 못하게 했다고 남편한테 지청구를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500루피는 한화로 약 1만원쯤 된다. 그 풍선장수에게는 작은 횡재가 되어 좋고, 우리 친구들에게는 웃음이 되어 좋고, 나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좋으니 이 아니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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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1-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깝지만 그래도 즐거운 추억하나 얻으셨다는 말씀에 백번공감합니다~~^^

nama 2017-01-24 21:40   좋아요 1 | URL
즐거운 상상이 금방 끝나버린 게 좀 아쉬울 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