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결에 시를 베다』 by 손세실리아
명판결
손세실리아
상습 절도 폭행으로 소년 법정에 선 열여섯 살 소녀가 훈방 조치 이후 얼마 되지 앟아 절도죄로 동일 법정에 사시 서게 됐다 부장판사는 자신의 말을 따라 하도록 일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할 수 있다
나는 두려울 게 없다
나는 ...두려울......게...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이 세상은 ..........나......혼자가.......아니다
머뭇머뭇 쭈뼛거리며 마지못해 따라 하던 소녀는 끝내 울음 터트렸고 판사도 비공개 재판을 돕던 이들의 눈시울도 동시에 뜨거워졌다 잠시 후 또래 남학생들에게 집단폭행 당한 수치심이 분노로 표출돼 자포자기 심정으로 비행에 빠져든 정황을 꿰뚫고 있던 소년전문법관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장에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섣불리 단정 짓겠는지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그리곤 법대 앞으로 소녀를 불러 작은 손 꼭 잡고 속삭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누굴까 바로 너야
이 사실을 잊지 마
그러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마음 같아선 꼭 안아죽 싶은데
우리 사이를 법대가 가로막고 있으니 하는 수 없구나
이 명판사가 누군가 했는데 마침 오늘 신문의 어떤 칼럼에 이 분의 성함이 적혀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8885.html
김귀옥. 이렇게 생긴 분이다.(나랑 비슷^^*)

검색창에 김.귀.옥 이름 석자를 써보니 주르르 글이 뜬다. 2011년 2월의 판결문이라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그때 뭘 하고 있었지? 돌이켜보니 새학교 전근을 앞두고 어수선한 기분으로 2월을 꾹꾹 채워넣고 있던 시절이었다. 2월은 늘 그렇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으로, 서운함과 어색함이 공존하고, 한 해가 끝난 것도 아니면서 한 해가 시작되는 것도 아닌,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시절이 2월이다. 연중 가장 기억이 흐려지는 때이며 세상 일에 가장 무디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하여튼 오늘 하루는 김귀옥 이 분 이름을 기억하는 날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