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울다가...재미있는 영화다. 너무나 친근한 소재, 이제사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육이오 이후 10년만 빼면 나머지는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겹치기 때문이다.

 

흥남 부두에서 군함을 타고 피난 나오는 장면은, 수백 번이나 들었던 우리 어머니의 피난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딸만 여섯인 우리 어머니 형제들은 모두 남으로 피난을 나왔지만 유일하게 외할머니만은 남으로 내려오시지 못했다. 팔순이 넘은 막내 이모는 지금도 육이오적 얘기가 나오면 함께 내려오시지 못한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신다. 큰 이모는 피난 중에 막내 아들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산했는데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해남이라는 아명을 붙여 지금도 본명 대신 이 이름으로 불린다.

 

영화의 한 장면. 미군들이 탄 차량을 아이들이 뒤쫓으며 '기브미초코렛'하는 장면은 내가 어렸을 적 모습 그대로이다. 오빠들을 포함한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흔히 하던 행동이었다. 우리 동네는 멀지 않은 곳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 미군들을 보는 것은 그냥 일상이었다. 우리는 자칭 국제도시에서 살았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대학 친구의 언니가 파독 간호사였는데 튀니지 남자를 만나서 튀니지로 시집을 갔다...정도.

 

베트남전엔 우리 작은아버지가 군인으로 참전했었다. 동네에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살았는데 우리 부모님과 매우 친하게 지내셨다.

 

세월이 흘러 1983년. 이산가족상봉이 시작되던 해. 아버지와 나는 여의도 KBS 방송국에 갔었다.

부모형제를 북에 두고 남동생과 단둘이 피난나온 아버지는, 그러나 이산가족 만남을 신청하지는 않으셨다. 그 이유를 여쭤봤던가, 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나는 고작 이 정도의 자식이었구나, 새삼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만 서운해했지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줄은 몰랐다.

 

주~욱 나열하다보니..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그런데 옆에 앉은 딸아이도 영화에 푹 빠져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하는 말, " 나 눈물 흘리면서 봤어."

 

* 부부싸움하다가 국기하강식이 나오자 경건한 모드로 전환되는 장면이 무척 코믹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젠장. 그 시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소재, 야간 통행금지가 빠진 게 좀 서운하다. 밤12시면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는 일상의 모습을 한 장면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5-01-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기 전에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이 영화 보려고요. 6.25나 베트남전은 저는 들어서만 알고 있지만 nama님 올려주신 글 읽어보니 1983년 이산가족찾기는 저도 기억에 있네요. 저희 집이 그때 방송국 근처에 살아서 버스 타고 학교갈때 매일 지나갔는데 방송국 건물 벽에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어있던 포스터를 보며 다녔지요. 미군들 나오는 장면은 제 남편도 보면서 감회가 새롭겠는데요? ^^

nama 2015-01-02 10:39   좋아요 0 | URL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딸아이가 여간해서 영화 보다가 눈물 흘리는 아이가 아닌데 눈물 흘리며 봤다기에 저도 약간 놀랐어요. 헐리우드영화 못지 않게 심심할 틈이 없어요. 가족영화로는 대만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