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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쓰인 미셸 투르니에의 방법을 흉내내어 리뷰에 대한 소박한 생각을 해본다.
'호평과 혹평'.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을 하는 좋은 책과 반대로 별 인기도 없고 공감도 끌어내지 못해 나오자마자 사장되고마는 책이 있다. 어떤 책이 리뷰하기 좋을까를 종종 생각해보는데 나에게는 단연 후자쪽이 수월할 때가 많다. 좋은 책은 그 내용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내 생각을 보태기는 커녕 고개만 주억거리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러나 책이 좀 부실하다고 생각될 때는 내 생각을 보태거나 혹은 단점을 짚어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호평은 짧게 끝나고 혹평은 길게 이어진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면 이 책이 처음에는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황소와 말, 목욕과 샤워-샤워를 선호하는 사람은 깨끗함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고 목욕하는 사람은 깨끗함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샤워는 좌파 쪽, 목욕은 우파 쪽에 있다 -에 대한 얘기라든가, 유목민과 정착민, 소금과 설탕, 환경과 유전, 말과 글, 오른쪽과 왼쪽... 등 친숙한 '짝패'들이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심지어는 위에서 '호평과 혹평'을 거론한 것처럼 나도 독서 틈틈히 미셸 투르니에의 작업을 마음 속으로 흉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과 독서실, 학교와 학원, 배낭여행과 단체여행, 의사와 환자, 끝과 시작, 그리고 고전적인 예로써 모짜르트와 베토벤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미 이 책에서 모두 말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여기에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뒤로 갈수록 미셸 투르니에의 작업이 섬세해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본업인 철학적인 관념이 내 얄팍한 사고력을 죄어오는 것이었다. 알듯 모를듯, 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까. 어떤 부분에서는 번역자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부분을 이겨냈을까, 하는.
<재능과 천재성>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p.146 천재성
재능
솜씨
잔재주
인간은 누구나-그가 어떤 사람이든-이 네 가지 능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능력이 얼마만큼의 비율로 섞여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인용하길,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천재성을 가지고는 자기가 할 수 잇는 것을 한다.'고 하고, 손재주(솜씨)에 대해서는 '젊은 나이에 스승의 회초리를 맞아가면서 배우는 예술의 기본기'이며, 잔재주는 '격이 뚝 떨어지는 만만한 능력으로 자신의 무능력과 무지와 모자라는 창의력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비로소 알 게 된 사실 하나. 이런 리뷰는 커녕, 이 책을 읽어내는 데도 내 능력은 잔재주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하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호평이니 혹평이니 하는 발언조차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
긴 겨울 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미셸 투르니에의'짝패'를 떠올리며 짝패 놀이를 해본다. 여름과 겨울, 신발과 맨발, 연필과 타자기, 동양과 서양,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금과 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교사와 학생, 가해자와 피해자, 채무자와 채권자...미셸 투르니에는 존재를 논하는 자리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는데, 난 역시 당장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잔재주를 부리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