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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퇴물 냄새 물신 풍기는 단어, 다방. 게다가 다방기행문이라니. 세상이 온통 반짝거리는 것들로 야단인데 새삼 다방이라니. 그러나, 그래서 반가웠다. 

고등학교 시절, 졸업을 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다방에 드나드는 것이었고, 대학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머리에 파마를 하는 것이었다. 70년대의 마지막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들어가본  다방의 커피 값은 140원이었다. 다방 커피 가격조차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던 시절이라 전국의 어느 다방이나 커피값은 똑같았다. 내가 다니던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36만원 하던 때였다.  

다방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한 시절을 보냈으니 이 책이 어찌 아니 반가우랴. 그야말로 옛친구를 옛날 다방에서 만나 알싸한 추억을 되씹어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추억 속의 다방들이 하나씩 떠오르기도 했다. DJ가 마음에 들어 한 철을 보냈던 명보다방, 좋아했던 사람을 기다렸던 칠성다방, 학교 앞의 하얀집, 대천에서 자취하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들렀던 대천역 근처 송아지다방, 수원 남문 옆의 카사다방, 수원 북문의 어떤 다방, 서문밖의 다방, 그리고 다방, 다방, 다방....

이 책의 몇 페이지 정도는 다방 창가에 앉아서 달짝지근한 커피를 홀짝이며 읽어줘야 제맛일테지만, 에어컨 빵빵 나오는 시립도서관에서 허리 반듯한 자세로 앉아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되려 제맛이 더 나는 건 뭘까. 경건한(?) 면학 분위기에서 키득키득 속으로 흥얼거리며 숨죽이며 읽는 재미라니. 넓은 도서관 자료실이 마치 다방처럼 안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 행복감이라니... 

(91쪽) 한마디로 다방은 배울 게 별로 없는 곳이다. 물론 커피도 맛없고. 하지만 그곳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풍경을 따라가는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배울 것이 별로 없다면서도 지은이의 다방여행은 길게 이어졌다. 그의 말마따나 '(198) 한 번 튕겨나왔다가 세상의 구심력 안으로 다시 들어서지 못하'였기 때문일까. 사라지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지은이의 쓸쓸한 미소가 내내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그의 얼굴에 이 쓸쓸함 미소를 그려보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오래전에 들어가보았던 그의 홈피의 영향도 있으리라. 맹물다방이라니...다방 음악들이 흐느적거리던 홈피였는데. 

글 중에서, (206)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해서 내 머릿속에는 정인과 가인이 서너 시간 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는데 정인다방과 그 옆에 있는 가인다방을 두고 지은이가 하는 짓거리(용서하시길)가 사뭇 유쾌하고 재미있다. 다른 부분은 그렇더라도 이 부분은 꼭 한 번 읽고 넘어가시길. 다방 같은 데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다방사유철학이라고나 할까. 이 책의 절정같다, 내게는. 

(350) 그간 스쿠터로 전국의 다방들을 헤집고 다닐 때 느낀 게 있다면 오라는 곳보다 굳이 오라고 소리하지 않는 곳이 오히려 가볼 만하다는 것이다. 오라고 하는 곳들은 대개 '늪'이다. 무슨 복고 취향이 있어서 다방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오라는 곳들을 가보면 하나같이 가짜 자연이고 테마공원처럼 따분해서 그곳을 피하다 보니 기울어져가는 오래된 마을이 있고 그 사이사이 다방이 있고 그랬다. 

'굳이 오라고 소리하지 않는 곳'을 드디어 나도 이 책에서 한 군데 발견했다. 남해 금산 보리암 주변의 '기암괴석을 쌓아놓은 바위 절벽 위에 세상에 없을 그런 주막'이 바로 그곳이다. 금산 보리암 근처 바위산에서 달밤을 맞이하는 게 그렇게나 황홀하다던데 그곳에 세상에 없을 주막도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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