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이 있는 소설가 오정희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80년대 말 중앙대 문창과에 잠시 적을 두고 있었다. 한정없는 백수 시절, '글이나 써볼까' 하는 한량스런 생각으로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당시 소설에 뜻을 둔 친구들에게 소설가 오정희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오정희의 소설을 정성들여 필사하는 게 유행이었다. 허술하고 뻔한 대학 교육과정에서 글이란 홀로 터득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게 당시의 문창과 존재이유였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글쓰기는 독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럴 때 오정희와 같은 치밀하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소설가의 작품은 대학교수나 대학교재 이상이었다. 필사는 글을 쓰고 있다는 포만감과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감과 불안을 재우는 데도 한몫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오로지 소설가로서만 기억하고픈 작가를 오늘 뉴스에서 논란의 인물로 떠오른 것을 보고 있자니 착잡하다. 블랙리스트의 진위는 어디까지일까.... 소설가는 죽을 때까지 소설가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배우의 마지막 꿈이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것이듯 소설가는 마지막까지 펜을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젊었을 때 간접적으로 만난 오정희는 내게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작가로 보였다. 나는 오정희 글을 필사하진 않았지만 오로지 순정한 마음으로 필사에 매달렸던 그 당시의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순수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소설가 오정희의 오염된 모습을 보는 건 괴롭고 부끄럽다. 늙기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