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인천과 양양을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요즘 새로운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 듀얼라이프(dual life)쯤 되려나. 뻔한 수입으로 두 집 살림을 하려니 머리가 늘 지끈거린다. 지난 7월 책 구매로 670원을 사용했던 연유가 되겠다. 소풍삼아 다니던 간헐적인 이용이 아닌 정착을 목적으로 한 생활이라 초기 정착 비용이 말 그대로 꾸준히 들어간다. 게다가 집 앞을 흐르는 개울을 건너기 위해 새로 설치한 폰툰다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늘 신경을 쓰며 지켜봐야 하는 일이라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특히 장마 때나 태풍이 불 때 더더욱 그렇다. 사람의 통행을 위한 폰툰인지 폰툰의 건재를 위한 지킴인지 헷갈리는 상황.

 

 

 

이게 폰툰인지 어찌 알았을까.지난 4월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하루 쉴 겸해서 석부작박물관에 갔었다. 남편 머릿속을 계속 지배하고 있는 이 플라스틱 붕 뜬 다리를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명칭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콩짜개덩굴 옆에서 잠시 쉬며 열심히 인터넷 검색하다가 드디어 이름을 알아냈다. pontoon.

 

 

콩짜개덩굴. 바위에 자개를 붙인 모양새로 내 눈에는 식물이 아니라 옥구슬로 보인다.

 

 

 

 

집 근처에서 발견한 이 묘한 곤충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칠보 공예품을 누군가 장난으로 붙여놓은 것 같아서 손으로 만져볼까 하다가, 아니 이 깊은 산 속에 누가 그 짓을....친구들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더니 하나같이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희귀한 곤충이 살고 있구나'라고 할 뿐 이름을 아는 사람 하나 없다. 이것은 대체 무엇인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검색을 해도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어 술김에 북플에 사진을 올렸는데 어떤 이웃분이 곤충 앱도 있다고 알려주신다. 취중에 곤충 앱을 깔았으나 역시나 이름을 알 수 없었는데 아마도 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름 때문에 잠 못 이루다가 예전 동료가 생각났다. 온갖 동식물을 꿰고 있는 과학선생님, 그런데 전화번호가 없네. 코로나 전 단체카톡방이 있어 대충 만지작거리니 카톡이 된다. 흠,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못 살겠구나.

 

큰광대노린재약충. 여기서 약충이란 '어린개체'를 의미한다나.

 

 

해박한 과학샘이 보내준 큰광대노린재 사진. 인천대공원에서 찍었다고 하니 이건 깊은 산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생물체가 아니라는 말씀.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선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시골에서 필요한 방석을 만들었다. 동대문 원단시장에 가서 원단과 지퍼를 구입. 만들고 보니 절간 방석 모양이 되었다. 뭐 절간보다 더 절간같은 오지에 잘 어울리네. 며칠 후 이케아에 갔더니 온통 방석과 쿠션만 눈에 들어오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색상도 다양해서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성질 죽여가며 수고롭게 만들었는데 만든 보람이 퇴색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돈만 주면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살짝 피곤해졌다. 내 손과 내 노력을 쓸모없게 만드는 저 자본 세력!!!!

농사 짓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왕초보 농부의 첫 수확물. 자라지도 않고 늙어 버린 호박. 저 작은 늙은 호박을 무엇에 쓸고...했더니 농부의 딸인 친구가 그런다. 밀가루랑 콩 넣고 풀때기 해먹으면 적지 않은 양이라고. 정물화 속 소품으로나 생각하는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남편이 만든 잼 나이프. 딸을 위한 왼손잡이용 나이프가 특히 쓸 만하다. 아노락(我勞樂). 웬 옷이름? No! 일하면서 놀기. 이름을 짓다보니 나도 모르게 워라벨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놀기를 더 좋아한다. 저 이름 짓는데 7만 원 들었다. 엥? 작년 어느 날, 영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면서 이름 짓기 상상놀이에 빠져들었다. 그 중 남편이 제안한 이름은 '공(gong, 空)', 이중적인 의미가 좋으나 너무 과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주장한 건 '구절구절'. 구절양장 같은 곳이고 사연도 구절구절 많은 곳이니 좋잖우~~ 했는데 잘못 들으면 구질구질로 들릴 것 같아 아깝게 탈락. 그러면서 주말 버스전용차선을 침범한 줄도 모르고 달렸는데 얼마 후 범칙금이 날아왔다. 7만 원짜리로.

 

 

 

 

 

 

 

 

 

 

 

 

 

 

 

 

 

 

책값 아끼느라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한 따끈따끈한 책. 웬 7080식 제호일까 했더니 괴테가 만년에 쓴 시구라고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근심에 찬 여러 밤을/울며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이/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이것도 괴테의 글.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가 옳지 않은 것이고

감사할 줄 안다면, 그대 형편이 좋지 않은 것. 

 

이어지는 설명이 재미있다.

 

'...이 시구만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깊이 공감하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도 있지요. 대강 헤아려보니, 후자가 좀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묻는 사람이 제법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굳이 설명을 하지 않고, 이 구절이 이해 안 되시면 행복하신 분이라 좋습니다, 라는 정도로 대답을 얼버무립니다.'  - 79쪽

 

 

단박에 이해되는 두 번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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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8-29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주 일요일 아들에게 괴테의 저 싯구를 얘기해줬는데 여기서 보네요!!!
양양의 집이 어떻게 완성이 될지 너무 궁금합니다. 절간 같다고 하신 방석도 이케아 제품에 비할까요? 님의 방석은 사용할수록 그 가치가 더 빛날 것이라 생각해요. 콩짜개 덩굴은 이름은 정겨운데 자태는 정말 구슬같네요. 이뻐요. 곤충은 풍뎅이과 같은데 정말 색이 오묘하네요. 덕분에 여러가지로 눈호강 했어요.^^

nama 2021-08-29 14:15   좋아요 1 | URL
집은 이미 지은 지 꽤 되었어요. 너무나 엉성하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저 산 너머 산이라고나 할까요~~

얄라알라 2021-08-29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시원~~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솜씨입니다. 새로운 삶을 천천히 정성으로 준비하시니 분명 만족스러우신 출발 하실 것 같아요^^

nama 2021-08-29 19:45   좋아요 1 | URL
하나하나 하다보면 무엇인가가 되겠지요.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수밖에요.

2021-08-29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9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2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양양은 저도 애정하는 곳인데-사실 강원도 영동지역을 다 좋아합니다ㅋ-정착하실 예정이라니 부럽기만 합니다~
작명 7만원이면 싸게 잘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름이 참 좋네요! 저 원래 물욕 없는데 저런 잼나이프는 탐이 납니다!!
앞으로도 소식 많이 들려주세용!!😍

nama 2021-08-30 08:09   좋아요 1 | URL
양양은 이름이 밝아서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져요.
잼나이프 드리고 싶지만 좀 더 보완할 게 많아요.
제주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양양이 멀긴 해요~

푸른나라 2021-09-0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단박에 이해가 되어요. ㅎㅎ
글을 읽고 나면 여유도 가지고 용기도 가지게 되어요.
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해요. ^^*

nama 2021-09-01 18:50   좋아요 0 | URL
숙제 받은 기분도 나쁘지 않은데요.^^
감사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