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며 온갖 연수를 받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림청에서 실시하는 연수였다. 비전문인을 상대로 한 기본과정이었지만 그런 분야를 처음 접한 나로서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세계를 접할 때의 흥분과 떨림이 전해졌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영어 단어 대신 나무 이름, 야생초 이름을 외웠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 비슷한 감정도 일어났다. 나무와 야생초의 이름을 잘 안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이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평생 영어와 씨름해야 하는 고달픔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남의 떡이 커보이는 심리 같은 것.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러 강좌 중에 어떤 강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 중에 영국 런던을 다녀오신 분 손들어보세요."

나를 포함한 몇 사람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런던에 가셨을 때 큐 가든을 가보신 분 계신가요?"

아무도 없었다.

"런던을 가게 되면 제일 먼저 가야할 곳이 큐 가든입니다."

"???"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젠가 런던을 가야하고, 런던에 간다면 반드시 큐 가든을 가야한다고 마음을 먹은 게.

 

런던이 세 번째 여행인 나는 다른 덴 가도 되고 안 가도 되지만 큐 가든 만큼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을 지켰다.

 

여행 안내서 <시크릿 런던>에 나오는 큐 가든 소개 글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왕립 식물원

런던에서 온전하게 하루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권하고 싶은 식물원이다. 1759년 문을 연 이래 오늘날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녹지 안에 다양한 꽃과 식물, 여러 스타일의 정원을 선보이며 런너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리치몬드 공원 근교에 자리해 도심과 다소 거리가 멀지만 푸른 하늘과 초록빛 평원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지구 곳곳에서 가져온 다양한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온실 속에서 이국적인 열대 식물을 보존 중인 '글래스하우스'가 대표적이다.

 

'다소 거리가 멀지만'이라고 했지만 이건 다른 곳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런던은 생각보다 넓지 않아서 웬만한 볼거리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천에서 서울 도심에 가는 것보다 이동 시간이 길지 않다. 런던은 도대체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는 곳이다. 거리도 짧고 대중교통망이 치밀하게 조직되어있기 때문이다.

 

 

 

 

 

 

 

 

 

 

 

 

 

 

 

 

 

 

 

 

 

 

 

 

 

 

 

 

 

아이스 크림을 닮았다고 해서 '아이스 크림 튤립'이라고 불린다나.

 

 

 

 

역사가 오래된 식물원답게 품이 넉넉하고 덜 인공적이고, 게다가 범접할 수 없는 품격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 이 큐 가든이다. 이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러나 지상의 천국같은 이곳에도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비행기. 위 사진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있노라면 거의 10초~20초에 한 대 꼴로 바로 머리 위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그곳이 비행기가 다니는 길인지 낮게 뜬 대형 비행기들이 쉴 새 없이 상공을 지나간다. 흡사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투에 나선 전투기 처럼 쉴 새 없이 상공을 가로지른다. 그 수많은 비행기들의 도착지가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대형 비행기들이 하도 낮게 날아다녀서 비행기 밑바닥면을 카메라로 찍어보려고 했으나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내 손보다 비행기가 빨랐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 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역시 비행기는 빠르다.

 

 

당분간 런던보다 이 큐 가든이 그리워서 몸살을 앓을 것 같다.

 

이곳에서 먹은 점심 메뉴.

 

 

21가지 재료가 들어갔다는 수제햄버거. 차라리 두세 가지 재료라면 맛을 음미할 수 있을 텐데....

 

 

리조토. 음식 위에 장식된 저 매콤한 하얀꽃과 누룽지 같은 하얀조각이 제일 맛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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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4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5-0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큐 가든 다녀오셨군요.
제가 영국 가서 제일 먼저 간곳이 큐 가든이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나무, 꽃에 관심이 더 없을때인데, 제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았고, 더구나 차도 없이 기차로 다녀야하는 형편에 큐 가든이라는 기차역이 있기에 혼자 가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답던지, 지금도 잊히질 않아요.
올리신 사진보다 훨씬 더 많은 사진을 찍어오셨겠죠?

nama 2018-05-04 12:01   좋아요 0 | URL
아, 가보셨군요.
사진은 주로 인물사진을 많이 찍었구요. 그중 제가 들어간 사진이 제일 잘 나왔는데(죄송!) 안타깝게도 올릴 수가 없군요.^^

서니데이 2018-05-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진짜 예쁘게 찍으셨네요.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한 느낌이예요.
정원에 연못도 공작새도 있고, 그리고 유리온실 안에 있는 연꽃도 예뻐요.

요즘 며칠째 바람이 많이 불어요.
매일 매일의 일교차도 크고요.
nama님,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nama 2018-05-04 21:0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실제는 더 멋지고 근사해요.^^

서니데이 님도 즐겨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